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 116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렇게 이르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 보시오. 그러면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터인데 그 새끼도 곁에 있을 것입니다. 그 새끼를 풀어 나에게로 끌고 오시오. 3 혹시 누가 무어라고 하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하고 말하시오. 그러면 곧 내어줄 것입니다.” 4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5 “시온의 딸에게 알려라. 네 임금이 너에게 오신다. 그는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타시고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6 제자들은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어 놓았다. 7 예수께서 거기에 올라앉으시자 8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놓기도 하였다. 9 그리고 앞뒤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올렸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시민이 들떠서 “이분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11 사람들은 “이분은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요” 하고 대답하였다. (마태 21,1-11)

▲ <예루살렘 입성>, 랭브르 형제 작품 세부
예수는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처음 예루살렘에 온 것은 아닌 최후의 입성(入城)이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마침내 목숨을 내걸었다. 여기서 의문 하나. 예수는 왜 예루살렘 시내에서 그전에 활동하지 않았을까. 만일 예수가 몇 년 뒤에 예루살렘에서 최후의 결전을 맞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왜 예수는 그렇게 서둘렀을까. 아쉽지만 상상을 멈추고 본문에 집중하자.

예수는 왜 예루살렘에 왔을까. 이 질문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유다교 지배층과 로마 군대에 저항하러 예루살렘에 왔다.

마태오는 마르코처럼 예로솔뤼마(Jerosolyma)라는 그리스어 형태의 단어를 쓰고 있다. 오직 마태오 복음서 23,37에서만 거룩한 뜻이 담긴 예루살렘(Jerusalem)이란 단어가 보인다. 예수가 처형된 이 도시에 대한 섭섭함을 마태오는 감추지 않는 것이다.

‘무화과나무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벳파게의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 유다교 문헌에 벳파게는 예루살렘 지역에 속한다고 나와 있다. 벳파게는 유다전쟁에서도 파괴되지 않은 것 같다. 올리브 산을 공동성서(구약성서)는 자주 언급했지만 그 산의 이름은 즈카르야서 14,4에만 보인다.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사도 1,12)인 952m 떨어진 동쪽에 있다. 예수 당시 그곳에서 메시아가 나타나리라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그리스어 폴로스(polos)는 여러 종류 짐승의 새끼 또는 말을 가리킨다. 그 단어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은 망아지를 연상했을 것이다. 2절의 매여 있던 나귀는 아들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 이야기(창세 49,8-11)와 이어져 있다.

4절에서 어떤 예언자의 말씀이 이루어졌는지 마태오는 말하지 않았다. 5절 첫줄은 이사야서 62,11에서, 나머지 줄은 즈카르야서 9,9에서 가져왔다. 둘 다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오는 구원자를 알리고 있다.

5절 인용문에서 주목할 단어는 프라우스(praus)다. ‘부드러운, 친근한, 온화한’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평화와 비폭력을 나타낸다. 시온은 성전이 있는 언덕을 가리키지만 예루살렘과 동의어로도 쓰였다. 시온의 딸은 에루살렘 시민들을 가리킨다.

예수가 두 마리 나귀 위에 동시에 타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보통 두 다리를 같은 방향으로 모으고 나귀 한 마리 위에 올라탔다. 마태오는 자세한 설명에 능숙한 편집자는 아니다. 설명의 정확함보다 마태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시민들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아보도록 촉구하는 일이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여기에서만 “많은(pleistos)”이란 단어가 군중에게 덧붙여졌다. 마태오는 실제로 일어난 장면보다 좀 더 과장되게 표현한다. 군중은 예루살렘 시민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순례 왔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옷을 길에 까는 것은 왕의 즉위식 때 백성들이 하는 행동이다(2열왕 9,13). 예수가 정치적 메시아임을 알려주는 표현을 마태오는 숨기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까는 행동은 경배의 표시다. 이 소식을 분명히 들었을 유다교 지배층과 로마 군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축제 기간 중 백성들의 소요 사태를 막기 위해 예루살렘에 진군한 로마 군대의 경계심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도우소서’라는 뜻의 “호산나”는 유다교에서 초막절 축제에 찬송가로 쓰이던 시편 118장에서 부르던 단어다.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라는 표현이 디다케 10,6에 보인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를 가리킨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는 원래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순례자들에게 유다교 사제가 하던 인사말이다.

10절에 나타난 예루살렘 시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 요한 복음에는 군중이 예수를 맞으러 나갔다고 마태오와 다르게 보도되었다(요한 12,18). 예수의 예루살렘 도착은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의 도전과 저항을 알리는 신호다.

오늘의 본문은 신학보다는 신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전례(성례전)에 도입되고 연극과 행진으로 만들어져 신자들의 참여가 격려되었다. 행진은 4세기에 예루살렘에서 거창하게 행해졌다. 행진과 연결되어 종려가지를 축복하는 관행이 생겨났다. 7세기부터 대림절 주일 독서에 포함되었다. 중세 말에는 수난 연극이 널리 퍼졌다. 개신교에서 즈카르야서 9,9과 연결되어 대림절 신심에 활용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는 죄와 죽음을 이겨낸 예수의 위대함을 주로 칭송하였고,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겸손함을 더 강조하였다. 그림, 노래, 연극, 행진 등이 성서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 되는지 알려준 본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브라질의 카마라 대주교는 “제가 당신의 나귀가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로메로 대주교는 “저는 당신의 마이크입니다”라고 기도한 적 있다. 소박하지만 얼마나 뜻 깊은 기도인가. 하느님을 비서 부리듯 경거망동하는 기도와 그 수준이 다르다.

체 게바라 일행의 아바나 입성처럼, 환호하는 군중이 예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누구처럼 군인을 앞세워 시청 앞을 행진하거나, 누구처럼 탱크를 앞세워 한강 다리를 건너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 어린 나귀에 탄 모습은 평화를 사랑하고 폭력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폭력을 문제 해결의 궁극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세력에게 예수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문 앞의 경찰에게 방패보다는 꽃이 더 잘 어울린다. 꽃은 총칼보다 아름답고 힘이 있다. 폭력은 비폭력을 이길 수 없다.

오늘 본문은 또 하나의 숙제를 남기고 있다. 10-11절에 엿보이는 갈릴래아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의 분열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분열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분열은 예수의 죽음 뒤에 깔려 있는 배경음악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예수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는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그리스도교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회개하고 정신 차려야 한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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