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 심포지엄 “4.3의 아픔 외면하고 복음 선포 못해”

한국 천주교회에서 처음으로 제주 4.3 사건을 신학적으로 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위원장 김창훈 신부)는 지난 8일 제주 연동성당에서 ‘제주 4.3 심포지엄―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소공동체’를 개최했다. 심포지엄에서는 4.3 당시 천주교회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4.3 사건의 양상과 결과에 신앙인으로서 품는 신학적 물음과 그 답을 찾아가는데 초점을 맞췄다.

▲ 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가 지난 8일 제주 연동성당에서 ‘제주 4.3 심포지엄―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소공동체’를 개최했다. (사진 제공 / 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

강우일 주교 “복음 선포는 제주도민의 한과 아픔 함께하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심포지엄을 시작하며 “제주는 좁은 지역사회이지만, 이 안에서 평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평화가 가능하지 않다”면서 “제주에서 평화를 찾으려면, 제주의 평화를 방해하고 훼손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제주의 어제와 오늘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 주교는 “4.3의 비극은 지난 60년 동안 제주도민 전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겨주었다”고 지적하며, “엄청난 고통 속에 살아온 제주 도민들의 아픔과 한에 눈을 감고 우리가 제주에서 복음을 선포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이 땅에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정적으로 선포하려면, 제주도민의 한과 아픔에 대한 연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갖고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참극을 만들어낸 그 시대의 죄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성찰하고, 통회하는 데서 시작해야 된다고 봅니다.”

특히 강 주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4.3을 잊는 것을 크게 안타까워했다. 강 주교는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 사람들은 이 비극을 잊어버리고, 그 비극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간다”고 우려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유다인 학살을 언급하며 “세상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 기억 속에 숨겨져 있는 죄의 본색을 드러내고 죄악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는 일이 없도록 우리 자신과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일깨우고 다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4.3 사건 당시 천주교회의 역할과 신학적 해석 발표

이날 심포지엄의 발제는 오랜 시간 4.3 사건의 진상을 연구해온 박찬식 교수(제주 4.3평화재단 진상조사단장)과 문창우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1948년 4.3 당시 천주교회의 역할을 연구해 발표한 박찬식 교수는 “교회는 신도들의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교회 밖의 일반 주민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막아 나서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도, 교회가 평화적 사태 해결의 원칙을 갖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한 것에 주목했다.

당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제주본당에서 사목하던 스위니 신부는 사태의 근본 원인이 경찰의 폭력과 테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고, 미군정 당국에 경찰의 폭행 중단을 건의한 바 있다. 또 미국의 민간 구호단체인 전국가톨릭복지협의회에 요청해 구호물자를 받아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배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교수에 따르면 당시 교회의 지도급 신도들 가운데에는 직접 우익청년단체에 가입해 한라산 토벌활동의 주역이 되는 사례도 있었다. 가톨릭계 학교인 신성여자중학교의 교직원들은 토벌작전의 선전부 역할을 했던 ‘선무(宣撫) 공작대’를 꾸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창우 신부는 4.3 사건의 의미를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해석해, 현실의 사건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문 신부는 “하느님의 뜻으로 본다는 말은 4.3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신학적인 질문을 되짚어보면서 이에 대한 응답을 통해 인간이 역사와 하느님, 그리고 인류를 향해 갖고 있는 책임을 보다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민이 죽음을 목전에 두면서까지 가졌던 갈망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창조물이 비극과 고통을 당할 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나’, ‘비극을 가만 두는 하느님은 무심한 것인가, 무능한 것인가’ 등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인간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떠올리는 질문의 답을 구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특히 문 신부는 4.3 사건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빗대어 4.3 사건이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일”임을 강조했다. 문 신부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미사를 매일 드리면서도 미사를 식상해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원천과 미래를 찾고자 해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포지엄 후반부에는 김상기 목사(새사람 교회), 현문권 신부(제주교구), 김진호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허호준 한겨레 기자 등 토론자들이 참석해 발제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제주교구는 강우일 주교가 발표한 2013년 사목교서 ‘세상의 평화를 이루는 소공동체’에 따라 지역사회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교구 기구인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에 ‘제주 4.3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4.3 바로알기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4월 3일에는 4.3 사건 65주년을 기리는 추모미사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봉헌했고, 앞서 3월 29일에는 4.3 평화공원 야외광장에서 성금요일 합동 십자가의 길을 열기도 했다. 교구 내 각 본당 차원에서도 관할 구역 내에 있는 4.3 유적지 방문과 주일학교 학생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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