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MBC TV 공재성 PD

 

공재성PD

“요즘 우리 사회는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것이 아니라 죄다 비용 창출의 도구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금 또다시 매섭게 몰아치고 있는 기업의 구조조정이 그렇고, 비정규직 문제 또한 자본주의의 생산력 위주의 사고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각박해진 우리 사회 속에 수도자의 삶의 모습을 통해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 싶었습니다.”

대구 MBC TV에서 2008년 성탄 특집으로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 <하느님의 정원-베네딕도 대구 수녀원>을 기획 연출한 공재성 PD(방송본부 기획제작팀/국장)는 “그 어느 때보다 영적 고갈이 심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도생활 속에서 오롯한 하느님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프로그램 기획의도를 밝혔다.

대구시 북구 사수동에 위치한 툿찡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기도하며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며 각자 맡은 소임에 충실한 수녀들의 생활을 가감없이 보여준 이 프로그램은 수도 공동체를 통해 조화로운 세상을 가꾸어가는 모습을 담아내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총 145분 방송, 베네딕도 대구 수녀원 생활 담아

이 프로그램은 1부에서는 '기도하며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서에 따라 아침기도와 묵주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 등의 영성 생활을 비롯 농장, 제의 제작실, 재봉실 등의 노동 현장과 노동의 시간들을 담고 있다. 또한 공동 휴게시간과 머리수건을 수여하는 청원식, 세족례를 행하는 수련식, 서원 25주년 은경축 축하 예식 등이 75분 동안 잔잔하게 화면을 채운다.

2부는 수녀가 되는 첫 관문인 입회식,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창립 123주년 축제, 순교의 땅 전주 성지순례, 서원 50주년 금경축 예식, 베네딕도 영성관 축복식, 북한 어린이 돕기 바자회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방영 시간은 70분.

1부와 2부에 걸쳐 145분간 방영된 <하느님의 정원-베네딕도 대구 수녀원>은 공재성 PD가 4년 전부터 기획, 준비해 왔으며 제작 기간도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요즘은 아침마다 하는 명상 시간에 '뜻대로 하소서'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수녀님들도 그렇게 말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프로그램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수녀님 한분 한분의 모습이 전혀 연출되지 않고 해맑은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앵글에 잡혀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프로그램 방영 후 시청자들의 피드백 역시 그런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촬영 기간 내내 수녀원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공재성 PD는 수녀원을 오갈 때 자연스럽게 성호를 긋기도 했다는데, 정작 그는 불교 신자로 대구 MBC 불교 연구회 회장이라고 하면서 웃는다.

우리 사회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소통 부재' 현상은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나의 것만 소중하고 나와 다른 상대방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이 사회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해왔는데 정작 공재성 PD는 그런 것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녹여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종교 간의 대화 필요, 영상 매체 통한 소통 도모

사진출처/영남일보
공재성 PD는 '영상 매체'라는 또  다른 소통 언어를 통해 종교 간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애쓴다. 지역에 살며, 지역 매체를 통해 지역 문화를 선도해 가기 위해 늘 깨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다는 그는 <하느님의 정원-베네딕도 대구 수녀원>을 제작하기 전, 부처님 오신 날 특집으로 <비구니 스님과 수녀님의 '아주 특별한 만남'>을 기획 제작하기도 했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도 종교 간의 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특집을 기획할 때 수녀님 섭외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오히려 불교 측 섭외가 어려웠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구니 선원이라는 문경 윤필암에서부터 사찰 20여 곳에 섭외를 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성사가 되지 않았어요. 오죽했으면 해인사 정현 포교국장 스님이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까지 했겠어요. 수녀원에서는 오히려 별말 없이 섭외에 응해줬는데 말입니다. 그 때 마음 속으로 성탄 특집으로 수녀원 생활을 담아보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하느님과의 약속이라고나 할까요. 그게 이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계기가 된 셈이죠."

공재성 PD가 프로그램을 통해 가톨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꽤 오래 전부터라고 한다. 1996년 성탄 특집으로 <일본 속의 조선인 순교자 오따 쥬리아>를 제작했고, 1980년대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제작하기도 했단다.

