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은 사제의 공직, 정당, 노동조합 직접 참여 금지하고 있어

▲ 지난 22일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불법 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천주교 사제들 ⓒ한수진 기자

지난 22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한 뒤, 박창신 신부의 강론 중 일부 발언을 문제 삼아 청와대와 새누리당, 보수단체들이 거칠게 반발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강론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염수정 대주교는 24일 정오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한 ‘신앙의 해’ 폐막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염 대주교는 <평신도교령>에 따라 “사제는 말씀과 성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도덕적, 영성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며 사제 역할을 제한하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42항을 들어 “(교회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염 대주교는 다시 한 번 <사제의 직무와 생활지침> 33항을 인용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정치나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교회적 친교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며 “사제들이 깊이 숙고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염 대주교의 발언은 사제의 역할로 ‘말씀과 성사’라는 사제 직무의 일반적인 사항을 제시하고, 평신도와 다르게 사제들이 직접 정치조직이나 사회단체에 개입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한편 염수정 대주교가 발췌 인용하는 과정에서 빠뜨렸지만, <사제의 직무와 생활지침> 33항 ‘정치와 사회적 의무’에서는 “만일 교회 장상의 판단에 따라 교회의 권리와 공동선의 보호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사제는 정당이나 노동조합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맡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사실 정당이나 노동조합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일지라도 그것들은 교회적 친교 안에서 분열의 심각한 위험이 될 수도 있으므로 성직자 신분에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지침에서 “‘정치 활동과 사회 조직체들에 직접 개입하는 일을 교회는 사목자들의 어깨에 떠넘길 수 없다’는 것을 사제는 명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결국 교회 안에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신자들이 있으므로, 자칫 특정 정당이나 노동조합에 사제들이 연루되면 ‘교회적 친교’를 해칠 수 있다고 염려하는 것이지, 넓은 의미에서 사제들의 사회적 관심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제의 정당,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도 ‘교회의 권리와 공동선의 보호가 요구할 때’는 가능하다는 여지조차 남겨 두었다.

덧붙여 가톨릭교회의 <간추린 사회교리>를 비롯한 무수한 교회 문헌은 주교든 사제든 평신도든 한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당연히 해당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시대의 징표를 복음에 비추어 성찰하며, 예언자적 행동에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염 대주교도 인용하고 있듯이,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공동체의 선을 위해 일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하나의 의무”라고 말했으며, 사제 역시 이러한 그리스도인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199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공포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4조는 사제가 교구장의 허가 없이 해서는 안 되는 ‘금지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사제는 국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을 맡을 수 없으며, 정치적 단체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없고, 상행위나 금전 거래, 재산 보증을 할 수 없다.

결국 가톨릭교회의 교회법과 교리서, 교령 등에서 사제들에게 금지한 ‘직접적인 개입’이란 공직, 정당,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일이다. 염수정 대주교가 강론에서 밝힌 사제에게 금지된 ‘직접 개입’이 이런 의미라면, 교도권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발언이며, ‘세상의 보편적 구원의 성사’인 교회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의 본분을 적절하게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염수정 대주교의 ‘직접 개입 금지’ 발언은 최근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책임 있는 응답을 요구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 시국미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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