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 읽기 - 21장]

야훼여! 당신께서 힘이 되어 주시오니 우리의 왕이 기뻐합니다. 당신께서 승리를 안겨 주시오니 크게 즐거워합니다.
당신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청원을 물리치지 않으셨사옵니다. (셀라)
온갖 좋은 복으로 그를 맞으시고 황금의 면류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오래 살게 해달라는 그의 기도 들어주시고 그에게 오래오래 긴긴날을 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그에게 승리 주시어 그 영광 만방에 떨치게 하고 위엄과 영화를 입혀주셨습니다.

영원한 복을 그에게 내려주시니 당신 얼굴 우러러 뵈고 마냥 기뻐합니다.
우리 왕이 야훼를 굳게 믿사오니 지존하신 분, 당신의 사랑받아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당신의 손으로, 모든 원수를 덮치소서. 당신의 오른손으로 당신을 미워하는 자를 덮치소서.
당신께서 몸소 나타나시는 날, 그들을 가마 속에 던지소서. 야훼의 진노로써 그들을 불사르소서. 뜨거운 불길이 그들을 삼켜버리게 하소서.
이 땅에서 그들의 씨를 말리시고 그 후손을 세상에서 끊어버리소서.

원수들은 음모를 꾸며 당신을 해치려 하겠지만, 어림도 없는 일,
그 얼굴에 활을 겨누시면 모두들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야훼여! 힘을 떨쳐 일어나소서. 우리는 당신 힘을 기리며 노래하리이다.
(시편 21장)

ⓒ임의진
시편에는 ‘원수’라는 말이 153번이나 나온다. 오옙(원한 관계), 초롈(반대 의견자), 소네(악의 세력)로 각각 기록된 이 원수라는 낱말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종종 있다. 폭력적인 하느님, 복수하는 하느님, 미워하는 하느님……. 이런 하느님을 어떻게 제대로 이해해야 할까?

21장은 추풍낙엽 떨어지듯 악의 세력이 무너지길 염원하고 있다. 이만큼 폭력적이고 이만큼 적대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날이 잔뜩 선 말들이 우우우 쏟아져 내린다. 이 섬뜩한 전의에 공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왜 시인은 이토록 복수를 바라는 걸까. 왜 이토록 악의 세력에 분노하는 걸까.

그렇다. 평화와 사랑, 가난한 사람도 존중받는 세상을 이뤄내려는 간절함 때문이다. 그런 바람을 짓밟는 온갖 악행들, 음모들에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분노하라! 악에 대해 주저함 없이 분노하라.

거짓 평화와 위선적인 사랑이 아니라 참 평화, 참 사랑엔 반드시 정의가 필요하다. 정의 없는 평화, 정의 없는 사랑은 물거품이요 묘연한 신기루일 따름이다. 그대는 누구 편에 설 것인가. 원수의 편인가. 아니면 정의의 편인가.

“자연은 나쁜 것들과 좋은 것들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현명하다. 자연은 상어를 만들고 나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사나운 이빨도 함께 내려주었다. 그와 같은 이치로 독사에게는 독을, 늑대에게는 송곳니를, 정치가에게는 권력을, 라틴 아메리카 군인들에게는 미국산 무기를 주었다. 그리고는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난한 어부들과 사냥꾼들, 게릴라들과 같은 정반대 세력도 만들었다.” (레네 아빌레스 파빌라의 소설 <외로운 독재자> 중에서)

우리는 가난한 어부들이요 토끼 사냥꾼이며 주님의 게릴라다. 이 정반대 세력은 항상 소수이고 약자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이 균형으로 자리하길 원하신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하늘을 날듯 우리게도 주님의 힘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다. “해방하시는 성령, 기도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함께하여 주시네. 주의 성령 임하사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 전하네. 평화 위한 싸움에 힘과 지혜 용기되어 주시네.”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해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해주어라.” (이사 1,16-17)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아모 5,24)

정의의 편에 서는 일, 악을 행하는 원수들과 공모하지 않는 삶을 주님은 바라신다. 주저함 없이 분노하는 그리스도인, 그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고흐가 네덜란드에 머물 때였다. 한 친구가 삶의 신조를 물어오자 고흐는 이렇게 대답했다.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것이라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가난한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 받는 사람에게 물 한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악인들은 빵을 빼앗고 물을 엎질러 버린다. 그들은 몰래 쥐처럼 숨어서 죄를 저지르고 아무 일 하지 않았다며 발뺌을 늘어놓는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줄곧 시치미를 뗀다. 악인들은 거짓말을 유포하길 즐긴다. 금방 전쟁이 날 것처럼 속이고 무기를 사재기한다. 계엄령이나 체포령을 쉽게 떠벌인다. 공포정치를 조성하고 공안사건들을 엮기에 정신없이 바쁘다. 악인들은 이런 짓에 몰두하다가 나라 경제를 반토막이 나게 만들고, 자연을 파괴하는 무차별적 개발로 세계를 아수라 무너뜨리고 있다.

그들의 음모를 막을 자 누구인가. 오직 우리들, 주님의 자녀들. 공의로우신 주님은 바로 우리를 들어 악과 정면으로 싸우도록 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꽃이 아니라 창검이다. 여기서 우리가 물러서면 세상은 피바다다. 정의가 없는 세상엔 거짓 평화와 거짓 사랑이 우상으로 모셔져 섬김을 받게 될 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 구조악에 빠져 살려 달라 아우성 치고 있다. 빵 한 조각, 물 한잔 건네줄 사람이 없게 된 이곳이 바로 인간세상의 지옥이렷다.

그래도 우리는 정신을 차리자. 이 눈 내린 들판에서 우리 죽어간다면 눈부처가 되지 않을 것인가. (초수이의 하이쿠에서) 탄피처럼 가득 쌓인 이 추악한 자본과 독재의 잔해에서도 발견되는 푸른 씨앗이여. 슥슥 바람이 긋고 지나간 상처 위에 진실과 정의의 치유를 나누자. 하얀 새떼가 치솟고 번개가 하늘을 맴돌듯 활기차게 일어서자. 분노할 줄 아는 이여.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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