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와 교회 - 1]

조세종 대전 민들레의료생협 이사장이 들려주는 ‘사회적 경제와 교회’ 이야기를 월 1회, 총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작년 12월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었습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은 협동조합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는 의미에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음이 분명합니다. 협동조합과 아울러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기존의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 전체가 다시 한 번 세상의 조명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지역에서는 한살림이나 아이쿱 생협과 같은 생협들이 10년에서 20년씩 뿌리를 내리고 있고, 주민들이 참여해서 세운 저희 의료생협들도 오래된 곳들은 열 돌을 훌쩍 넘긴 나이입니다.

어렵사리 사회적 경제에 관한 글을 한 달에 한 편씩이나마 써보겠다는 결심을 편집자님에게 전해드리고 ‘가톨릭교회와 관련’한 의미를 담기 위해 먼저 무엇부터 글을 시작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맨 먼저 사회적 경제가 무엇이고, 그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실제로 사회적 경제의 종사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는가에 대해서 제가 경험했던 실례를 들어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대전에서는 주민들이 나서서 환경운동에 앞장섰던 일이 있었습니다. 몇 년간, 대전 도심에 자리 잡은 월평공원을 관통하겠다는 터널을 반대하는 운동의 막바지로 2008년 여름에는 대전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주민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100만 평이 넘는 생태보고인 자연녹지공원에 터널을 뚫는다는 계획을 백지화시키고 축소 변경된 개발계획에 따른 새로운 대안을 세우라고 대전시에 요구하는 단식이었습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환경운동을 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결론은 진 싸움이었고 지금은 터널이 뚫려 지나가는 차량들의 소음과 매연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아무튼 그때 단식을 시작하고 10여 일이 지나자 건강이 염려되었는지 의료진이 와서 저의 건강을 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 잘 모르는 한의사와 잘 아는 내과의사가 번갈아 오고, 링거 수액을 놓아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이 하루에 한 번씩은 천막에 들러 상황을 보고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 모두 민들레의료생협에서 나오신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그렇게 천막 안에서 그분들께 진료 받는 일이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2002년도에 민들레의료생협이 처음 만들어져 의원, 한의원을 개원하고 진료를 시작할 때에는 민들레에서 즐거운 활동을 왕성하게 했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지역 모임, 보건예방교육 등 다채로운 일들을 함께 했었지요. 그러다가 자연스레 우리 마을 생태계 보존이라는 일이 중요한 일이 시작되면서부터 점차 의료생협 조합원의 신원보다는 환경운동가들과 함께하는 주민으로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의료생협에 무심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대신에 소용돌이치는 ‘터널 반대’라는 환경문제에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농성장 천막 안에서 민들레 의료진을 만나게 되자, 마치 그동안 관심도 없다가 내게 당장 필요하고 아쉬운 일이 생기니까 손을 벌리게 된 것 마냥 멋쩍고 미안한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언제까지 단식을 계속해야 될지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솔직히 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이 컸습니다. 그렇게 육체도 괴롭고 정신도 나약해져 있을 때 그분들이 오셔서 고마웠지만, 또 한편 그 고마움의 크기만큼 무척이나 미안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이 우리 일이지, 우리가 하는 일하고 뭐가 달라?”

누군가 툭하고 지나가며 한 말 한마디를 지금까지 잊지 않는 걸 보면 이 말이 지친 마음에 새로운 불씨가 되었나 봅니다. 싸움에 이기고 지고를 떠나, 일의 형태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진다고 해도 그때 그 말로 인해 ‘우리 일’이 무엇인지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민들레의료생협 사람들 (사진 제공 / 민들레의료생협)

사회적 경제라고 하면 흔히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이라고 분류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일들은 정말 ‘경제’와 관련된 일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과 관련 없는 일이 없듯이 경제와 관련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많은 협동조합들이 생기고 있는데 그 협동조합들만 보아도 사회적 경제의 오지랖이 참으로 넓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육이나 문화예술, 에너지나 환경과 관련된 협동조합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건강한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관련된 모든 생활들을 사회적 경제로 엮을 수 있다는 전망을 봅니다.

그리고 교회를 봅니다. 사회가 한편에서 오지랖을 펼치고 있을 때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짧은 소견으로 ‘교회는 나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여느 본당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신앙과 관련된 일과 그렇지 않은 일, 교회의 일과 세속의 일, 우리의 일과 우리가 아닌 사람들의 일로 쉽게 구분합니다.

사회적기업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경제가 발달된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도 대상이 신자들입니다. ‘사회적’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회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자와 비신자, 교회의 조직과 세상의 조직 사이에 이해와 협조 없이, 더구나 성직자들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없다면, 자본주의에 흔들거리는 삶을 지탱할 대안으로, 자본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우리들의 삶을 지탱할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봅니다.

문제의 본질은 이웃을 향해 열려 있으려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설사 교회가 “이 일을 우리 일”로 여기고 함께하게 될 때에도, 정작 그 일을 교회의 조직으로 장악하려는 의도 없이, 단지 같은 입장에서 말 그대로 협력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치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마리아 사람처럼, 위에서나 아래에서가 아닌 같은 입장에서, 동등한 눈높이에서 함께 ‘우리 일’로 보고 문제를 적시하고 대안을 찾아 의논하는 협력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된 외국에는 신뢰의 공동체를 이루어 삶의 질을 높이고 생활의 결을 물질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어 가는 사례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협동조합의 도시를 가꾼 모범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특별히 가톨릭 신자로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먼저, 그곳은 교구 차원에서 협동조합을 지원했습니다. 흔히 세례식, 혼배, 장례식 등 죽기까지 성당에 세 번을 나온다는 서구의 신자라 하더라도 가톨릭 신자가 많기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적인 일’들을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협력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많은 이들이 유쾌하게 읽었을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의 무대가 바로 이탈리아의 볼로냐 인근입니다. 빼뽀네 읍장과 돈 까밀로 신부의 기묘한 우정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교회와 세속이 파시스트를 상대로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마을 공동체를 위해 손을 잡는 협력과 연대의 협동조합의 실제 역사이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을 위해서는 네 편 내 편이 없이 오직 이웃만이 있다는 것이, 이탈리아의 한 도시가 협동의 모범이 된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 교회가 어떻게 오지랖을 넓히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고요. 이제 우리가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할 차례입니다.

“이 일이 우리 일이지, 우리가 하는 일하고 뭐가 달라?”


 
조세종 (디오니시오)
대전 민들레의료생협 이사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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