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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게 글 쓰는 사람[레알청춘일기 - 여경]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흔히 듣는 조언은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한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런 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또 음미해보며 시간을 보내왔고 이제 어렴풋이 그 일이 무엇인지 발견한 것도 같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행복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이 마치 다른 이들의 삶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흔쾌히 선택하기 힘들어진다. 가령 글을 읽고 쓰는 일이 바로 그렇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면서 항상 문학 가까이서, 문학을 좋아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문학을 하는 일이 꼭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아무리 현실로부터 길어 올린 글들이라 하더라도 글을 쓰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언어들, 주장들, 관념들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또 글을 읽는 것도 그렇다. 물론 나는 시와 소설들 안에서 세계가 무한히 펼쳐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읽고 나서 삶에 대한 시선이 완전히 달라지는 작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문학을 읽는 것이 다른 세계, 즉 가상 세계에 매몰되는 것만 같고, 그 속에서 얻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마치 가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현실감각이 없다는 충고들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활동들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만족감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실은 오히려 벅차다. 활동에서 에너지를 얻기보다는 고갈되는 편이고, 하면서도 무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건 아마도 내적으로 경험들을 다듬고 글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할 여유가 없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활동을 힘들어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내가 활동을 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너무 약하고 소극적인 사람처럼 느껴져 주눅이 든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들어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박홍기

그러니까 이런 감정은 글을 읽고 쓰는 일 자체에서 생겨난 회의감이라기보다는 글 쓰는 행위와 다른 일을 비교하다보니 생겨난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바깥의 현실이 이렇게 처참하고 절박한데 그저 방 안에서 글을 읽고 쓰기만 해서 되겠는가라고 누군가 비난을 하는 것만 같다. 스스로가 굉장히 무능하고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런 느낌이 몰려와 짓누르는 날이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게 된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괴로워만 하다가 시간은 흐르고, 일은 더욱 바빠지는 악순환이다.

최근에도 학과 공부와 활동과 개인적으로 쓰려고 하는 글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무얼 먼저 해야 할지,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루는 그게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서 문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문학을 하는 것이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만 같을 때 나는 어찌해야 하는 걸까?” 친구는 그 느낌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거기서 현실이란 무엇인지를 물어보더니 이렇게 말해주었다.

“언어를 다루다보면 내가 너무 말에만 함몰되어 볼 것을 못 보나, 달을 가리키려 손을 들었는데 달은 떠올리지 못하고 손가락만 신경 쓰나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정도의 예민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을 다루는 감수성이 예민하면 할수록, 그 말이 담아내고 있는 현실의 깊이도 깊어지는 거 아닐까.”

비록 문자로 주고받은 이야기지만, 이 문장들은 내가 마주하는 현실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막막하고 망연해지던 시간들에 대해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문장이, 말이 가진 힘을 다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로 어떤 형태를 갖고 있지도 않고 대단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새로운 의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 글이 가진 힘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현실에 대해 당장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있고, 조금 더 의심하고 숙고하여 조심히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무래도 좀 더 천천히 바라다보고 기록하고 나누는 일이 즐겁다. 현실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고, 고민을 나누려는 노력임에는 차이가 없을 테다. 단지 조금 느릴 뿐이고, 조금 더 고민할 뿐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지극히 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격정이, 치열한 고민들이 자리하고 있다. 오히려 그런 느리고 조심스러운 태도가 깊은 숙고와 배려로부터 나오는 한층 더 적극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라는 김현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세세하게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내가 포착하지 못해 배제된 존재들은 없는지, 이 말에 상처받는 이는 없는지 살피며 나아가는 작업이 문학이라면 나는 그걸 성실히 행하고 싶다.

신념이 성찰 없이 굳어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도록 언제나 예민하게 나의 믿음을 벼리는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 비록 작은 결과물들 밖에 내어놓을 수 없다고 해도 정성스럽게 다듬은 글들을 내어놓으며 살고 싶다. 나의 문장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딱 그만큼만 욕심내면서 말이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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