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신학과 영성 이웃종교 이웃종교의 향기
“여호와의 증인, 왜 병역을 거부하냐고요?”[이웃종교의 향기 - 16] 여호와의 증인 백종건 변호사

1939년, 일제는 전쟁 수행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38명을 체포했다. 당시에는 교세가 미약했기에, 신자 거의 모두나 마찬가지였다. 이들 중 5명은 옥사했고, 33명은 1945년 해방 뒤에야 감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이른바 ‘등대사(燈臺社)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부가 편찬한 독립운동사 서적에 항일운동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2013년, 일제 치하가 아닌 독립국가 대한민국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은 여전히 군대를 거부한다는 죄로 감옥에 간다. 그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백종건 변호사도 2011년, 양심적 병역 거부로 법원으로부터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1년 6개월은 전체 유죄 판결의 상위 5%에 해당하는 중형이다. 일반인들이 1년 6개월을 받으면 100% 법정구속이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는 판사가 구속 여부를 묻는다. 백 변호사는 항소를 선택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제 신념으로 군인이라는 신분을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요.”

   
▲ 백종건 변호사 ⓒ문양효숙 기자

사실, 백종건 변호사는 타협이 가능했다. 그는 4주 동안의 군사훈련만 받으면 법무관으로 복무할 수 있었다. 사법연수원 교수들은 “총을 잡는 건 훈련 중 극히 일부이니 일단 가서 총만 못 잡겠다고 하라”며, 직접 훈련 장교에게 전화를 해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변의 안타까움은 백 변호사의 신념의 대가가 비단 1년 6개월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확정판결을 받으면 형기를 마친 후 5년간은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다. 게다가 4주간의 군사훈련만 감내하면 검사나 판사, 대형 로펌 등 다른 선택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신념을 선택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의 가르침에 최대한 충실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이다. 삶의 모든 기준을 성경에서 찾는다. 그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이유는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가치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백 변호사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죽일지도 모르는 전쟁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연습하는 게 괴로웠다”고 말했다.

“성경에서 유대인이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마음과 영혼과 정신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고요. 성경의 어떤 구절을 뽑아도 모두 사랑을 향하고 있다고 봐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백 변호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지 싸우라 하지 않으셨고, 잡혀가시던 날 밤에도 베드로가 예수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자 ‘칼을 잡은 자는 칼로 망한다’며 칼을 다시 넣게 하셨다”면서, “다른 사람의 양심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제 자신은 한 인간으로, 더욱이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총을 들 수 없었다”고 말한다.

세속권력이 아닌 하느님의 통치에 순종하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은 19세기 말 ‘성경연구생’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시작됐으며, 한국에는 1912년 선교사를 통해 처음 전파됐다. 한국에서 병역 거부 문제가 대두된 것은 10여 년에 지나지 않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로 수감된 여호와의 증인은 1950년 이후 17,540여 명에 이른다. 2013년 9월, 한국에서 수감 중인 여호와의 증인은 599명. 전세계 병역 거부 수감자의 95%에 해당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군복무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하지 않는다. 증인들이 인정하는 통치 권력은 오로지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별히 국기에 대한 맹세를 우상숭배로 여긴다.

“로마 시대 군기도 그렇고, 중세에도 국기는 충성을 맹세하는 대상이었어요.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죠. 국가를 존중하지만, 저희는 하느님께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국가에 전면적인 숭배를 바칠 수 없어요. 만들어진 것에 절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이 국법이나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병역법을 제외한 법을 모두 잘 지킨다. 백 변호사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세속 권위를 따르는 방법은 ‘상대적 순종’이라고 설명한다.

“저는 사법연수원 시절, 국가의 녹을 받기도 했고 개인 변호사이긴 하지만 국가의 공인된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니 더욱이 국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국가의 모든 법을 다 지켜요. 하지만 세상의 가치와 부딪힌다면 통치자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게 먼저죠.”

   
▲ 성경 구절을 찾아 설명하는 백종건 변호사 ⓒ문양효숙 기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을 따라
성직자 대신 봉사직인 장로회와 토론 형식의 집회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이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따라 사는 삶을 지향한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은 따로 성직자가 없다. 대신 봉사직인 장로들이 있다. 장로회의 추천과 만장일치 동의로 선출되는 장로는 집회를 준비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등 회중(여호와의 증인은 교회를 ‘회중’이라 부른다)의 구석구석을 살핀다. 장로는 나이에 상관없이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 번째 서간 3장에 기록된 ‘교회 지도자의 자격’을 그대로 따른다. 장로 선출뿐 아니라 장로회의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로 한다.

집회(Meeting)는 다섯 개가 있다. 백 변호사가 몸담고 있는 회중에서는 목요일에 신권전도학교 · 회중성서연구 · 봉사회가, 일요일에 파수대와 공개강연이 열린다. 공개강연을 제외하면 남녀노소가 다 함께 참여하는 형식이다.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파수대>와 <깨어라>로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한다. (이 두 개의 매거진은 증인들이 호별 방문시 나눠주는 주요한 책자이기도 하다.) 신세계역 성경을 비롯해 여호와의 증인에서 발행되는 모든 책자에는 글쓴이도, 번역자도 표시하지 않는다. 백 변호사는 “글을 쓰고 번역을 하는 이들이 ‘이것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헌금은 회관 뒤에 있는 함에 무기명으로 한다. 이는 회관 관리비나 출판비로 쓰인다. 매달 헌금의 쓰임새를 보고받는다. 백 변호사는 “가끔 부족할 때도 있지만, 혹시 남으면 한국지부로 보내 인쇄물을 내기 어려운 지역의 출판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성서 연구와 문서 선교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호와의 증인은 세계 600개 이상의 언어로 성경과 출판물을 번역하고 자료를 보낸다.

