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명자 평화3000 상임대표

평양 장충성당이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사단법인 ‘평화3000’ 대표단과 수도자, 평신도 등 12명은 지난 11월 10일 평양을 방문해 장충성당 신자들과 함께 은경축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1988년 9월 완공된 장충성당은 북한의 유일한 성당이다.

대북지원 사업을 펼쳐 왔고, 이번 은경축 미사를 함께 준비한 평화3000도 올해로 10주년을 기념한다. 평화3000을 8년째 이끌고 있는 이는 신명자 상임대표. 그는 평생 빈민운동에 몸담았던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의 부인이기도 하다. 이번 은경축 미사를 위해 장충성당을 방문했던 신명자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현재 남북교류가 막혀 있고, 오히려 냉각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북에 대한 지원은 이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문제, 인류 공영의 차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신명자 대표와의 일문일답.

▲ 신명자 평화3000 상임대표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 평화3000은 어떻게 설립됐고,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신명자 상임대표 : 평화3000은 남북간 교류 · 협력,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을 통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 기여, 지구촌 이웃에 대한 구호 등을 목적으로 2003년 11월 24일 설립됐다. 지난 10년간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남북 사회문화교류, 방북 사업 등 대북 사업을 비롯해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에 대한 주거환경개선, 의료, 장학, 농업개발지원 사업 등을 펼쳐왔다. 하는 일이 무척 많다. 현재 회원은 2천여 명 정도다.

평화3000 설립은 2002년 대대적으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함께 북한을 방문한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목격한 북한의 상황은 상당히 참혹했다. 굶어 죽는 이들이 200만 명이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전기도, 차도 없었다. 다녀오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어려운 이웃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렇게 그냥 있는 것이 옳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결국 “하자”고 결의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통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 오랫동안 대표를 맡고 있다. 천주교 사제가 주축이 되어 평화3000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대표를 맡게 됐나?

초창기 2년 이후 3년째부터 맡고 있어서 8년째다.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북지원, 해외지원은 무엇보다 ‘돌봄’이다. 특히 북한 지원의 경우도 그렇고 평신도 여성에게 더 적합한 자리라고 함께하는 분들이 판단한 것 같다. 올해가 2년 연임한 임기 마지막인데, 내년부터는 쉴 생각도 하고 있다.

- 그동안 대북지원 사업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일단 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으로 의약품, 의류, 수해 이재민을 위한 밀가루 등 긴급구호 지원, 못자리용 비닐과 비료 등 농업 지원, 승강기 등 시설 지원을 했고, 사회문화교류 사업 차원에서 체육용품과 체육시설 설비 등을 지원했다. 지속적으로 방북 사업을 하면서 장충성당 미사도 봉헌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왔다. 재원 마련은 일부 모금과 단체나 지자체와 연계하는 방법으로 해결한다.

나름대로 많은 일을 했지만 대표적인 것은 장충성당 뒷마당에 콩우유공장을 세운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가동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하루 5천 잔을 주변 탁아소에 공급할 수 있었다. 공장에 필요한 전기, 설비, 재료, 냉장차까지 모두 지원했다. 또 두 지역에 두부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재가동된다면 공장의 시설을 모두 갈아야 하는 형편이다.

▲ 평양 장충1동에 자리 잡은 장충성당. 북한 유일의 성당이다. (사진 제공 / 평화3000)

▲ 지난 11월 10일 봉헌된 장충성당 은경축 미사 (사진 제공 / 평화3000)

- 그동안 북한을 방문하고 함께 일하면서 가졌던 느낌은 어떤 것인가?

물론 북한 사회의 일부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라는 느낌이다. 장충성당의 신자들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경우, 어릴 때 세례를 받았던 분들과 손잡고 인사를 하다 보면, 그들이 깊은 신앙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동하는 중에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가난은 굶고, 죽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일으킨다.

- 평화3000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고 통일을 이루는 길에 작은 물꼬를 만드는 것이다. 또 그것이 더 큰 물길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은 물결이라도 일으키고, 작은 길이라도 놓고, 돌 하나라고 놓고 가자는 생각이다. 또 이런 생각을 갖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북에 대한 지원은 이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문제, 인류 공영의 차원이다. 예수님이 계시다면 굶주리는 그들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더 이상은 멀리 돌아가지 않기를,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일단 보이는 사람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평화3000이라는 이름에는 하루에 3,000원으로 남과 북이 함께 살자는 뜻도 있다. 하루 한 끼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북한 지역의 일부가 아니라 더 많은 지역,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우리의 도움이 닿기를 바란다.

▲ 평화3000은 2006년부터 장충성당 뒤편에 콩우유공장을 세우고, 모든 설비와 재료를 지원했다. 콩우유공장에서 생산된 콩우유는 하루 5천 잔 정도로 인근 탁아소 아이들에게 제공됐다. 그러나 지금 콩우유공장은 운영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사진 제공 / 평화3000)

▲ 평화3000은 2012년 북한 수해 복구를 위한 지원에 나섰다. (사진 제공 / 평화3000)

신명자 대표는 그동안 북한을 오가며, 보고 듣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공개할 수는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에게 콩우유나마 먹일 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지금은 멈춘 콩우유공장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그렁했다. 그 모든 안타까움과 슬픔, 보람과 기쁨을 가져다준 지난 8년을 돌아보며 신 대표는 끝으로 “내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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