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이야기]


새해 연휴를 맞아, 동생 가족과 함께 임진강변에 위치한 조선시대 객주집을 사들여 개조한 음식점에서 덕담을 나누며 새해를 맞았다. 옛 임진나루터 상업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크고 너른 집도 구경거리였고 흐르는 임진강물도 좋았다.

이제 3학년에 올라가는 어린 조카가 어른 흉내를 내느라 어려운 어휘를 사용해서 말을 하는 게 우스워 우리는 새해를 맞아 한 살 더 줄어드는 기분에 젖었다. 행복한 풍경 속에서 지글지글 장어를 굽다보니 우리 옆 테이블에서 매운탕으로 식사를 하던 가족 가운데 젊은 아내가 목에 박힌 가시로 인한 거북함을 호소하였고 남편은 아내의 목과 입안을 살피며 가시를 끄집어내고자 하였다. 옆에서 그런 두 사람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어린 두 딸의 모습을 포함해서 이들은 가정, 가족의 정겨움을 보여주었다.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못하고 어린 조카들과 어머니와 어렵게 지내던 무렵이었다. 부풀었던 꿈들은 하나 둘 임파서블 드림이 되어 내 안의 모든 신경들이 예민하게 곤두선 시간들이었다. 어느 일요일, 어린 조카가 주일학교를 다녀와 교회에서 받아온 과자를 먹으며 노래를 불렀다.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일세!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일세 하는. 가슴 속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내가 가장의 이름을 달고 무능력으로 곤두박질 치는 집이었는데, 아이는 천국의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의 몸짓에 포위당하며 노래를 부르던 어린 조카의 손을 잡고 한강변을 거닐며 많은 다짐을 했었다. 내게 주어지는 빵 중에서 가장 좋은 걸 너에게 주겠노라... 강변에 늘어선 포플라나무 위에 지어진 까치집을 가리키며 우리 가족이 포근히 잠들 수 있는 집을 짓겠다고... .

이제 20대 후반이 된 그때 그 조카들은 20년 전 내가 한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들은 집에 일찍 들어오기를 힘겨워하고 어쩌다 초저녁에 들어오면 큰 벼슬이나 한 양 기세가 등등하다. 점점 나는 밥솥의 밥이 누렇게 변색되는 게 지겨워져 나까지 식당밥을 사먹는 생활로 접어들었다. 어쩌다 집에서 밥을 하면 딱딱한 쌀이 부드러운 밥이 된다는 게 신기하고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풍경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보다 더 진기한 느낌에 빠져 비몽사몽 몽롱한 가운데 식사를 마쳤다. 김장김치를 덜어주고 시골 사는 친정어머니가 띄워 준 청국장을 나눠주는 친구들의 성의를 무시하고 냉장고에 넣고 먹지 않았다.

새해, 양초를 사고 꽃을 사다 성모님께 드리며 성모님이 이루신 성가정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며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그림들이 떠오르며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여름철 장마가 지나고 나서 양재천을 걷다보면 작은 물구덩이들이 보이고 그 안에 갇힌 물고기들이 땡볕으로 줄어드는 물속에서 몸부림을 치는 걸 종종 본다. 사지에서 사투를 벌이는 물고기를 집어 큰 물줄기에 넣어주면 유유히 헤엄치며 사라지던 모습... 부모란, 가정이란 물고기에게는 흐르는 물줄기처럼 생명의 터전일 것이다. 일찍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고모 밑에서 성장한 두 녀석은 어쩌면 작은 물웅덩이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사지에서 헤매왔는지 모르겠다.

다른 그림으로 성모님을 한 여자로만 바라보았다. 요아킴과 안나의 딸 마리아는 자신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도 요셉 성인이 그녀의 남편이 되어 곁에 있었던 일도 꿈속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후에는 그런 아들이 어미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마리아가 가여워 장미줄기에 나있는 가시를 잘라내 들여다보며 은유적으로 내 생을 둘러싸고 늘 깊이 박혀오는 가시들도 헤아려 보았다. 어느 것은 내가 철이 없어 만들어낸 가시였고, 다른 하나는 왜 내가 그 가시에 찔려야 하는지 연유도 모르는 가시였으며 어느 것은 불가능에서 "불"자를 떨쳐내 보겠다는 무모한 내 열망이 자초한 가시였다. 성가정을 이룬 헤게모니 성모 마리아는 가족, 가정, 성가정, 하늘가정을 꿈꾸게 하고 확장시켜주는 분이신데 그 분과의 거리는 해를 거듭하며 더 멀어져 닿을 수 없게만 여겨진다.

새해 들어, 열 살이 된 여동생의 아들은 10살을 자랑스러워 하며 저만의 이야기를 속삭이다 커피자판기를 보더니 제 돈으로 커피를 빼서 새해선물이라며 건네준다. 부모의 사랑을 넉넉히 받는 아이의 얼굴은 사랑스러움이 넘쳐난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임진강변 황희 정승의 생가를 거닐며, 20 년 전 유치원도 보내지 못한 큰조카들을 염려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힘차게 일해야 하는 시간이건만 빗나간 모양새를 취하며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녀석들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늘 마음이 쓰여 갈피를 못잡게 만든다. 어느 때에 이르러야 시간이 무르익어 목의 가시는 저절로 삭혀져 쑥 내려갈런지. 혹시 2009년이 바로 그 해가 될 것인지를 가늠해 본다.

강변에 우뚝우뚝 선 나무들 위에는 까치들이 집을 지어 한 살림을 이루고 있었다. 새들이 집을 짓고 먹이를 모아다 자식들을 돌보며 새들의 운명을 완성해간다는 생각이 들자, 새를 조류로 분리하여 덜 진화된 존재로 여기기보다 친구라고 부르며 그들의 조언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슈퍼에서 쌀을 배달시키고 식료품을 샀다. 햇빛보다 더 밝지는 못해도 늘 등불을 켜놓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집이 있어야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나갈 수 있을테니... .

이규원/ 드라마와 소설 작가, 어린이 책읽기 교실 <글방집> 선생님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