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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꿈속에 사람이다[최민석 신부의 Spring Tree]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재산이 없다는 사실보다 철학이 없다는 사실을 훨씬 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비록 철학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더라도 자존감을 지킬 수는 있다. 나이 어린 학생 때, 어른들로부터 수 없이 들었던 말씀이 있다. 어른들의 말이니 말씀으로 듣는 척 했지만 그 때는 잔소리로만 들리던 말이 있었다.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귀를 시끄럽게 한다.

“너희들이 그렇게 용쓴다고 해서 세상이 변할 줄 아느냐. 아무리 그래도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데모 같은 쓸 때 없는 짓 하지 말라.”

지금 오십이 넘어 중년을 살면서 어른들의 그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시대가 지나고 사람은 바뀌어도 세상은 그리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래 맞기는 맞아’ 고개를 끄덕거려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마음을 쓰며 걱정하고 행동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해도 좀 더 아름답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다면, 보람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참 나를 찾는 일이다. 나는 참 나를 찾고자 세상에 왔다. 그 나는 시방 여기에 있다. 여기 있는 내가 나와 별개가 아니지만 동일한 나 또한 아니다. 내가 세상에서 나를 찾고 있는 나와 세상 속에 현존하는 나는 서로 다른 존재도 동일한 존재도 아니다.

   
 ⓒ박홍기

깨어 있는 상태로 꿈을 꿀수 있을까 

나는 삶이 한바탕 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꿈에서 깨어날 경우에만 그렇다. 만일 내가 끝내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나는 꿈속에서 물거품 같은 영욕에 이리저리 꺼들리며 터무니없는 일희일비하며 주어진 시간을 낭비할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해도 말이 된다. 내가 만일 이 세상에서 맛보는 쾌락과 영화에 들떠 있거나 고통과 굴욕에 억눌려 한숨만 쉬고 있다면, 신상에 일어나는 이런 일 저런 일에 매달려 이것은 좋아하고 저것은 싫어하고 거절하며 산다면 그것은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증거다.

‘잘 먹고 잘 살라’는 말이 악담으로 쓰일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악담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어른이 되어 세상의 이치를 알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돈만 생각했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지 못했다면 그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모름지기 사람으로 태어나 겨우 먹고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비참한 인생이다.

깨어 있는 상태로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그 자리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고, 지독한 곤경을 당해도 거기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바오로는 ‘낡은 인간을 벗고 새 인간으로 갈아 입는다’고 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을 마음에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골로3,1-3)

나는 바오로의 이 권고에서 ‘지상에 있는 것들’을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로 ‘천상에 있는 것들’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읽는다. 또는 전자를 거죽에 있는 현상으로 후자를 속에 있는 본질로 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땅의 것들에서 하늘의 것을 보는 눈을 뜬다면, 요컨대 깨어 있는 상태에서 꿈을 꿀 수 있다면,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현상에 속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성전이다. 하느님의 것 아닌 것이 없다 했다. 그러니 보이는 모든 것에서 보이지 않는 하늘의 뜻을 읽어내고 하늘의 향기를 냄새 맡고, 하늘의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는 것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를 사는 것이다.

기쁜 일이 생길 때 그냥 기뻐하는 상태에 머물지 않고 그 사건 속에 감추어진 뜻에 귀를 기울여 그대로 따르는 것이 깨어 사는 것이다. 슬픈 일이 생겨도 그냥 슬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기 숨어 있는 어떤 명령을 읽어 그것을 실현코자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만 그러고 싶을 따름이다. 나의 인생은 나에게 한바탕 꿈일 수도 있는 어떤 것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내가 아직 확연히 깨어나지 못했다는 증거겠다.

무작정 걸어가는 인생길, 그래도 되나?

꽃들은 향기 하나로 먼 곳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새들은 아름다운 소리를 지어 하늘 건너 하느님의 사랑을 알리는데 우리 인간은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를 안고 사랑을 말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부족한대로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사람의 자존감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끼리 서로 기대며 인생길을 무작정 간다. 어떤 때는 퇴폐적 낭만주의자가 되어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말한다. 세상과 유리된 채, 멀고도 먼 광활한 길을 우리끼리 감동하고, 우리끼리 눈물 흘리며 가고 있다.

나무는 근처의 새들을 제 몸속에 살게 하고 숲은 그 그늘에 어둠이 무서운 짐승들을 살게 하는데 내 마음은 한 인간도 제대로 품지 못하는 폐가처럼 찬바람만 부는 때도 있다. 사랑도 살아가는 일이어서 점점 추워져 가는 초겨울 내 마음의 아랫목에도 따뜻한 자리하나 마련해 보려한다.

한번 크고 아프게 사랑하였기 때문에 작은 사랑조차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신부라는 허명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외롭게 사는 것처럼 하고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길이 먼저이고 사제로서 가는 길은 인간의 길을 돕는 길이 되어야 한다. 의롭게 살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 시대가 젊은 나에게 맡긴 책무를 다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하듯 모두가 하느님 안에 한 생명이다. 이것이 내 삶의 기본 철학이다. 내 목숨을 사랑하듯 이 땅의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사랑을 이 땅에 실천하는 일 또한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현실은 생각보다 힘들고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잘해보려고 했지만 한번 실망한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많이 노력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기쁨도 있고 아픔도 있다. 환호도 있고 시련도 있다. 찬란하던 순간도 있고 허망한 시간도 있다. 햇살과 그늘은 수시로 내 얼굴을 바꾸고, 울창해 보이던 숲도 한순간에 폐허가 되곤 한다.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인가 보다. 그러나 좌절과 시련과 고난을 주는 분이 영광과 명예와 환호를 주었던 바로 그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름도 재능도 명예도 재물도 지위도 내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잠시 제게 맡기신 것이다. 모두가 하느님 것이기에 이 세상이 바로 성전이다. 이 성전에서는 주신 분이 그분이기 때문에 다시 되가져가겠다고 하면 기꺼이 드려야 한다.

내가 쌓은 것도 내 것이 아니며, 내가 지니고 있는 어떤 것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도무지 없다. 언제나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게 바로 꿈속에 살면서 꿈에서 깨어있는 삶이 아닐까?

   
 
최민석 신부 (첼레스티노)
광주대교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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