1984년 대구 MBC PD로 입사한 그는 <석굴암의 신비>로 제 9회 MBC 전국 계열사 작품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신라>라는 작품은 제 21회 한국 방송대상 TV 지역문화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가톨릭과 불교 등 종교색 짙은 프로그램 뿐 아니라 <어느 귀국선의 실종 45년> <종군 위안부> <북해도의 한을 찾아서> <8세 징용 소년의 실체> <히로시마의 날>등 일제의 만행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을 밀도있게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한 '몽골' 10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이를 내용으로 한 DVD와 책자를 발간해 교육용 등으로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와 뿌리를 찾는 것이 제 작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한 때는 한일 관계사 전문 PD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향토 문화 유적 탐방에 온 정열을 쏟기도 했구요. 중앙 방송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제작 여건이긴 하지만 모든 길은 통한다고, 뜻을 가지고 제작을 한다면 못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단지 조금 더 어렵다는 것 뿐이지요. 이번 성탄 특집 역시 뜻을 세우고 4년 만에 카메라를 돌리지 않았습니까? 올해도 의미있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수녀원 내의 평등 의식, 나눔과 섬김이 있는 공동체 인상적

그가 성탄 특집으로 베네딕도 대구 수녀원을 제작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종교적 소재를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중압감이었다. 미묘한 차이로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지는 않을까, 전례 속의 예식 하나하나에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 표현해야 하는데 과연 제대로 전달이 될까? 특히 수도자인 수녀들의 모습을 진실되게 표현해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감이 가장 컸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수녀님들이 촬영에 부담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상을 드러내 주셔서 많은 힘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평등 의식이 수녀님들의 삶 속에 드리워져 있어 좋았어요. 수녀원장이라고 해서 권위적이지도 않았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소임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들, 낮춤과 섬김이 있는 삶이었어요. 우리 사회는 지나친 권위 의식과 자리에 연연해 하는데...... 수녀원 생활처럼 선배와 후배가 모두 제자리에서 각자의 소임에 충실하는 '자기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도 구현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수녀원의 사랑과 평화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


또하나 그가 잊지 못할 일은 촬영 막바지에 애를 태우게 했던 눈오는 장면을 촬영한 날이라고 한다. 방송 일시가 12월 20일과 21일 두차례, 그리고 앙코르 방송이 성탄절인 12월 25일로 편성돼 있는 상태에서 겨울 풍경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눈오는 장면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내 속을 태웠지만 눈을 오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하늘이 할 일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촬영으로 수녀원의 피정이 잡혀 있던 12월 첫번째 주 금요일. 하늘은 축복이라도 내리는 양 눈을 뿌려주었다.

"대구 시내 쪽에는 눈이 적게 왔는데 수녀원이 있는 곳에는 눈이 제법 많이 왔어요. 눈오는 수녀원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갖다대니 눈이 펑펑 쏟아졌고, 촬영이 끝나니 거짓말처럼 눈이 그쳤어요. 우리는 아주 소중한 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죠. 인간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죠.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합니다. 감사한 일이구요."

수녀원 안에는 선후배가 있고 연륜의 중요성이 인정되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었다고 말하는 공PD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번쯤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베네딕도 수녀회의 '기도하며 일하라'는 모토는 불교에서 말하는 백장스님의 규율 같다고 공PD는 말한다. '일일 부직이면 일일 부식이라' 하루 일하지 아니하면 하루 먹지를 말라는 말이란다. 예나 지금이나, 또한 종교를 망라해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또한 그는 수련식 때 세족례를 행하는 것이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이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가난과 겸손, 그리고 기도하고 일하면서 하느님의 정원을 가꾸고 있는 베네딕도 대구 수녀원. 그들의 소박하고도 진실한 삶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맞물려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연출자의 의도대로 국민을 섬기지 않는, 이웃을 섬기지 않는, 그리고 자기 안에 함몰돼 사랑을 나눌 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깨어나 함께 나누고 소통하며 우리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 대구 MBC 2008 성탄 특집 프로그램 <하느님의 정원-베네딕도 대구 수녀원>은 www.tgmbc.co.kr 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상인숙/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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