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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최민석 신부의 Spring Tree]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와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이들의 희망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한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나만을 위한 좋은 친구가 그 어디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좋은 친구이면 나를 만나는 그가 좋은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평화로 가는 길은 따로 없습니다. 내가 평화를 사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사람은 충돌과 갈등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도 경험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래도 외동이가 많고, 혼자만 있다 보니까 친구들 간에 갈등을 딛고 화목해지는 법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끼리 싸우게 되면 조정하는 법, 화해하고 용서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법은 싸우고, 싸우고 난 다음 화해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이때 관계 속에서 자기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버럭 내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감정을 삼켜버린 채 화를 드러내지 않고 화를 품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친구들 관계는 화해의 과정을 통해 평화가 주는 기쁨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은 겉으로만 친한 척 하는 관계는 진실한 관계는 아닙니다. 이것은 앙금으로 남아서 언젠가는 폭발하게 됩니다.

자기 안에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부딪치고 갈등을 겪으며 조정해서 상처나 앙금이 없도록 서로 맞추어가야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특히 함께 어울리며 갈등을 조정하는 경험은 참 귀한 삶의 지혜입니다. 서로 어울리는 능력은 다툼에서 평화로 가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박홍기

지금 현 정부와 국민의 불신 정도가 심합니다. 갈등 조정 능력을 향상시켜 평화롭게 사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우리 모두가 꼭 갖추어야 할 지혜입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지도자 위치 있는 사람은 역시 위기관리능력, 국민통합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곳에는 소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소통을 이루려면 먼저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신뢰하고 마음을 읽지 못하거나, 아예 읽으려고 안하거나, 읽는다고 해도 거꾸로 읽을 때 소통 부재가 일어납니다.

소통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와 친구의 마음이 다르지만 서로 다른 마음을 인정함으로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마음은 사실상 친구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지 친구 마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친구의 마음을 잘 못 읽은 것입니다. 나는 친구가 나하고 같은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고, 내 친구는 나와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와 친구의 마음이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할 때 대화가 가능합니다. 친구와 다른 마음을 배려하고 인정함으로서 아름다운 소통이 시작됩니다. 친구하고 싸웠다면 그 책임은 친구에게 있지 않고 먼저 나에게 있다고 인정하면 소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무엇이 잘못되거나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자기는 잘못이 없고 상대방이 잘못했거나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한, 지구별에서 싸움과 다툼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싸움이란 ‘정당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누구랑 싸울 수는 없습니다. ‘나는 정당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빴어’ 이러면서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몇 해 전에 북한에서 핵무기 실험을 했다고 세계가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북한 지도자들이 “우리가 이러는 것은 우리 잘못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또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하는 것은 우리 탓입니다.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북한이 저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그려 보았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그러니까 상대방이 옳지 않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똑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하고 만나면 싸움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참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정부는 ‘우리가 잘못 했습니다’라고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을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잘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구별에서 싸움과 다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짜 이유는 나쁜 나라, 나쁜 친구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나라, 옳은 사람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럼으로 내가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고 하는 것이고, 실제로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오는데 어쩌겠습니까? 따라서 당분간은 이 땅에 분쟁과 다툼이 계속되리라는 걸 사실로 인정하고 그런 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평화 건설의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평화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평화롭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세상이 왜 평화롭지 못한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는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필요합니다.

틱 낫한이라는 베트남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 가슴에 두려움이 남아 있는 한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또 인도의 간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네가 먼저 네 가까운 이웃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바로 그것이 세계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 됩니다.

부모들은 입버릇처럼 ‘친구를 잘 사귀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나에게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런 친구가 없나?’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친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찾아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면 됩니다. 내가 다른 친구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 이렇게 먼저 나를 열고 좋은 친구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내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생깁니다.



 
 

최민석 신부 (첼레스티노)
광주대교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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