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신부의 Spring Tree]

어른들에게 청춘은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아쉬움을 동반합니다. 젊은이들을 보면 말합니다. ‘너희 때가 좋은 시절이다.’라고 하지만 청춘들에게는 젊음이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에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가 두렵고 답답하고 희망 없다며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을 돌며 국민들을 향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질문을 던집니다.
“아니오 저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안녕하지 못하다는 젊은이들의 말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과거에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안녕하지 못하다며 ‘저희 힘들어요, 어려워요’라며 자신들이 아프고 힘든 현실을 말하면서 ‘우리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 쌍용차 해고로 아파하는 사람들, KTX 민영화로 직위 해제된 아픈 사람들, 밀양과 강정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안녕하지 못하다고,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들의 안녕하지 않다는 이런 고백이야말로 이 사회의 희망입니다.

 ⓒ박홍기
자기 욕망을 뛰어넘어서 진정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일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방송에서 보았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여행가이면서 긴급구조 활동가로 살아가는 한비야입니다.

그는 케냐인 40대 안과 의사를 소개합니다. 안과 의사를 만나서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 “내가 하는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합니다”라는 고백이 자신의 인생을 바뀌게 한 계기라며 소개합니다. 그는 알고 보니 대통령도 만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인데 이런 깡촌에 와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모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것은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죠.”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짜릿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슴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의사가 몹시 부러웠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전합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 보태면 그들에게 일정정도 돈과 힘을 제공받아 달콤하게 살다가 자연사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힘없는 사람에게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에 저항하여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친구 되어 사는 일이 ‘가슴 뛰는 일’이 되는 사람은 좀처럼 지치지 않습니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어떤 힘든 상황도 돌파할 힘이 있습니다. 일하면서 겪는 괴로움이 곧 사라지곤 합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겉멋에 겨워 흉내만 내고, 남의 탓을 하거나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포기하기 십상입니다.

평생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새장 속 같은 세상에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인가. 그 선택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내 몫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대충대충, 생활도 대충대충, 만남도 대충대충, 일도 대충대충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가슴 뛰는 그런 열정을 지니고 살고 싶습니다. 어찌 사랑뿐이겠습니까. 나는 친구도 가슴 뛰며 사귀고 싶고, 꽃 한 송이도 가슴 뛰며 보고 싶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가슴 뛰는 작은 희망으로 남고 싶고 내가 그리는 그림도 가슴 뛰며 붓을 잡아 혼을 담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하느님도 가슴 뛰며 믿고 싶고, 죄도 가슴 뛰며 짓고 싶습니다.

나는 높이 오르려는 마음이 생기면 산꼭대기까지 오르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슴 뛰는 마음으로 오르고 싶고, 낮게 가려면 바다 밑까지 내려갈 것입니다. 나는 가슴 뛰는 마음으로 산꼭대기에 오를 것입니다. 바다 밑까지도 가슴 뛰며 내려 갈 것입니다. 나는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진심을 담아 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향해 어떤 편견도 갖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위대하므로 매순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 말하였던가요. 인간이야말로 하느님이 만든 최고의 악기라고 합니다. 많은 매스컴들이 격찬하는 조수미 씨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저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까, 날 때부터 저런 목소리는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목소리로 갈고 닦아 만들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저런 목소리를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을까, 때로는 감기도 들릴 것이고 때로는 기분이 언짢기도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주교 신부인 나로서도 그러한 것을 가끔 느낍니다. 나는 신부로서 자신의 마음을 최상으로 다스리는 사람으로 나 자신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항상 조절해 놓고 있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하고 싶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거나,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만나거나 쓰고 싶지 않는 글을 억지로 쓰면 나를 보는 사람들이 편하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입니다. 항상 연주할 수 있도록 현을 조율해 놓아두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처럼 늘 잘 준비해 두었다가 최상의 마음으로 일에는 정열을 바치고 사람을 하늘 모시듯 지극정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주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친한 사람들 앞에서 즐거운 축제를 하는 기분으로 노래를 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또박 또박, 지극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 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그렇게 변화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차를 끌고, 천천히 책을 읽고, 천천히 밥을 먹고 천천히 잠을 자고, 그러나 그 천천함도 ‘느리게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사는 것을 내 삶의 화두를 이루고 싶습니다.

 

 
 

최민석 신부 (첼레스티노)
광주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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