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38]

지금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외할머니’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평생 농사를 지어 6남매를 먹여 살린 외할머니를 지켜보며, 어릴 때부터 뭉클함을 느끼며 자라왔다. 더구나 어린 시절에 2년 정도를 부모님과 떨어져 외가에서 지내기도 해서, 외가가 내게는 고향과도 같은 곳으로 기억된다. 외할머니 품에서 나던 불내, 장에 간 할머니를 애타게 기다리던 길목, 밥 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면 할머니가 게장에 비벼 떠먹여 주시던 밥…, 특히 손톱에 때가 까맣게 낀 거칠거칠한 할머니 손은 아주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바로 그 기억이 나를 시골로 불러들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지게 마련이니까. 도시에 살던 때 하얗고 반질반질한 내 손을 볼 때마다 ‘이건 아닌데’하고 생각했던 것도 내가 할머니 손을 사랑하고 그 손이 어루만지는 삶을 경이롭게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신 친정엄마와 함께 외가에 찾아갔다. 팔순을 훌쩍 넘은 외할머니는 아직도 농사를 짓고 계신다. 외가에 갈 때마다 이것저것 씨앗을 얻어올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하지만 할머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고된 농사일을 하고 나면 어지럼증이 나서 몇날 며칠 고생을 하신다고 한다. 이번에도 마늘 심는다고 무리를 했다가 큰 고생을 했다며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살짝 귀띔을 해 주셨다. 그 얘길 듣고 엄마가 화가 나서 할머니께 쏘아 붙였다.

“농사 좀 그만 지으라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엄마가 마늘 안 줘도 다 먹고 사니까 엄마 몸이나 좀 챙겨. 돈 주고 사 먹으면 그만인데 뭐 하러 그 고생을 한다요? 죽고 살고 농사 지어 보내면 그걸 자식들이 알아주기나 한다요?”

할머니는 천연덕스럽게 “오냐, 그럴란다. 내년부터는 안 할란다” 하며 웃으신다. 벌써 몇 년째 ‘내년부터는 안 하겠다’ 하신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살아 있는 동안은 농사를 끊지 못하실 것이다. 농사 지어 자식들에게 양식을 보태주시는 것이 할머니 삶의 이유고 목적이니까. 자식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할머니는 자기 몫을 다 하시는 것이다.

ⓒ박홍기

할머니 딴에는 해가 갈수록 힘이 부쳐서 농사 성적이 형편없어지는 것, 그래서 자식들 챙겨줄 게 점점 줄어드는 것이 걱정이다. 올해는 콩 농사가 잘 안 돼서 콩을 한 되도 못 건지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콩을 사서라도 메주를 쑤겠다는 할머니 말씀에 엄마가 또 화가 났다.

“됐어. 그 까짓 거 사다 먹으면 되지. 요즘 사람들은 된장 많이도 안 먹어. 괜히 엄마만 고생이라니까. 그러다 병 나믄 어쩔라고 그라요?”
“그래도 된장은 담가야제. 내가 아무리 멍청이가 되았어도 그건 해야제.”

엄마가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할머니는 묵묵히 할 말을 하시고, 또 할 일을 하신다. 정말이지 최강이다. 나 같으면 네가 뭔데 그러냐고 불 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여태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으면서 감히 ‘그 까짓 거’라고 하다니, 그게 돈으로 살 수 있는 무엇인 줄 아냐고 따끔하게 야단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큰소리를 쳐야 할 할머니는 오히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러면서도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으시다. 놀라워라, 그러거나 말거나의 경지!

사실 나는 그 경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에도 서울 친정으로 콩이며 녹두, 떡국 떡 같은 것을 바리바리 챙겨 보내면서 몇 번씩 당부했다.

“엄마, 가져가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가서 잘 챙겨 먹어. 알았지? 나는 내가 손수 농사 지어 보니까 콩 한 알도 귀하더라. 길에 콩 한 알, 팥 한 알이 떨어져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고 그걸 주워 들고 집에 온다니까. 그러니까 버리거나 썩히지 말고 알뜰하게 챙겨 먹어. 이거 진짜 귀한 거야. 엄마는 딸을 잘 둬서 이런 거 먹는 줄 알아.”

귀한 걸 귀하게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색내듯이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 왈, “다른 딸들은 용돈도 주고 비행기도 태워 주거든!”

그 한 마디에 말문이 꽉 막히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엄마 마음속에 기대를 저버린 큰딸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미운 소리를 하시는 것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약이 바짝 올라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언제쯤 나는 감정의 동요 없이 그러거나 말거나 할 수 있을지….

우리 외할머니라면 아무 말 없이 싸 주고 또 싸 주고 그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고도 뭐 더 줄 것은 없나 한없이 주고만 싶어 하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해했을 것이다. 언제쯤 나는 그런 할머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려나? 갈 길이 멀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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