여호와의 증인에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기준…때로는 외부의 선입견도

혹자는 대체복무가 허용될 경우,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가 병역기피 수단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여호와의 증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이 높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인정받으려면 헌신을 하고 침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 전에 밟아야 하는 단계가 많다. 헌신을 하려면 흡연, 만취, 거짓말 등을 했을 때 회개하고 ‘전환’해야 한다. ‘알지도 못하는 존재를 숭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성경을 연구해야 하고, 많은 것을 지키겠다고 서약해야 한다.

이 서약 중에 ‘전파의 의무’도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말씀을 예수가 부여한 마지막 임무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증인들은 가르침을 전파할 의무가 있다. 백 변호사도 재판이 없는 평일이나 주말이면 시간을 내 호별 방문을 한다. 성경을 읽어주고 ‘좋은 소식이 무엇인지’ 전한다 했다. 전파를 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증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선입견도 적지 않다. 백 변호사는 “어렸을 때 동네에 큰 교회가 두 개 있었는데, 이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뿔 달린 악마로 상상하더라”며 웃었다.

“어렸을 때엔,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선뜻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것도 같아요.”
“그런 적은 없어요. 안 드러낼 수가 없었으니까요.”
“조회 시간에 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 때문인가요?”
“그것도 그렇고, 어렸을 땐 생일이나 크리스마스가 엄청 좋은 날이잖아요.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생일을 지내지 않거든요. 3~4학년 때부터는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 찾아가서 말씀드렸죠.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안하고 생일 선물도 주시지 말라고요. 대부분 이해해 주셨고 지지해주셨어요.”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의 생일도, 성탄절도 지내지 않는다. 성경에서 생일을 지킨 기록이 없는데다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비는 의식이 여신 숭배에 기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잘 안다”며 “여호와의 증인을 한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에게서는 그런 편견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작 편견을 갖는 이들은 한번도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여호와의 증인을 ‘말도 섞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이도 있었다.

   
▲ 여호와의 증인이 읽고 연구하는 신세계역 성경와 <파수대> 등의 매거진 ⓒ문양효숙 기자

대학 입학 후, 세상과 우주에 대한 물음과 연구 끝에 ‘내 믿음’으로

백종건 변호사는 어려서부터 회중 모임에 나갔다. 부모님이 여호와의 증인이긴 했지만, 부모님이 자식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들이었고, 여호와의 증인도 개인의 의지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신앙을 강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친구 좋아하고,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하는 악동에 가까웠다는 그가 신앙을 진지하게 고민한 건 대학 입학 후였다.

“그때부터는 제가 하는 선택 하나하나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이 생겼죠. 이 신앙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건지 내가 선택한 건지 검증하고 싶었어요. 온 존재, 지구와 온 우주를 묵상했던 것 같아요. 의문을 풀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고요.”

그는 성경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았다. 진리가 윤곽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때부터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30여 명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변호를 맡고 있긴 하지만, 그 자신도 대법원 판결이 나면 수감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변호하는 많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모습을 늘 봐왔죠. 무죄를 주장하면서 상고를 한 친구들이 대법원 재판을 마치고 가거나, 중간에 법정구속되거나 해서 가슴이 아파요. 저는 또 결혼한지 얼마 안 됐는데 아내를 두고 가야 하는 게 마음 아프죠. 그런데 아직 닥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인턴 과정을 끝내고 수련의 과정을 앞둔 아내 박수진 씨는 “어차피 레지던트 들어가면 2년간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의사 부부가 많다.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수감되면 보고 싶을 때는 볼 수 있지 않냐”며 백 변호사를 안심시킨다.

20여 년 전, 공중 보건의로 군복무를 할 수 있었지만, 군사훈련을 거부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의 아버지는 백 변호사의 선택에 묵묵히 “알았다”고만 하셨다. 단지 본인이 이미 경험한 바, “수감생활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수진 · 백종건 부부 ⓒ문양효숙 기자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이 곧 종교

삶의 근원과 기준을 성경에서 찾는 그에게 늘 마음에 품고 있는 한 구절을 물었다. 바오로 사도를 좋아한다는 백 변호사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4장의 “나는 훌륭한 싸움을 싸웠으며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렸고 믿음을 지켰습니다”라는 구절을 뽑았다.

“바울이 죽기 얼마 전에 동료이자 제자였던 청년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예요. 바울은 몇 안 되는 로마 시민권자였고 고등교육을 받은 법률가였어요.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후,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교회를, 회중을 세우다가 순교했죠. 당시 사람들은 바울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상을 받았죠. 저 역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하고 싶어서 이 구절을 많이 봐요.”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삶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는 종교가 곧 삶이다. 삶의 기준이면서 동시에 살아가는 방식이다.

“삶이 철저해진다는 느낌이에요. 끊임없이 묻고 그대로 따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희는 ‘경건한 두려움’이란 표현을 써요. 어렸을 때 엄마, 아빠한테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뭔가를 열심히 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만족시켜주고 싶으니까 잘하고 싶고. 그러니까 ‘하느님이 기뻐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삶의 기준이 되는 거죠. 그러니 엄격하다거나 무겁다고 느끼지 않아요.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니까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양효숙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