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신학]

새해를 맞자마자 곧 우리 집 두 남자인 남편과 아들 생일이 돌아온다. 언제나 처럼 실속 없이 돈도 별로 벌지 못하고 일에 매달려 살면서도, 이번에는 아들 생일을 맞아 목도리를 선물하려고 일주일째 틈틈이 뜨개질에 매달려 있다. 딸아이가 자기 반 친구의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고는 당장 달려와 자기도 뜨개질을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찌어찌 시작된 일이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와 친할머니가 떠주신 옷과 장갑과 목도리와 모자를 즐겨 입곤 하였다. 당시는 지금보다 절약하고 살던 때라, 뜬 옷이 작아지면 다시 풀어 큰 만큼만 더 떠서 입었던 기억이 난다. 혼인을 해서 보니, 우리 시어머니는 그야말로 뜨개질의 달인이셨다. 제주도 이시돌 목장에서 나오는 양털을 가지고 고급 호텔에서 팔리고 수입품으로 각광받는 스웨터를 짜시는 장인이셨던 것이다. 갓 시집간 새댁은 시어머니가 정성들여 짜주신 그 고급 스웨터를 선물로 받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이제 팔순이 넘으셔서 더는 뜨개질을 하지 못하시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기술을 전수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뜨개질이 팔도 허리도 눈도 버려놓는다고 절레절레 마다하신다. 그러나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시리라.

서양의 중세시대의 11-12세기에 남성들이 써놓은 여러 작품을 보면, 당시 여성들이 얼마나 갇혀 살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여성은 공적 장소에 나타나선 안 되었다. 단지 보이는 것만으로 여성은 죄를 짓는 것이었다. 일요일 미사에 참석하라는 교회법을 따르는 것조차, 여성에겐 '거룩한 곳의 방화범'이 되는 것이었으니, 사교를 위해 댄스장이나 파티에 나가는 것은 파멸로 돌진하는 꼴이었다. 여성은 창밖을 내다보는 것마저 금지되었는데, 이는 남성의 세계를 갈망하는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허락된 일이란 손과 눈을 집중하여 꼼짝도 않고 바느질을 하거나 끝도 없이 집안일에 매달리는 일이었다. 심신이 지쳐 나가떨어지도록 바쁘고 고통스럽게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천성에 맞는다고 보았으며, 이보다 더 나아가 완전한 침묵을 강요당했다. 여성은 파멸을 자초한 이브의 전형으로서, 수다쟁이요 고도의 거짓말쟁이며 끝없이 남을 험담하고 논쟁에 빠져들며 징징댄다고 멸시당했다. 예수님이 마리아 막달레나를 부활의 증인으로 선택한 이유도 그녀가 떠벌이며 소문낼 것을 아셨기 때문이라고까지 보았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중세 남성은 여성이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뜨개질을 하면서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고 무언가 쓸모 있는 생필품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풍요롭게 해준다. 또 다른 이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면 그 정성스런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도 어느새 따스해지곤 한다. 그런데 중세시대 때 여성은 뜨개질과 바느질에 매달려 손과 눈과 자유를 억압당해왔다고 하니, 기가 막힌 생의 모순에 나는 어째 먹먹해지고 만다.

 

유정원/ 가톨릭여성신학회 회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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