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 정현진]

“쌀값, 8년 만에 4천 원 인상?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하라!”

11월 11일은 ‘농민의 날’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수확의 기쁨, 노고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누리기는커녕, 13일 대한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문제는 쌀값. 지난 8년간 동결됐던 쌀값은 박근혜 정부 들어 향후 5년간 인상 목표가격이 단 2.4% 인상, 174,083원(80㎏당)으로 결정됐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가격은 23만원이다.

이와 관련해 쌀 소득보전 직불금의 문제도 있다. 2005년부터 도입된 쌀 소득보전 직불금은 산지 쌀값이 목표가격보다 낮을 경우, 차액의 85%를 직접 지불금 형태로 보전해주는 제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농업 관련 첫 공약으로 이 쌀 소득보전 직불금 인상을 내세웠다. 현행 직불금 70만 원을 10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선 후, 쌀 직불금은 10만 원이 인상됐을 뿐이다.

문제는 ‘쌀값 인상’만이 아니다. 다만 농민과 농업에 대한 철저한 ‘하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쌀값이고, 농민들은 쌀값은 곧 ‘농민 값’이라며 항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창 추수와 출하를 하면서 기쁨을 맛봐야 할 시기지만, 농민들은 출하할수록 손해가 나는 까닭에, 목숨 같은 작물을 갈아엎고 있다. 물론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일관성 있게 수수방관이다.

또 당장 닥친 큰 위기는 한중FTA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에서 이를 신중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인천 송도에서 한중FTA 8차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미 1차 협상이 마무리됐고 2차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자리다. 박 대통령은 농업 예산 지원도 약속했지만, 오히려 향후 5년간 농업 예산은 5조 2천억 원이 감축됐다.

한국 정부가 농업을 정책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가운데, 물밀듯한 개방농정은 농업과 농촌의 총체적 위기를 낳았다. 식량자급률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쌀 자급률은 80%로 쌀 자급조차 불가능해졌다. 농민의 수 역시 급감해 300만 명 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10년 만에 농민 인구 100만 명이 줄어 농민 인구는 30년간 전체 인구 28.9%에서 6.4%로 떨어졌다. 종자산업도 다국적 기업으로 넘어가, 일부 농가의 보존 노력이 아니라면 토종종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렵게 농사를 지어도 외국 농산물 홍수에 제값 받고 팔기는 하늘의 별따기. 농업을 보호하는 그 어떤 장치도 구조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농민들은 오는 22일 10대 요구안을 들고 서울에 모일 예정이다. “쌀 목표가격 23만 원 보장, 쌀 시장 전면 개방 반대, 한중FTA 중단, 생산비와 안전한 먹거리 보장,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와 국민기초식량보장법 제정, 대기업 농업 생산 진출 반대, 한우 가격과 생산기반 보장, 친환경무상급식 정착, GMO와 방사능 오염 등에 대한 먹거리 안전체계 구축, 농자재 가격 안정화 대책과 가격 담합 저지 대책 마련, 농협 개혁, 농가부채 해결” 등이다.

▲ 오는 22일 서울에서는 농민대회가 열린다. 이에 앞서 농민들은 13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대한문 앞에서 천막을 치고,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 / 박선아)

농민과 농촌을 살리는 것
무엇보다 시급한 우리 삶의 문제

농토, 농민, 종자 등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투쟁은 유독 늘 외롭다. 농민단체들은 다른 시국 사안에 연대하지만, 거꾸로 연대의 손길을 받지는 못한다.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하지만, 어느 사업장에서 엽기적인 노동자 탄압이 일어나거나, 몇 백 일을 크레인에 올라가 있거나, 해고자 몇 십 명이 죽어야 주목받게 되는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비명조차 쉽게 지르지 못하는 농민이 설 자리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거대 담론, 정치적 스캔들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생명’의 문제인 농촌의 몰락에는 사소한 눈길조차 인색하다.

강정, 밀양, 삼척, 영양의 농민들이 농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토록 싸워야 하는 이유는 국토 구석진 곳의 농민들에게서 삶을 빼앗아도 별 문제 없다는 정부와 자본, 우리 사회의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농민뿐만이 아니라 소외된 곳곳을 파고든다는 것을 이미 체험하고 있다. 하물며 농민의 문제는 일부 농민이나 농민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 노동, 환경, 생명, 평화, 그 모든 가치 싸움의 영역이며, 온 국민이 살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할 문제다.

또한 농촌을 살리는 것은 농민들의 일터를 넘어 우리의 ‘식량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2008년 ‘광우병 촛불’이 가능했던 것은 그나마 우리의 농민이 ‘비빌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농토도, 종자도, 농민도 모두 잃고 난 후, 정부와 자본의 논리처럼 “휴대폰을 팔아, 쌀을 사 먹어야” 하는 때가 오면, 그때는 ‘안전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를 외치기 위해 광장으로 모일 자유조차 빼앗기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농민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밀양 농민들의 고통에 연대하지 않는 이유를 “그들이 새누리당을 찍었기 때문이다. 당해봐야 한다”고 밝히는 이들을 보면서 심히 우려스러웠다. 단언컨대 그 말은 ‘내가 바라는 대로 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복수심’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잔혹하기 그지없는 말이며, 그 자신의 삶에서도 책임을 져야 할 말이다.

새누리당을 비판한다고 해서 진보가 되는 것도, 옳은 것도 아니다. 세상사의 맥락을 살피려고 하기보다 아집에 갇혀 판단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수구’의 모습일 것이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한 번만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런 다음에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정현진 (레지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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