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사이비>, 연상호 감독, 2013년작, 21일 개봉

 
<돼지의 왕>이라는 처절하게 사실주의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칸느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세계 36개국에서 상영됨으로써 일약 한국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떠오른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 드디어 선을 보인다.

데뷔작이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며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한 얼굴을 끔찍할 만치 정확하게 직시했다면, 이번에는 종교 문제를 가지고 같은 주제를 담아낸다. 사회고발 애니메이션이며 애니메이션 스릴러라는 장르 타이틀을 붙인 <사이비>는 전작처럼 연상호 감독의 제작, 각본, 연출로 이루어졌다.

<돼지의 왕>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했기에 <사이비>에 거는 기대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미 스페인 시체스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미국 AFI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고 하니, 역시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성공작이라 짐작해본다.

<사이비>의 세계에는 비천하고 줏대 없는 인간들로 득시글거린다. 그 세계는 탈출구 없는 지옥도다. 수몰예정지역인 한 시골 마을에 교회가 새로 생긴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장로 경석(권해효 목소리)은 신의 질서로 운영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정착할 기도원을 건설하겠다는 장밋빛 비전으로 마을 사람들의 보상금을 긁어모은다. 그러나 그는 사기꾼이며 현재 수배 중, 그렇게 해서 모은 보상금을 어떻게 할지는 뻔한 일이다. 장로는 젊은 목사 철우(오정세 목소리)를 초빙함으로써 자신의 계획에 신뢰감을 더하여 신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인 주정뱅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정꾼 민철(양익준 목소리)은 대학 입학금으로 쓰기 위해 모아둔 딸 영선(박희본 목소리)의 통장을 훔쳐 노름판에서 몽땅 잃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듣기 거북한 욕설이 없이는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그는 염치라곤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런 민철이 술집에서 장로 경석과 사소하게 몸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민철은 경석이 수배자임을 알아보고 경찰과 마을 사람들에게 교회가 가짜임을 알리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고, 모든 마을 사람들은 똘똘 뭉쳐 진실을 은폐한다.

고립된 마을 안에서도 홀로 고립된 민철은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된다. 사소하게 시작된 말다툼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이제 서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마을은 변해간다.

 

삽화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서 디테일을 살리기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그림체로 이루어져 있건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지옥도의 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정서나 분위기가 사실적이다. 초반부터 강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충격파를 던지고,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점점 높아지는 강도로 인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태로 끝을 맺는다. 무엇을 상상하든 가장 최악의 결과로 결판이 나고야 만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전혀 사랑받지 못해온 사람의 곤궁한 처지만 부각시키는 아이러니한 노랫말은 대한민국에서 계층 구조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의 처지를 강조한다. 극심한 양극화 상황에서 제도의 불합리에는 눈을 감은 채 내세를 기약하며 흡혈귀 같은 권력자 집단에게 피를 쪽쪽 빨리는 불행한 방관자들. 집단 환각에 빠져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종교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그 끝은 뻔하다. 그러나 이 환각을 바로 알아보는 유일한 사람은 몹쓸 난봉꾼뿐이니, 그것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불행이다.

영화는 서스펜스를 끝까지 밀고 가지만, 적절한 긴장과 이완의 리듬감을 갖추지 못해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이나 세다. 절대악인 장로, 선한 얼굴의 거짓말쟁이 목사, 그리고 악한 얼굴의 예언자 술주정뱅이의 삼각구도는 팽팽하게 이루어져 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은 전형적이어서 매력을 주지 못한다. 난폭한 아버지, 순응하는 어머니, 반항하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자식의 평면적인 구도는 진부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영화는 강렬한 플롯 전개와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그림체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을 실재처럼 바라보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다. 지금 대한민국 이곳에서 혹세무민하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본질에 대한 지혜를 바탕으로 인간의 선함을 회복하는 현명한 종교의 역할을 상기하게 하는 도발적인 영화다. 여하튼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계에서 ‘이런 사람 또 없는’ 소중한 작가감독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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