[슬픈 예수] 마태오복음 해설 -126

41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42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누구의 자손이겠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다윗의 자손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물으셨다. 43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44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신 말씀,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고 다윗이 읊지 않았습니까?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습니까?” 46 그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날부터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마태오 22,41-46)

마태오는 예수의 예루살렘 체류 기간 전체를 예수와 이스라엘 지배층의 투쟁 기간으로 본다. 그 기간에 예수가 상대에게 하는 마지막 질문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스라엘 지배층과 이론적 논쟁은 이것으로 끝이다. 유다교에게 예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담은 본문이다. 예수의 다윗 혈통이 널리 알려지지 않던 시기에 생긴 논쟁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예수 역사를 사실대로 재구성한다면 42절에서 그리스도보다는 메시아라고 질문해야 적절했다. 예수가 직접 한 말은 아니고 그리스계 초대공동체에서 생긴 이야기다. 생전의 예수가 바리사이파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라 유다전쟁 이후 바리사이파가 주축이던 유다교를 상대로 초대교회가 질문한 것이다.

대본인 마르코 12,35-37을 마태오는 몇 군데 고쳤다. 성전에서 혼자 가르치던 예수는(마르코 12,35) 바리사이와 대화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율법학자들의 생각을 예수가 전해주던 장면은(마르코 12,35) 바리사이에게 예수가 질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수의 마지막 질문은 바리사이를 향한다. 그리스도교는 바리사이를 중심으로 하는 유다교와 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리사이를 위선자라고 간단히 낙인찍어 될 일이 아니다.

메시아는 다윗 가문에서 나오리라는 생각은 공동성서(구약성서)에 나타난다.(사무엘상 7,12-; 이사야 11,1; 에제키엘 34,23) 쿰란 공동체도 같은 생각이었다. 바리사이파 문헌인 ‘솔로몬의 시편’에도 그런 구절이 보인다. 그 의견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확장하려는 마태오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예수 부활-승천-하느님 오른편에 앉음’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시편 110장을 애용하였다.(사도행전 2,34-; 고린토전서 15,25; 히브리서 1,13) 유다교에서 시편 110장을 이용하여 메시아 사상을 뒷받침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44절에 인용된 시편 110장에서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는 계약의 궤(상자) 옆에 임금의 자리가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사도신경) 안에 들어올 정도로 중요하다.(sedet ad dexteram Patris)

마태오의 그리스도론을 요약한 오늘 본문이다. 다윗의 아들, 주님, 하느님의 아들, 이 세 호칭은 마태오에게 중요하다. 다윗의 아들은 예수가 유다교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주님은 예수 제자들이 즐겨 쓰던 호칭이어서 예수 역사와 연관된다. 하느님의 아들은 예수의 신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마태오가 복음서 처음부터 가장 강조하는 호칭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를 가장 본질적으로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고백이라고 가톨릭 신학자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는 말한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그리스도교를 온전히 나타낼 유일한 인물은 바로 예수임을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그러나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본문이기도 하다.

4복음서의 특징이자 한계는 무엇일까. 예수에게 유리한 문서이지 공정보도나 객관적 사실 보도 차원의 책이 아니다. 현장에서 가감 없이 생중계하는 보도가 아니고 편집과정을 거친 녹화중계다. 편집 과정에서 편집자의 의견이 개입되어, 없던 이야기를 꾸며내어 끼워 넣기도 하는 보도다. 카메라 기자의 촬영 각도, 글쓴이의 의견이 이미 포함된 보도다. 논쟁 상대의 의견과 입장을 충분히 보도하거나 배려한 책은 아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책이지 제3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책이 아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이 쓴 성서를, 아직 예수를 믿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자, 보시오. 믿으시오” 하고 무턱대고 들이밀 책은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성서의 특징과 한계를 제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예수를 믿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성서구절 몇 개를 인용하면서 “예수를 믿으시오. 믿지 않으면 당신이 사악해서 그런 것입니다” 라는 투로 협박하는 짓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운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를 모독하고 있다.

오늘 본문을 토대로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는 예수의 역사보다는 예수의 본성에서 신성을 이끌어내려는 철학적 논증에 몰두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 ‘철학 과잉, 역사 빈곤’이라는 기나긴 시대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역사를 강조하는 히브리적 사유보다 철학을 강조하는 그리스적 사유가 그리스도교에 지배적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철학에서 역사로 그리스도교의 무대를 이제 바꾸어 보자. 그리스도교는 철학이라기보다 역사다. 예수를 철학으로 보기보다 역사로 보자.

예수의 신성을 제대로 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수가 인성을 통해 신성을 발휘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예수의 인성을 추상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예수의 삶을 해방신학 관점으로 해설하고 싶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에서 존재론적으로 설명되던 철학적 개념인 인성-신성이라는 두 가지 본성(Zwei-natur)을 예수의 역사에서 설명하고 싶다. 예수는 세상의 악을 없애기 위해 저항하였고 그 저항에서 예수의 신성이 나타난다. 신성을 지닌 예수가 세상 권력자의 칼에 처형된 사실이 그리스도교를 역사적으로 그러나 가장 잘 드러낸다. 그러한 저항과 희생의 길이 예수의 신성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교육적 방법이다.

훌륭한 삶을 살도록 가르친 스승은 많았다. 공자, 마호메트처럼. 욕심을 버리고 살라고 가르친 스승도 많았다. 노자, 붓다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던 스승도 많았다. 칼 맑스, 모택동처럼. 자기 목숨을 바쳐 악에 저항한 스승도 많았다. 체 게바라와 로메로처럼. 그러나 인류에게 하느님을 가르쳐준 스승들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자기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한 스승이 우리에게 있다. 그 이름 예수. 인류 역사상 수많은 스승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승은 예수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았고 악의 세력에 저항하였고 하느님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고 예수는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않았다. 그런 예수를 나는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고 싶다. 그 정도면 예수는 인류의 스승으로 충분하겠다. 그 이상 더 무엇이 필요한가.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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