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비평 - 조욱종]

김승훈 신부님을 생각한다.

▲ 김승훈 신부 (사진 제공 / 천주교인권위원회)
정의구현사제단의 1세대 신부님들 중에서 벌써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 중에 특히 김승훈 신부님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이 정의구현사제단 대표를 맡았고, 중요한 역사적인 시점에서 특별히 활동하신 것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분에게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승훈 신부님의 성모신심 때문이라 하겠다.

푸른군대가 여는 통일을 위한 기도회와 미사에 김승훈 신부님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교회 신문 기사를 보게 되면서, 반독재 저항운동과 성모신심과의 연관성에 나는 이해가 부족하여 의아해 했었다. 푸른군대는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 모임으로 공산치하에서 억압받는 교회를 위한 기도로 특히 유명한 신심단체다. 그들은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공산당 정권들이 무너진 것이 푸른군대의 기도 덕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할 정도다.

그러한 푸른군대가 매년 임진각에서 여는 기도회에 참석하신 신부들의 명단에서 항상 김승훈 신부님의 이름을 발견하니 참 의외의 일이구나 싶었다. 온전한 민주화의 실현을 구현하기 위한 정의구현사제단 활동과 공산치하의 교회를 위한 기도회는 일면 상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족한 내 입장에서 볼 때 김승훈 신부님은 이해하기 힘든 점을 지니고 있었다.

김승훈 신부님은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한 정의구현사제단에 초창기부터 참여한 분이며, 1987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이 땅의 민주화를 한 단계 높인 6월 항쟁을 촉발시킨 역할에서 주역을 맡으신 분이다. 6월 항쟁의 불을 지핀 사건, 경찰이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하다가 죽인 사건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서의 그 엄숙한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폭로를 통해서 경찰의 활동이 독재정권의 연장을 위한 정치활동이었음을 알게 된 국민들이 분노하여 거리로 나섰고, 거대한 힘으로 증폭된 국민적 저항에 밀려 드디어 전두환 정권은 항복하고야 말았다. 그 서슬 시퍼런 독재정권들에 맞서 투쟁을 해온 김승훈 신부님이 성모신심도 각별하여 공산치하에서 신음하는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활동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은, 요즘 반민주화 세력을 꾸짖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를 두고 되레 종북몰이로 왜곡하는 어리석은 집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이제는 김승훈 신부님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성모님이야말로 바로 잘못된 권력에 맞서 저항하여 세상을 해방시키는 힘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 온전히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그 모범의 전형을 보여주신 동정 성모 마리아를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12월 9일로 그 축일을 정하여 기념하고 기린다. 마리아의 성령에 의한 잉태로 시작되는 봉헌의 사건을 살펴보자.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갈을 받은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한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라는 전갈을 받았으니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름까지 예수라고 지어주면서 아들 예수는 큰 인물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릴 것이라고까지 하였으니 어찌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곰곰이, 즉 따져가며 깊이 생각한 마리아는 세 가지로 결론을 마무리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응답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세 가지 결론을 알아들을 수 있다.

첫째로,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도무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과학적으로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이 불가능한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하느님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진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새삼 다시 깨달으면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성령에 의한 잉태 사건의 도구로 봉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을 때에 생길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기로 작정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희생을 미리 보는 듯하다.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 세상의 백성들을 구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기 위해 내 한 몸을 온전히 봉헌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더 나아가 온갖 박해가 들이닥치더라도 하느님의 도구로 봉헌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축복이고 영광이다.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일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기꺼이 감수하고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 것이라고 작정한 것이다.

세 번째는 더욱 감동적이다. 이 모든 결정을 걱정보다는 오히려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 동정 마리아의 순수함이 눈에 선하지 않는가? 그것은 기쁨으로 벅차오른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바로 그 응답이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시련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함이 바로 순교의 영성이며, 성모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이다. 그래서 나는 김승훈 신부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제단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되기 위하여 스스로 봉헌한 사람들로 모여 있다. 성모님이 보여주신 그 모범 따라, 이미 왔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향하기 위하여, 먼저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세상을 향해 외치고, 세상의 평화를 가로막는 걸림돌들은 치우고자 함께 힘을 모은다. 새삼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묻는 요즈음,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무염시태 성모님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이다.


조욱종 신부
(요한)
부산교구 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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