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책 <전두환과 헤로데> 공동 집필한 신성국 신부

지난 11월 29일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수도원 성당에서 열린 KAL858기 26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어르신은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해서, 나는 죽지 못합니다. 우리 아들을 봐야 죽지…”라며 울먹였다. 그는 ‘진상규명’이라는 네 글자를 자신의 목숨 줄로 단단히 엮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이날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이들이었다. 세상이 잊으려 해도, 더 이상 진실을 찾으려 시도하지 말라고 협박을 가해도 가족을 잃은 억울함 하나로 끝내 굽힐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가운데 신성국 신부(청주교구,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 파견)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의 책 <전두환과 헤로데>(목림, 2013)를 김정대 신부(예수회)와 공동으로 집필해 출간했다. 이 책에서 신 신부는 10여 년간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KAL858기 사건이 ‘조작, 음모, 그리고 날조된 거짓들’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추모제를 앞두고 신 신부를 만나 새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신간 <전두환과 헤로데>를 공동 집필한 신성국 신부는 “선거에 국가기관을 총동원하는 악습이 이어져오고 있다”며 “KAL858기의 진실을 규명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바로 이 악습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한수진 기자

- 책의 출간을 축하드린다. 책 제목을 <전두환과 헤로데>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성국 신부 : 성서에 등장하는 헤로데는 전두환과 매우 닮았다. 권력을 위해 인정사정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심지어는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까지 살해하는 헤로데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한국의 헤로데가 바로 전두환이라고 생각했다.

KAL858기 사건은 1987년 당시 전두환 정권이 기획한 ‘조작 사건’이다. 나는 전두환과 같은 불의한 자들이 뻔뻔스럽게 활개치고 다니는 것을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치관이 전도된 병든 사회인지는 그의 행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추징금을 받아내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조작’은 거짓말을 조장한다는 뜻이다. KAL858기와 관련된 정부 발표와 수사 기록은 진실을 은폐하고, 끊임없이 거짓을 꾸며낸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를 조작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거짓을 꾸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거짓을 꾸미고 조작이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거짓으로 숨기려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 작년에 출간한 책 <KAL858 전두환, 김현희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김정대 · 서현우 · 신성국 공저)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전작은 주로 김현희의 신원을 둘러싼 거짓과 조작 증거들을 다뤘다. 이번에 나온 새 책은 사고 당시 정부가 사고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당시 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정부의 사고 조사는 부실한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이었다. 정부의 발표 자체가 하나의 ‘소설’이었다는 것을 책에서 조목조목 입증했다.

- KAL858기 사건의 가장 윗선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보는 건가?

▲ <전두환과 헤로데>, 신성국 · 김정대, 목림, 2013
당시 전두환은 안기부를 통해 정치를 했다. 안기부가 그의 수족이었다. 그러니 안기부의 활동은 전두환 정권의 유지를 위한 행동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전두환은 왜 이 사건이 필요했을까? 사건이 발생한 것은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둔, 정권 말기였다. 만약 민주정부로 정권교체가 일어난다면, 전두환은 7년 동안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민주정의당 후보 노태우가 전두환의 구세주인 셈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태우는 여론조사에서 김영삼에게 한참 뒤지고 있었고, 심지어 김대중보다도 지지율이 낮았다. 전두환이 1980년 민주화의 봄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 후 7년을 기다린 국민들은 6.10 항쟁으로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때문에 전두환은 일개 간첩단 사건만으로는 선거판을 뒤집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거다.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국민에게 던져줄 사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 KAL858기 사건은 사건의 진실 여부와 별개로, 집권여당이 대통령 선거에 안보 위기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 왔다.

자유당에서 민자당, 새누리당으로 이러지는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공정선거를 하지 않는다. 선거에 국가기관을 총동원하는 악습이 이어져오고 있다. 국정원과 군을 선거에 동원하는 걸 봐라. 내가 KAL858기의 진실을 규명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바로 이 악습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다. 무슨 취미활동으로 하는 게 아니다.

부정선거 사건의 진상규명을 하지 않으면, 악습은 반복되고 국민들의 민주주의 선거는 계속 짓밟힐 수밖에 없다. 이것이 매듭지어지지 않으니, 선거를 위해 사건을 조작해도 괜찮은 거구나 하고 또 반복하는 거다.

그래서 이번에 박근혜 정권의 부정선거에 책임을 물으며 사퇴를 촉구한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신부님들은 그야말로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 하느님이 파견하신 예언자들이다.

- 이 책을 통해 교회에 전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가.

분단. 한국 천주교회가 분단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 앞에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다. 분단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복음화니, 선교니 하는 것은 기복신앙에 빠진 종교일 뿐이다. 사두가이들과 같은 신앙에 머문다는 말이다.

분단의 상태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다. 성령이 아닌, 사탄이 만들어 놓은 악의 구조에 협조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한국 천주교회가 분단의 시대에 종교로서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망각하고 신자 수를 늘리는 데만 몰두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일차적 사명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엉뚱한 일만 하는 것이다.

분단은 세상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악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면, KAL858기 사건처럼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당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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