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신문을 통해 보는 한국 교회 - 2]

세상 사람들은 교황청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컴퓨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위키백과에서 검색하자 이런 설명이 나왔다.

“로마 교황청은 성좌의 행정기관이며 교황과 더불어 로마 가톨릭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중앙통제기구이다. 로마 교황청은 교회의 올바른 기능과 목표 성취를 위해 필요한 중앙 기구를 조정하고 규정한다. 로마 교황청은 서구식 통치 형태를 갖춘 나라들의 정부와 비교해서 느슨한 형태의 기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국무원의 제2부서인 외무부와 교육성은 세속 정부의 특정 부서와 직접적으로 견줄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교황청을 구성하는 조직들은 정부 내각격인 국무원과 신앙교리성을 비롯한 9개의 심의회, 내사원을 비롯한 3개의 법원, 평신도평의회를 비롯한 11개의 평의회, 교황궁무처를 비롯한 3개의 사무처, 교황궁내원 등의 기타 기구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 크기에 비해 적지 않은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획일적이고 효율적인 통솔은 누가 하는가

국무총리 역할을 하는 국무원장을 수뇌로 하는 국무원은 로마 교황청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정부 내각이다. 국무원을 총지휘하는 국무원장 추기경은 바티칸 시국과 성좌의 모든 정치적 · 외교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 외교의 업무보다 교황청에서 더 중요한 일은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획일적이고 효율적인 통솔이다. 실제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신앙교리성을 비롯한 9개의 심의회다.

심의회는 로마 교황청에서 사법권을 가진 조직으로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앙행정기관이며 각 심의회를 이끄는 장관은 추기경이 맡는다. 속인의 눈으로 보면 추기경으로 이루어진 이 심의회 장관들이 전세계 추기경 중에서도 실세로 보인다. 전임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도 신앙교리성 장관 출신이다(당시는 요셉 라칭거 추기경으로 불렸다).

▲ <평화신문> 10월 13일자 3면

인류복음화성 장관의 방한

얼마 전 그 심의회 중의 하나인 인류복음화성 장관인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이 방한했다. 인류복음화성은 로마 교황청에서 선교 활동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심의회이다. 예전에는 ‘포교성성’으로 불렀다.

이번 인류복음화성 장관의 방한은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은 수원교구의 초청이었다. <평화신문>은 그를 전세계 선교 지역을 관할하는 교황청 최고 책임자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의 일정에 대해서 “6박7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물 필로니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청을 방문, 염수정 대주교와의 환담을 시작으로 평화방송 방문과 인터뷰, 한국 주교단과의 만남, 박근혜 대통령 예방, 수원교구 50주년 신앙대회 및 감사미사 참례, 천진암 · 절두산 성지 순례, 한국 사제들과 평협 대표, 신학생과의 만남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필로니 추기경의 입국 때는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를 필두로 서울대교구장. 수원교구장, 인천교구장과 함께 주교회의 사무처 관계자들이 영접했다.

교계신문들은 인류복음화성 장관의 방한 소식을 10월 6일자에 사진과 함께 1면에서 전한 후, 입국 뒤 그의 동정을 10월 13일자에서 자세히 전했다. <평화신문>은 이와 관련한 기사를 1면 전면, 3면 전면, 10면 전면, 11면 전면, 27면 사설에서 다뤘다. <가톨릭신문>은 같은 발행 날짜에 1면 전면(한 꼭지 제외), 12면 전면, 13면 전면의 비중으로 보도했다.

한마디로 교황청 장관, 그중에서도 인류복음화성 장관의 비중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교계신문들의 보도였다. 그것은 교계신문의 보도가 과한 것 이전에 한국 교회가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반영인 것이다. 신문은 단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 <가톨릭신문> 10월 13일자 13면

인류복음화성 장관의 발언? 주문? 명령? 지도?

필로니 인류복음화성 장관은 일주일 정도의 일정 동안 한국 대통령 예방부터 평신도들과의 만남까지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 <평화신문>은 ‘인류복음화성 장관 방한이 남긴 것’이란 사설에서 그가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를 위한 진정한 누룩과 빛의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과, 주교,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들과의 만남에서 그가 각각 주문한 것을 전하며 “전세계 선교 지역을 관장하는 교황청 최고 책임자의 이런 발언은 결코 허투루 넘길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주문이 ‘주문이 아니라 명령으로’ 바뀌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의 주문은 권위가 있을 것이다. 교회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낯설 수 있는 교황청 심의회 중의 하나인 신앙교리성이나 인류복음화성의 이름이 위압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리 멀지 않다. 1997년 정양모 · 서공석 · 이제민 신부에 대한 경고서한 사건이 그것이다.

세 신부는 인류복음화성의 서한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당시 의장 정진석 주교)에 전달된 이후 재직하고 있던 서강대학교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결국 물러나야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정양모 신부의 은퇴기념논총 <믿고 알고 알고 믿고>(2001, 분도출판사)와 이제민 신부의 글 ‘가톨릭교회는 가톨릭적인가’(격월간 <공동선> 1998년 5~6월호)에 그간의 사정이 실려 있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재수록된 바 있다. (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0)

로마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당시의 인류복음화성과 신앙교리성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새삼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단지 그들 심의회의 영향력이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신부들의 저서와 발언에도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교황청 심의회는 속인들에게는 단지 교황 성하를 보위하는 “협조자”이며 “좋은 일”을 하는 “훌륭한 기구”일 따름이다. 이번 인류복음화성 장관의 입국도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에 때맞춘 수원교구의 초청이었지만, 인류복음화성 장관은 한국 교회 전반에 대한 “지도”를 하고 간 것이다. 그것을 교회와 교계언론 모두가 당연하게 여긴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는 교황이 아니라 교황청 심의회 중 하나의 장관일 뿐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왔을 때 “예수님은 그렇게 떠들썩하게 오지 않을 것”이라며 백만 명이 모인 여의도 미사에 가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당시 원주교구 평신도 회장이었던 장일순 세례자 요한이었다. 멀리서 손님이 오시면 기쁜 마음으로 정성껏 모시는 것이 당연한 예의겠지만 도가 지나치면 도리어 예가 되지 않는 법이다. 로마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냉정히 돌이켜 생각해볼 일이다.
 

 
 

김유철 (스테파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시인,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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