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이야기]


갑작스런 친구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경북 영주에 밤차를 타고 내려갔다. 거기서 새벽차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상가 집에는 꼭 가야하며 상주와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이라도 먹어야 그들이 무게에서 빨리 놓여나는 법이라고 들어온 터라 밤과 새벽을 고속도로에서 보내야 했다.

우동 한 그릇의 온기를 얻어 삶은 계속되고

일정이 강원도를 거쳐야 해서 춘천에서 원주와 횡성을 거쳐 죽령터널을 지나 경상도로 들어섰다. 산간지방의 휑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가노라니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선명했다. 추위를 달래기 위해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었다. 텅 빈 휴게소는 강한 불빛을 내뿜으며 손님을 유혹했지만 정작 넓은 홀 어디에도 손님은 없었다. 우동 한 그릇의 온기를 얻고 조명도 들어오지 않고 히터도 망가진 차를 몰아 우리는 영주에 닿았다.

한 차례 암수술을 받은 몸으로 지내시느라 늘 염려가 되었지만 찾아뵙지 못하다 부고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밤길을 달려 어머니를 영정사진으로 만나 인사 드렸다. 마지막 길에 영주의 작은 교회에 적을 두셨던 연유로 ‘성도’라 칭해진 영정 앞에서, 우리는 친구가 영정속의 어머니와 꼭 닮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우리 곁에서 마감하는 한 세대의 끝을 이야기했다.

죽음의 옆자리에 차려진 밥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친구의 상한 얼굴을 염려하며 음식을 권했다. 경상도 지방의 특색인지 삶은 문어가 상에 올려져 우리는 이것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노란물을 들인 떡을 먹었다. 내일 아침이면 친구의 어머니는 아침예배를 마치고 근처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변할 텐데, 우리는 밥상에 앉아 이렇게 음식이 잘 나오는 영안실은 처음이라며 지방도시의 미덕이 아닐까 하는 너스레를 풀어놓았다.

스스럼 없이 넘나드는 삶과 죽음

이십대 중반 무렵, 집안에 초상이 생겨 아직 공동묘지로 정식 개발하지 않은 야산에 산소를 마련한 일이 있었다. 산마루에 마련한 무덤에 하관을 마치자 곧 바로 사람들은 밥을 먹기 시작하며 음식이 이러니저러니 하는데 그 태도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죽음을 몸으로 겪다, 바로 곁에서 어떻게 갈치조림을 말하며 제주 은갈치와 수입갈치의 차이를 섬세하게 얘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여름의 느닷없는 죽음에 짓눌린 채, 나는 음식준비를 돕느라 정신이 없었다. 허가받은 공동묘지를 마련하지 못해 우리는 음식도 손수 다 마련해서 산으로 가져가야 했다. 죽음에 쫓기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장지까지 오신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으로 동태찌개를 준비했더니, 어느 분이 여름 무가 무슨 맛이 들었겠냐며 그냥 신김치에다 돼지고기를 넣고 끓이라고 해서 메뉴를 바꿔 재료를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던 기억도 난다.

하관을 마치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데, 여자들은 음식을 마련하느라 산에다 불을 피우며 법석을 떨어야 했다. 계란을 삶아와 그 껍질을 까다 뭔가를 찍어먹을 양념간장을 챙기고, 찌개의 간을 보느라 국자를 들고 뜨거운 국물을 먹어보고 소금을 넣고 고춧가루를 뿌리며 부산하게 음식 사이를 오가다 보니 생각지 못한 이상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삶이 죽음을 죽음이 삶을 스스럼없이 넘나드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방금 하관을 마친 사람들이 밥그릇을 들고 찌개국물을 흘려가며 먹어대는 게 역겹게 보였는데 조금씩 다르게 보이고 읽혔다. 생사일여(生死一如)... 그들은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로서 어느 순간 순하게 죽음으로 돌아갈 여린 생명들이었다. 죽음을 두고 밥을 먹고 밥을 먹다 죽는 게 생명의 여정으로 그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인 자연인이었다. 죽음이 삶을 감시관처럼 통제하는 것도 아니고 삶이 죽음에 자리를 너무 내주는 식도 아닌 저마다 저만의 자리를 잡고 저 만큼의 몫을 누리다 다른 이에게 자리를 내주는 흐름의 한 순간들이었다.

 

밥처럼 따뜻한 마음자리

몇 해 전, 눈이 몹시도 많이 내린 날 어머니의 하관을 마치고 문상 온 사람들께 밥을 대접해 드리는데 무에다 소고기를 넣고 국을 끓여드렸더니 담백한 국물이 좋다며 손님들이 더 청해서 드시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사가 우러나왔다. 상실의 자리, 음습한 죽음의 자리를 저마다의 온기로 녹여주러 장지까지 와서 상주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느라 밥을 먹고 밥처럼 따뜻한 마음자리를 만들어주고자 하시던 분들이 저녁노을처럼 편안하고 유정했다.

새벽녘, 친구 남편이 칡즙을 따라주어 한 잔 마시고 고인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고인의 영혼이 하느님 품에서 안식을 누리길 청하고 마당으로 나오니 온 우주의 별들이 문상이라도 온 듯 검푸른 하늘 가득 반짝이며 장례식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개별적인 한 사람과 우주는 어떻게 이어져 서로를 이야기하는지 명료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결코 무관한 관계는 아니라는 느낌만은 선명했다.

한 때는 살아서 애증을 뿜어내던 생명들

영주 터미날에서 서울행 첫차를 타고 오면서 보니 횡성과 원주, 여주로 이어지는 산야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희끗희끗 눈이 쌓인 산들이 이어지며 그 산들 곳곳에는 어김없이 무덤들이 눈을 덮어쓰고 있었다. 눈 덮힌 묘지의 주인공들 모두가 한 때는 살아서 애증을 뿜어내던 생명들이었을 것이다. 죽음을 맞아 자신의 피붙이를 남겨두고 사별을 고하고 둥그런 무덤을 지어 산바람을 맞으며 눈을 덮어쓰고 있는 것이리라. 무덤 하나마다 고인과 연결된 이들의 눈물과 상실감이 배어있음을 생각하니 산, 바람, 나 어느 것도 유기체의 한 부분 아닌 게 없으며 모두가 바로 나였고 나의 어머니였으며 바로 하느님이었다.

희곡 <어머니의 이름으로>에서 유다의 어머니는 아들 유다의 무덤을 찾아가 허무한 몸짓으로 춤을 춘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모님이 하얀 백합 한 송이를 무덤 위에 놓으며 이렇게 얘기한다.

"형님, 이 꽃을 보십시오. 이 꽃은 하루나 이틀, 길어야 일주일이면 시들어 말라죽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꽃이 생명을 얻을 수 있을런지요?
아마도 처음 이어졌던 줄기와 뿌리가 만나 접이 붙여진다면 원래의 생명을 되찾을 수 있겠지요. 사람도 이와 같을 겁니다. 여기 주검이 되어 묻힌 유다가 어떻게 해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주검이 근원적인 생명과 접이 붙여지면 새 생명,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과 주검이 접붙여지면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접이 붙여질까요? 장미가 장미의 생명을 얻으려면 백합에다 접붙여서는 안 되듯이 사람이, 주검이 하느님과 접이 붙여지려면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닮아야만 접이 붙여져 생명의 근원을 만나 새 생명을 얻게 되겠지요... ."

이규원/ 드라마와 소설 작가, 어린이 책읽기 교실 <글방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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