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 산책나온 시]

 

내 사랑,

당신은 주님이어요 

나는 당신을 책 속에서 만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을 철학 속에서,

세상의 교훈 속에서 만나지 않아요

 

당신은 아름다움, 꽃 속에 있어요

당신은 자유, 바람 속에 있어요

당신은 정결, 흐르는 물 속에 있어요

 

아아 

당신은 사랑,

내 이웃들의 웃음과 눈물 담긴 삶 속에 있어요.

 

                                                         ㅡ당신은..

  

 

 

얼마전 성경읽기모임을 하면서 각자 기도문을 하나씩 써오라고 했더니

그녀가 적어온 기도문이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자꾸 감추는데 나는 무슨 보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주집사가 술을 많이 마시고 와서 술 주정하고 욕을 하고 욱박지르고

 너무너무 속상하게 해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주님 이런 때는 내가 참아야 되요

 이 순간에는 주집사가 미워서 죽겠어요.

 주님 나를 다스리게 해 주세요.

 사랑 많으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한때 삶의 기력을 다 잃고 우울증을 앓던 그녀는 지금...

매주 모임에도 나오고 목욕봉사도 다닌다.  

남편의 행패는 변함없지만 그녀가 달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내 남편을 개조해 달라는 주문 대신

나를 다스릴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그녀를 보는 것은 내게

그분을 만나는 경이로움이다.

 

배운 게 없어서

남편의 사랑을 못받아서

자식들이 속썩여서.. 나는 살 가치도 없다는,

살아온 세월이 허무하다는 그녀를 일으켜 준 힘은 무엇인가.

 

예전에는 참고 살아야 하는 자신이 못나서 보기싫었는데

이제는 참을 수 없는 자신을 오히려 부족하고 덜 된 인간이라고 말하는 그녀,

그 날선 미움과 원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꿔준 분은 누구인가

   

나는 가만이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 사람을 이렇게, 이 환경을 저렇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마치 기도를 리모컨처럼 사용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의 기도는 얼마나 간결하며 또한 통쾌하던지.

  

이렇듯 비탈진 삶 속에서 그분을 의지하고 살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 나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내 마음에 어리는 눈물같은 그 온기가 좋다.

 

그녀는 알까?

내가 그녀를 보며 웃을 때마다 사실은

그녀 안에 계시는 그분을 향해 웃고 있다는 걸.

 

새해..

그분은 또 어떤 사람들 속에서

지그시 나를 보며 알은 체를 하실지...벌써부터 가슴 설렌다.

그분 만날 생각에 행복하다.

 

 

조희선/ 시인,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 시집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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