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대림절을 맞이했으니 전례력 상으로는 새해를 맞이한 셈입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탄절, 크리스마스, X-마스라고 널리 알려진 이날이 지금은 전세계인의 축제가 되어버린 까닭에, 그 뜻에는 관심 없이 즐기는 사람이 분명 있으리라 어림하면서 이번 주 속풀이를 시작합니다.

인사말에 표현했듯이, 그리스도 신자들은 성탄을 앞둔 시기를 전례력으로는 ‘대림 시기’나 ‘대림절’이라고 부릅니다. 구세주가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 기다림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정리하기 위해서 영광에 싸여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의미와 사람이 되어 오시는 하느님, 곧 아기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요즘의 현실은 교회에서 이 기다림의 시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세속의 상혼이 더 발 빠르게 도시를 멋진 전구 장식으로 꾸미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백화점의 외벽과 시청 광장은 아주 대표적인 치장 공간이 됩니다.

일찍 해가 진 거리를 거니는 이들에게 야경 사진 배경이 많아진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스도 신자들인 우리는 주님께서 사람이 되려고 오신 사건을 기념하는 거룩한 탄생의 날이 성탄절임을 기억하고 알려야겠습니다. 특히 단순히 세속적 축제로만 성탄을 이해하는 이웃들에게 이 사건의 의미를 환기시켜 줄 만합니다.

▲ 크리스마스 나무와 구유가 놓인 마구간 모형 ⓒ박홍기
이때, 곁들여 설명하면 좋을 것이 있습니다. 장식적으로 말이지요. 말 그대로 장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성탄절을 준비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이어 내려오는 세 가지 의미 있는 장식이 있으니, 그것들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주는 겁니다. 그 3종 세트는 바로 대림환, 크리스마스 나무, 구유*가 놓인 마구간 모형입니다. (* 소여물이 담긴, 그러니까 소의 밥그릇인데, 이곳에 지푸라기를 깔고 아기 예수님을 뉘인 것이죠.)

대림환(Advent wreath)은 흔히, 사철 푸른 나무 가지를 둥글게 말아 그 위에 초 네 개를 올려놓은 것입니다. 천주교 스타일은 진한 보라색에, 옅은 보라색, 장미색, 흰색, 이렇게 네 가지 색으로 초를 구성합니다. 개신교는 붉은 색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초의 개수도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성당에서는 한 주일에 하나씩 촛불을 켜며 아기 예수님이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둥근 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푸른 잎과 촛불은 한 겨울을 견디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초의 색은 진한 색에서부터 흰색으로 켜나가는 데, 이것은 ‘빛이 사람이 되시어 오시는 사건’에 점점 더 다가감을 알려줍니다. 빛이 어둠을 이길 것입니다. 대림환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작년 이맘때 김홍락 신부님이 쓴 속풀이(‘대림초와 대림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탄 나무를 위해서도 상록수가 사용됩니다. 한결같이 건강한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나무 장식물들은, 나무 꼭대기에 큰 별, 가지에 걸린 다양한 색의 구슬들입니다. 큰 별은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의 마구간까지 인도해준 별이고, 가지에 걸린 장식 구슬은 구약에 나오는 금단의 열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 와플 파이 같은 것을 걸어놓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성체와 그것을 통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 밖에 천사들을 별 주변에 걸어놓기도 하고,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겠다고 큰 양말을 달아놓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탄 나무는 구원으로 이끄는 빛에 대해 들려줍니다. 나무에 열렸던 금단의 열매를 첫 인간들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 따먹었고, 이를 통해 인간은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로부터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는 의미를 잃었습니다. 이제 다시 나무를 통해 창조의 본래 뜻이 복원될 것임을 성탄 나무가 보여줍니다. 성탄 나무는 훗날 예수가 달릴 십자 나무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 뒤로 부활이 있으며, 이 나무를 통해 구원에 이릅니다.

유럽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진짜 나무로 된 성탄 나무를 살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나무를 파는 시장에서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산물도 있고,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며 속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한 와인(뱅쇼, Vin chaud)도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라는 도시는 바로 이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던 학교 선배가 이 시기에 눈 쌓인 시장에 가면 느낄 수 있었던 그림 같은 분위기, 나무를 사는 아이와 아빠, 먹거리 등의 이야기를 꿈꾸듯 들려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에 꼭 가보리라 꿈꿨는데, 들러보지 못하고 귀국했지 뭡니까. 성탄절을 앞두고 이 유명한 시장에 가자니, 기차 값은 비싸고 자리는 없는 상황이 벌어지더군요. 그곳이 유명하다는 것은 저만 알고 있던 정보가 아니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구유 장식 혹은 마구간은 성탄 시기 동안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주로 성당 안, 혹은 마당에 설치됩니다. 하지만 작은 구유 세트를 집 안에 개인적으로 설치해도 좋습니다. 특히 성탄 나무 아래에 꾸며놓으면 아주 훌륭한 장식이 되지요. 비어 있던 구유는 성탄 밤 미사에 아기 예수님 상을 안치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보여줍니다.

구유(엄밀히 말하면 구유가 놓인 예수님 탄생 현장 세트)를 발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사람들에게 아기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 탄생하셨는지 실감나게 보여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거룩한 탄생이 있던 날의 고요와 가난함을 사람들이 실제로 바라보도록(관상하도록) 해준 훌륭한 도구인 셈입니다.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처럼 성경을 읽으며 상상하는 기도 방법을 입체감 있는 장식으로써 놀이처럼 승화시킨 것이라 하겠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앞에서 머물며 누구나 관상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재현한 성탄 장면은 실제로 사람들과 짐승들이 각자의 역을 맡아 판토마임 식으로 구성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설명을 토대로 만들어졌던 이 장면이 이탈리아 전역에 퍼지게 됐고, 성탄 행사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사람과 짐승의 역이 인형으로 대치되면서 요즘 우리가 볼 수 있는 구유 세트가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당에서 성탄 축제 때, 아기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연극으로 연출해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효시가 성 프란치스코인지는 모르고 있었군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시기에 거리를 거닐며, 사진 찍기에만 몰두하지 마시고, 이 장식들이 의미하는 바를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좀 더 정성껏 마음을 준비하며 기다림에 머무실 수 있고, 주님 탄생 장면을 관상할 수 있을 겁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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