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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주는 첫 마음[최민석 신부의 Spring Tree]

요즘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읽고 명상하고 산책하는 일이 많아졌다. 토요일 일요일도 가능하면 외출하지 않고 혼자 지내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일은 내 일생에 처음으로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이 시간들의 기쁨의 맛을 조금 알게 되어서 그렇다.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무리하고 있느냐고 하지만 나는 내가 요즘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읽고 쓰고 그리고 산책하는 일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다. 물론 인터넷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꼼꼼히 챙기는 일도 빠트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에 나가는 일들은 최소한으로 줄이려 한다. 그런 일들은 나 자신의 시간을 빼앗아갈 뿐 아니라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빼앗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사람을 공연히 분주하게 만든다. 오후에는 산책을 가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명상시간을 가지려 한다. 산책과 명상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이 즐거움이야말로 내 에너지의 원천이다. 어쩌다 산책이나 명상시간을 거르면 벌써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집에 오면 일찍 잠에 든다.

매일 똑같은 일과가 어느 날 삐끗하여 바뀌면 나는 벌써 피로감을 느낀다. 어쩌다 피치 못할 술자리가 생겨서 술 한 잔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반드시 다음날 대가를 치른다. 그 다음 날은 몸이 무겁고 자꾸 졸음이 온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 매일의 일과를 위반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결심하고 있다.

   
 ⓒ박홍기

요즘은 매일 아침이 새롭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까지 살아온 방법을 모두 일어버린 사람처럼 하루가 낯설게 다가온다. 오늘의 아침 햇살은 가을이어서 그런지 더 맑고 상쾌하다 나는 유난스럽게도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화창한 날씨가 좋다. 책상을 배치할 때도 햇볕이 들어오는 장면이 좋다.

실제로 햇빛은 내게 있어 힘의 원천이다. 눈부신 햇살 속에 있으면 힘이 난다. 사는 것이 힘들고, 외롭고 우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어두컴컴한 골방에 틀어박혀서 무기력한 잠에 빠져드는 것이 보통이다. 햇볕은 실제로 숨어 있는 곰팡이를 없애주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절망과 우울, 슬픔과 무기력의 의식 안에 숨쉬는 곰팡이를 없애준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였던 디오게네스는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자연스러운 것을 감출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이 철학자의 유명한 일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디오게네스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묻는다.
“스승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대왕의 그림자가 햇빛을 가리고 있소. 하오니 그곳에서 비켜주십시오”
이는 그 어떤 권력보다도 일광욕을 즐기는 행복이 귀하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햇살을 맞이하는 행복이 있다. 햇빛 속을 걷고, 햇빛이 있어 더욱 빛나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좋다. 햇빛을 받았으니 그 빛을 받아서 다른 이들을 비추어 주는 방법이 사랑하는 것이다. 시인 유치환도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 보다 행복 하느니라.”
세상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축복하는 이가 축복받는 행복이 이런 것인가 보다.

산책길에 나무들이 햇빛을 받으니 단풍의 색깔들이 휘황찬란해진다. 온 세상이 색깔들이 활짝 미소 짓고 한껏 폼을 낸다. 나무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잎들도 서로 다투지 않는다. 빛을 받으니 온갖 만물이 응답한다. 세상은 온통 화합과 축제의 장이 되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몸도 마음도 발걸음도 리듬을 타는 듯하다.

세상은 햇빛을 받아 대지의 사물들이 서로 교류를 시작한다. 시내와 강과 바다의 물들은 다시 부활하여 하늘로 솟아올라 영원한 생명의 기원이 된다. 태양의 해살이 대지를 깨운다. 생명을 깨운다. 모든 만물은 햇살을 고루 받는다. 햇살은 모든 만물에게 평등하게 그 빛을 비춘다. 세상의 어떤 편견도 없이 오직 정직할 뿐이다. 빛이 비추는 곳은 온갖 거짓이 사라진다. 그리고 온갖 어둠을 몰아낸다. 썩어가던 곰팡이들이 사라진다.

태양의 햇살이 우리 영혼을 정화한다. 눈물을 마르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최고의 묘약이다. 햇빛 속을 걷고 이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빛나고 아름답다. 겨울에도 햇살을 쬐면 나무들이 엽록소를 통해 광합성의 자양분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모든 우울함이 깨끗이 사라져버리고 생생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인생 중년을 살면서 아직도 삶의 내용도 삶의 방법도 늘 처음같이 어색하기도 하고 초보자 같다. 어느 분야든 오십년을 살았다면 그 분야에 달인이 되어야 할 것인데 세상을 살아가는 내 인생은 늘 초보자 수준이다. 항상 첫 걸음을 걷는 것 같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해 잠시 뇌의 충격을 받아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돌연 의식을 되찾은 것처럼 하루하루가 낯이 설다. 내 인생이 같은 일의 반복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분명 은혜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세상은 순간순간 창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이 순간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진실이다. 삶의 유일성을 체험하는 것이 깨어있는 삶이라 믿는다.

그렇다. 어제의 그 햇볕이 오늘의 그 햇볕이 아니고 내일의 햇볕이 되지 않는 것처럼, 어제의 그 구름이 오늘의 그 구름이 아니듯이 내가 만나는 사람과 시간과 생각과 느낌이 늘 새롭게 내게 다가온다. 지루할 수도 없으며 누구도 인생의 달인이 될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최민석 신부 (첼레스티노)
광주대교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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