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11]

유튜브에 들어가면, 푸치니의 유작 오페라 <투란도트>를 주빈 메타가 지휘하고, 장예모 감독이 연출을 맡아 지금성에서 공연한 1998년도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투란도트>의 비현실적인 스토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서구인들이 동양을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로 가득한 세계로 보았던 탓에, <투란도트>의 배경이 된 중국에서는 그동안 <투란도트>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8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중국 북경에서 <투란도트>를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요.

▲ 1998년, 중국 북경 자금성에서 주빈 메타 지휘, 장예모 감독 연출로 상연한 <투란도트>

15세기 이후 동양의 진귀한 물건들이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으로 수입되면서, 18세기, 19세기에 이르러 유럽 상류층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구인들에게 동양은 미지의 곳이자 신비로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에, 미술이나 음악, 문학 등에서 동양의 이국적인 풍물을 주된 소재로 사용하거나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를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렀습니다.

푸치니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오페라의 소재를 동양에서 찾았는데, 일본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던 나가사키 항구를 배경으로 해서 <나비부인>을 썼고, 중국을 배경으로 해서 <투란도트>를 썼습니다. 그리고 <나비부인>에서 일본의 민요 선율을 사용했듯, <투란도트>에서는 중국의 민요 선율을 주요한 음악적 모티프로 사용했습니다.

푸치니는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하면서 “이제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투란도트>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끝내 이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투란도트>의 소재를 처음 작품화했던 사람은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고치였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힌트를 얻어 희곡으로 썼는데, 희곡 속의 왕자는 안하무인이고, 공주는 제멋대로인데다 잔인하기까지 한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쉴러가 ‘왕자의 사랑을 거부하던 공주가 차츰 사랑에 눈 떠가는 것’으로 내용을 바꾸었고, 쉴러의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은 푸치니가 대본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오페라 <투란도트>를 썼습니다.

<투란도트>의 지역적 배경은 중국이지만,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 속의 한 시대를 가정하고 있습니다. 절세미인 투란도트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주가 내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했습니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수많은 구혼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지만, 투란도트를 보고 한 눈에 반한 타타르의 칼라프 왕자는 수수께끼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칼라프를 사랑하는 노예 소녀 류는 그런 칼라프를 만류하며 아리아 ‘나의 말을 들어주오!( Signore, ascolta!)’를 부릅니다. 하지만 칼라프는 반드시 수수께끼를 풀겠다며 아리아 ‘울지 말아요, 류!(Non Piangere, Liu!)’로 답하며 류를 위로합니다.

투란도트가 내는 수수께끼 세 개를 칼라프가 모두 풀었지만, 투란도트가 칼라프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자, 칼라프는 자신의 이름을 맞춰보라고 수수께끼를 내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자신이 죽겠노라고 만용을 부리며,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릅니다. 그러자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류와 티무르를 찾아내어 고문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류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합니다.

류가 죽는 부분까지 곡을 쓴 뒤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하고 푸치니가 세상을 떠나자, 류의 죽음으로 칼라프가 마침내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게 되는 결말은 토스카니니의 감독 하에 푸치니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마무리를 짓게 되었습니다. 1926년 이 작품이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던 날, 토스카니니는 ‘류의 죽음’까지만 지휘를 한 뒤 “푸치니 선생님은 여기까지 작곡하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 자코모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으로 명성을 얻었던 푸치니였지만, 이들 작품의 초연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수개월이 지나서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사람들이 새로운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기존의 생각을 바꿀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서구인들이 동양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작품 하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 모릅니다.

오리엔탈리즘이 당초에는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 취미의 경향을 나타내던 용어였지만, 그 이후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을 보면, 진실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또 다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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