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우 신부, ‘제주 4.3 심포지엄’에서 4.3 사건의 신학적 관점 제시

▲ 문창우 신부
문창우 신부(제주교구, 광주가톨릭대학교)는 8일 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가 제주 연동성당에서 주최한 ‘제주 4.3 심포지엄’에서 4.3 사건의 의미를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해석해, 현실의 사건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문 신부는 먼저 “4.3 사건의 진상이 현재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왜곡 · 은폐되어 왔고, 사건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올바른 역사의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가운데, 신앙인들 역시 4.3의 진실을 믿음과 연결된 삶으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의 사건을 신앙인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작업의 의미에 대해 “하느님의 뜻으로 본다는 말은 4.3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신학적인 질문을 되짚어보면서 이에 대한 응답을 통해 인간이 역사와 하느님, 그리고 인류를 향해 갖고 있는 책임을 보다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문 신부는 4.3 사건이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일”임을 강조했다. 문 신부는 4.3 사건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빗대어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미사를 매일 드리면서도 미사를 식상해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원천과 미래를 찾고자 해서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4.3 사건으로 인한 상처의 치유와 회복을 구약성경의 ‘희년’ 정신으로 해석했다. 희년이 땅을 중심으로 한 해방이었다면, 한국 사회에서의 해방은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문 신부는 “진정 4.3으로 파괴되고 수난당한 마음의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좋은 심성을 회복할 때, 진정한 희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3 발생 65주년을 맞아 진정한 화해와 치유의 희년이기 위해 이 사건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져서는 안 된다. 이 기억은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역사를 준비할 결정체가 됐다”고 강조했다.

4.3은 현재진행형, 신앙인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 찾아야

문 신부는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인간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떠올리는 질문들의 답을 구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했다. 그가 첫 번째로 풀어낸 질문은 “제주도의 죽음의 자리에서 민중이 가졌던 갈망은 무엇이었을까”였다.

문 신부는 “예수님은 당시 민중 속에 담겨져 있던, 혹은 그들이 갈망하는 새로운 세계를 ‘하느님 나라’라는 구체적인 현실로 그려냈다”고 설명하며, “제주도민들이 해방의 공간 속에서 가지고 있었던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계, 그리고 통일국가에 대한 희망은 그들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두 번째 질문은 “비극과 고통을 당할 때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셨는가”였다. 이에 대한 답으로 문 신부는 “진정 그분은 당신 모습으로 창조한 인간들이 울부짖고 싸우고 죽이고 땅에 파묻는 폭력의 운동장에 있었다”고 단언한다. 이어 “그러니 그분이 보지 않은 죽음은 하나도 없었고, 그분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사람들을 죽인 이들은 아예 귀와 눈을 닫아 버렸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폭력은 곧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었던 것이다.

문 신부는 “하느님은 비극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무능력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정작 하느님의 울부짖음을 듣지 않은 것은 바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이 자신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의 큰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위로한다. 하지만 그분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으신 분이고, 그분은 시간을 초월해서 항상 현재 속에 살고 계신다. 그분에게 있는 모든 시간은 ‘지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며 오늘을 삼키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 십자가의 현장에서 그분 또한 몸부림을 쳤다. …… 그러나 당시 그들은 점점 야수가 되어 갔다.”

문 신부는 “한(恨)의 현실은 이제 제주도민만의 현실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는 곧 하느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그러기에 아직도 4.3은 현재사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현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회는 제주를 이루는 도민들이 더욱 좋은 방향으로 관계를 맺고 4.3과 같은 비극을 포함한 삶의 자리에 있는 것들에 대해 서로 대화하며 화해할 수 있는 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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