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금자 씨의 어린이카페 이야기]

비 내린 후 바람이 지나가고 나니 나무에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바람에 밀린 감나무는 녹색의 여름 의상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자 뙤약볕 아래서 아름아름 맺은 열매들을 오롯이 드러냈다. 나무에 매달린 채 익어야 홍시의 참맛을 온전히 느낄 테지만 그것을 기다리다가는 땅바닥에 곤두박질쳐서 잔뜩 흙이 묻는지라 일찌감치 가을걷이를 했다.

큘로 아저씨는 양파를 담았던 망 가장자리에 철사를 넣고 그 끝 한쪽에 정원용 전지가위를 붙이고 이어서 3미터 가량의 긴 대를 망에 연결하여 잠자리채 모양의 감 따는 도구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하여 높게 달린 감들을 용케도 다 땄다.

▲ 맥가이버 큘로 아저씨가 손수 만든 잠자리채 모양의 긴 장대를 가지고 감 수확에 나섰다. ⓒ최금자

큘로 아저씨의 별명은 맥가이버다. 못하는 것 빼고 다 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남자다. 큘라 아줌마는 죽었다 깨나고 감 낚는 도구는 못 만든다. 아줌마의 임무는 잠자리채에 걸려든 주황빛이 감도는 감을 거저먹기로 집어서 상자에 넣으면 된다. 임무가 너무 쉬어 잠시 방심하다가 전지가위 끝에 몇 번 찔려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

감나무도 해거리를 하는지라 작년에 비해 작황(?)이 좋지 않았다. (남들이 들으면 감농사하는 줄 알겠지만 감나무는 달랑 한그루뿐이다.) 그래도 감을 담은 상자를 따뜻한 방에 들여놓고 하나씩 홍시가 되는 것을 기다렸다가 남편과 함께 먹는 맛은 겨울의 별미 중의 하나이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신자들이 봉헌한 과일을 모아 여러 사회복지단체에 나눠주는 부평1동성당에서 잊지 않고 까사미아에 과일을 보내준다. 앞마당에서 거둔 홍시를 아이들과 나눠 먹지는 못하지만 기증받은 감, 사과 그리고 귤을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준다. 사과는 저장성이 좋아 오래 놓고 먹을 수 있지만 귤과 감은 금방 상해서 주변에 있는 할머니들에게도 나눠드렸다.

간혹 마당에 있는 나무에 매달린 감들이 아직 익지 않았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녀석들이 몰래 따먹다가 낭패를 겪는다. 땡감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혓바닥은 물론 입안 전체에 떨떠름한 맛이 퍼져 물 헹굼을 해도 아무 소용없어 한동안 고생해도, 몰래 따먹는다는 쾌감 때문에 올해에도 여지없이 감 서리를 감행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까사미아의 단골인 빈, 형제인 연과 성. 녀석들은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장난을 치는 것을 즐겨한다. 퍼즐을 맞추다가 다 엎어놓고 줄행랑을 치지 않나, 카드놀이를 하다가 카드를 여기저기로 날려버리지 않나, 의자들을 다 엎어놓지를 않나. 대문 입구 담에 소담스럽게 피어 은은한 향기를 발산하는 국화 꽃잎을 한 움큼 잡아 뜯어 바닥에 버리지 않나.

같은 학년 친구들에 비해 키가 크고 인물도 훤칠한 빈. 여기까지는 참으로 만점인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언제부터 재미가 붙었는지 간식을 먹을 때, 놀 때 가리지 않고 억지로 트림을 하여 그 소리가 옆방까지 쨍쨍 울린다. 이에 질세라 그 옆에서 장단을 맞추는 연과 성 형제.

▲ 담벼락 아래서 감춘 신발을 찾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는 세 녀석 빈, 연 그리고 성 ⓒ김용길

한동안 남의 신발을 감춰 집에 가려는 친구들이 신발 없어졌다며 아우성을 치는데도 모르는 척하기가 일쑤였다. 잠잠하던 신발 감추기를 다시 시작했다. 동생인 성이가 형인 연의 신발을 담벼락 저편으로 던져버리고는 시치미를 뚝 뗐다. 한참동안 신발을 찾다가 담 아래에서 신발을 찾은 형은 자신도 다른 친구들의 신발을 종종 감춘 경력이 있는지라 나무라기는커녕 ‘헤헤’ 하며 웃었다.

장난이 심하고 정리정돈을 잘 안 하는 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아저씨와 아줌마가 열 받을 때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공부에 찌들지 않고 신나게 놀며 명랑한 아이들이어서 다행이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놀았던 까사미아의 추억이 평생 갈 테니.
 

최금자 (엘리사벳)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 대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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