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12]

▲ 모차르트의 1770년대 초상화
사람들에게 최고의 오페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꼽곤 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대변하고 있듯이 이 작품을 녹음한 음반의 종류만 해도 30여 가지가 나와 있어서, 음악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프랑스의 희곡 작가인 보마르세는 3부작의 희곡을 썼는데, 그 중 1부가 <세비야의 이발사>였고, 2부가 <피가로의 결혼>이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마음에 든 모차르트는 대본 작가인 다 폰테와 상의해 이 희곡을 토대로 대본을 쓰게 했고, 그 대본을 가지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썼습니다.

그리고 다 폰테가 쓴 또 다른 대본들을 가지고, 모차르트는 오페라 <돈 조반니>와 <코지 판 투테>를 완성했습니다. 모차르트와 다 폰테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이 세 오페라는 오늘날에도 음악과 대본 두 분야에서 모두 최고의 경지에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녀들뿐만 아니라 백작 부인에게도 치근덕거리는 케루비노를 군대에 보내기로 한 백작의 결정을 듣고, 케루비노를 약 올리는 피가로의 아리아. ‘나비야, 다시는 날지 못하리(Non piu andrai)’와 케루비노가 백작 부인에게 연정을 고백하며 부르는 아리에타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나(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 그리고 백작 부인과 하녀인 수잔나가 편지를 쓰며 주고받는 이중창 ‘산들바람에 띄우는(Che soave zeffiretto)’ 등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곡들입니다.

<피가로의 결혼>은 희극적이며 대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오페라로, 사건의 전개가 거침이 없고 빠르며 해학적입니다. 풍자적이면서도 당시 귀족들의 관심사와 사회 풍조를 짐작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페인의 세비야를 작품의 배경으로 하긴 했지만, 귀족들을 대놓고 풍자한 내용으로 해서 당시 오스트리아의 귀족들은 이 오페라에 대해 내심 불편하게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극 중에서 백작이 귀족의 신분으로 하는 일이 여자나 밝히고 그 외 하는 일이 특별히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비엔나에서의 초연을 비롯해서 몇 차례의 공연은 별다른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프라하로부터 초청을 받아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극의 내용이 풍자적임에도 불구하고 절묘한 선율과 경쾌한 리듬, 그리고 극적인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효과로 해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피가로의 결혼> 동영상 중에 칼 뵘이 지휘하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오페라가 있습니다. 비록 영화에 더빙한 것이긴 하지만, 캐스팅은 그야말로 최고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피가로 역에 헤르만 프라이, 백작 역에 피셔-디스카우, 수잔나 역에 미렐라 프레니, 백작 부인 역에 키리 테 카나와 등. 당시 명성이 높았던 가수들이 열연한 작품이었습니다.

피가로 역의 헤르만 프라이는 1973년 메트의 <세비야의 이발사> 공연 당시 ‘역대 최고, 더 이상 잘하는 것은 불가능’이란 찬사를 끌어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으며, 소리가 부드럽고 풍성했을 뿐만 아니라, 음역도 베이스에서 하이 바리톤까지 커버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리릭 바리톤이지만 중후하고 압도적인 성량이 자기 특징’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도 있습니다.

백작 역의 피셔-디스카우는 ‘딱딱하다고 여겨지던 독일어 리트에 마치 시를 낭송하듯 아름다운 울림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탈리아 오페라가 정교한 캐릭터 분석과 연극성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바뀐 것은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수잔나 역의 미렐라 프레니는 ‘내가 가수로 태어난다면 프레니처럼 노래하고 싶다’고 카라얀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인들이 있을 정도로 카라얀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악보 읽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파바로티도 그런 소문이 있었지요. 하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어렵고 긴 오페라를 몇 번 듣는 것만으로도 정확히 부를 수 있는 그들의 음악성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작 부인 역의 카나와는 ‘소프라노의 전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음역에서 전성기의 슈바르츠코프를 연상하게 할 정도의 좋은 음색을 보여주고 있는 리릭 소프라노이며, 수년 전에 내한공연을 한 바도 있었습니다.

프레니와 파바로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악보 읽기와 관련한 해묵은 논쟁이 떠오릅니다. ‘악보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 먼저냐, 아니면 소리만 듣고 기악 연주나 성악을 배우는 것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었지요. 대개의 경우 악보 읽는 법을 먼저 배우곤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이 음악을 습득하는 순서도 소리 듣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듣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악보 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악보를 보고도 무슨 소리가 날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예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악보를 보면 무슨 소리인지에 대한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다음에 소리를 내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다 보니 악보를 보고 소리를 낸 다음 그 소리를 듣고 안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느 방법이 맞는 것인지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음악가에 따라, 누구에게서 음악을 배웠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졌으리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프레니나 파바로티 같은 경우도 소리를 듣고 배우는 방법이 아니라 악보 읽는 법부터 배웠다면, 오늘날처럼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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