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신문을 통해 보는 한국 교회 - 3]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42항 ·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 33항

익히 아는 대로 지난 11월 22일 전주교구에서 시국미사가 있은 지 이틀 후인 24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전주교구 사제가 아니라 전국의 사제들에게 경고했다. 그 내용의 골자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42항과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 33항 위반을 조심하라’였다.

이어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평화신문>은 12월 1일자에 이를 보도했다. 그러나 대구대교구에서 발행하는 <가톨릭신문>은 이것에 대해 귀 닫고, 눈 감고, 입 다물었다. 태생적으로 친일 ‧ 친미 ‧ 반공 ‧ 애국정신으로 무장한 세간의 언론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을 ‘좌파’ ‘종북’으로 몰아붙이고, 가스통을 최고의 무기로 아는 단체들은 원로사목자의 사진을 백주대낮에 불태우는 등 전국과 정국은 소용돌이쳤지만 한 주간이 지나가자 교계언론과 교회는 무념무상 동안거에 들어갔다.

▲ <평화신문> 12월 1일자 1면

서울대교구장으로서는 교리서나 지침서의 인용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소가 절실했다. 저쪽 사제들은 교리서 위반이지만 여긴 그렇지 않다는 줄긋기가 아니라, 스승 예수가 그랬듯이 동료 사제이자 후배 사제들의 발을 씻겨주는 낮고 낮은 마음으로 다가갔어야 했다. 교계언론, 특히 <평화신문>은 관련기사를 12월 1일자 1면 ‘사제 정치 개입, 교리에 어긋난다’, 3면 ‘가톨릭교회, 정치와 종교관계 원칙 재천명’, 24면 ‘국기 바로 세우고 정의 회복하는 전기 돼야’를 열혈보도 해놓은 채 12월 8일자는 혼자서 사건 종결이었다. 어이없는 일방적 보도 행태다.

1927년 창간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깊은 연륜의 <가톨릭신문>은 역시 노회하게 문제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가톨릭신문>이 스스로 밝히는 사시(社是)중 첫째 항목 ‘소식보도(消息報道)’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과연 <가톨릭신문>의 ‘소식’은 무엇에 대한 ‘소식’일까? 예를 들자면 <가톨릭신문> 1961년 5월 28일자 2면 ‘(5.16)군사혁명과 반공정책’ 혹은 1980년 9월 7일자 1면 전두환 대통령 취임사 ‘민주복지국가건설에 총력다짐’이 그 신문이 생각하는 소식일까? 분명한 것은 ‘소식’은 대구대교구장이나 신문사 사장 혹은 편집국장을 위한 소식이 아니라 독자를 위한 소식이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교리서인가?

▲ <가톨릭신문> 1980년 9월 7일자 1면
사실 주교회의 기관지인 <경향잡지>를 포함한 교계언론의 과거 보도 행적을 보면 그때그때 교리서를 전가의 보도처럼 무식한(?) 신자들에게 들이밀었고, 그런가하면 그들 자신은 교묘히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그러나 그렇게 인용하는 교리서는 교회의 생존을 위하거나 아니면 교회권력의 생존을 위한 교리서였을 뿐 불행하게도 신앙의 지침이 되는 예수가 사라진 교리서였다.

역사는 새로운 것 같지만 같은 일이 모습을 달리하고 반복될 뿐이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일 뿐이다. 1922년 9월 1일 발표되고 이듬해인 1923년 간행된 <경성교구 지도서>에서는 “신사참배를 하거나 신사에서 행해지는 예식들에 참석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목적이든 금지된다”(지도서 22항)고 명시했다. 조선 천주교회가 1926년 공식 교리서로 반포한 <천주교요리(天主敎要理)> 45쪽에서도 분명히 “신사참배 하는 것은 확실히 이단이니 아주 금한다”라고 했지만 1932년 발간된 <천주교요리> 275쪽에서는 “신사참배는 비록 그 시작은 종교적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일반의 인정과 관계당국의 성명에 의하여 국가의 예식으로 되어 있으니 혼동할 것이 아니며 천황폐하의 사진 앞에 절함도 이단이 아닌즉 국민 된 자 가히 행할 것이오”라고 교리서 내용을 변경했다. (윤선자, <일제의 종교정책과 천주교회>, 경인문화사, 2001 참조)

공교롭게도 1923년 <경성교구 지도서>나 1926년과 1932년 발행된 <천주교요리> 모두 경성교구, 즉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뮈텔 주교(민 아오스딩) 감준이었다. 그러나 신자들이 교회 장상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혼란이 계속되자 1936년 조선 천주교회 기관지이자 당시 유일한 언론이었던 <경향잡지>를 통해 다시 알렸다. (1927년 창간된 <가톨릭신문>―당시 <천주교회보>―는 1933년부터 1949년까지 자진 휴간했다.)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종교의식인 줄 알고 금하였더니 그 후로 정부의 발표와 설명에 의하면 신사참배는 종교와 전연 구별이 있어 다만 황실을 경앙하며 국민정신을 작흥케 하는 국가의 의식이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신앙은 법률상 자유인 만치 만일 신사참배가 종교의식과 구별 없다면 명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교황대사와 열위 주교는 일반 교우들에게 이 설명을 알려주어 모든 이가 안심하고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경향잡지> 1936년 4월호 26쪽)

교회의 장상과 교리서와 교계언론은 선량한 신자들을 이렇게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고 갔다. 그러고도 하느님 앞에 복을 빌었다.

예수와 성경이 교리서를 앞선다

천주교회의 교리서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교리서는 성경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며, 성경은 우리 주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 그 자체를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모든 기록물과 자료들은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나 목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대교구장이 인용하고 교계언론이 절절히 받아쓴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은 공교롭게도 두 권 모두 로마 교황청에서 배포한 것을 번역한 서적이다.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은 교황청 성직자성이 1994년 발표한 것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그 해 발행했다. 서울대교구장과 <평화신문>은 그 내용 중 사제들에게 33항 ‘정치적 · 사회적 의무’를 경고했지만 바로 이어서 나오는 34항을 잊은 듯하다. 34항은 사제의 영성 중 첫 번째 조항으로서, 그 항의 제목은 ‘시대의 표징에 대한 해석’이다.

“사제들의 생활과 직무는 언제나 순례 도상에 있는 교회가 그 안에 살고 있으며 때때로 새로운 문제들과 예기치 못한 변화들로 가득 차 있는 한 특정 역사적 맥락에서 성장한다. 사제직은 역사로부터가 아니라 불변하는 하느님의 의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직무는 역사적 상황에 부응하며 또 언제나 자기 본질에서 충실한 것으로 존속하기 위하여, 특별한 선택들 중에서 ‘시대의 표징’과의 비판적 관계 및 복음적 화합의 요구를 통하여 그 형태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사제들은 신앙에 비추어 이 ‘표징’들을 해석하고 또 그것들을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의무를 진다. (하략)”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13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지닌 책으로서 199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30주년을 즈음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포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2003년에 역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발행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발행에 관한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 3항에서 “교리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와 구원 계획의 놀라운 단일성을 깨달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인간이 되신 분, 인류의 구원자,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 위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교리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로 인해 하느님을 향해 가는 등불의 역할이지 어떤 법 조항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나 교리서가 우리에게 벌을 주는 도구가 되는 것은 공의회 전 주일학교에서 강조하던 교리교수법일 뿐이다. 우리는 교리서나 교회에 매인 종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자유인이다.

이제는 그리고 다시는 “여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많은 말이 넘치는 시절이다. 갈라진 시대이고, 장터에 앉아 피리를 불어대는(루카 7,32) 어지러운 세대다. 스승 예수가 기도하던 모습처럼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분을 “아버지”로 부르며 피땀 흘려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기도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나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징표”를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손끝에서 그리고 발끝에서 절로 새어나오는 것이다.

끝으로 서울대교구의 <평화신문>과 대구대교구의 <가톨릭신문>,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 기관지 <경향잡지>의 교계언론을 책임지는 높은 분들과 종사하는 낮은 분들께 호소한다. 아니, 요구한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시절의 잘못을 반복하지 마시라. 이제는 그리고 다시는 “여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김유철 (스테파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시인,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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