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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레알청춘일기 - 김대현 (마지막 회)]

지난 2월의 일이다.

어떤 후배 놈과 술을 먹을 일이 있었다. 친해지기 위한 의례 같은 술자리였는데, 그 녀석은 그 자리에서 자기 과거 얘기를 폭풍처럼 쏟아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제 가족력과 섹슈얼리티와 직업상 좌절을 무려 한 자리에서 털어놓은 것이다. 한 술자리에서 하나 소화하기도 힘든 얘기를 세 곱절로 들으니 탁배기 순배가 자연히 잦아졌고, 무엇인지도 모를 위로를 건네주고는 한 차만에 녀석과 헤어지게 됐다.

갑자기 오른 술기운으로 나선 거리는 차가웠다. 술이란 게 그렇다, 내가 마음을 열면 그에 맞춰 마음을 열어주는 고마운 이들과 즐거웠던 만큼, 내가 마음을 열면 제 마음을 더 꽁꽁 숨길 뿐인 적대의 거리가 나를 맞는다. 나를 열어 해해 풀어진 나는 그 거리에게는 그저 적일 뿐으로, 만취 상태인 이들이 즐겨 전봇대며 나무와 씨름하는 것들도 다 그런 일리가 있는 것이다. 강력한 교감 뒤에 오는 서늘한 기분은 그날따라 한결 서릿발 같았고, 거기서 갑자기 내 과거와 내 가족력과 내 첫사랑의 불행 등속이 한꺼번에 나를 에워왔다.
 

   
ⓒ김대현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의 마음을 나누고 그는 나의 마음을 나누었으리라 생각했건만 내 마음은 여전히 많은 부분 나눠지지 않았다는 것을. 술자리에서 상대와 대화하고자 내 과거 중 내 말하기 좋은 것들만 골라 치장해놓았건만, 치장될 리 없던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은 돌아선 내게 이리도 무겁다는 것을. 술자리에서만큼은 너는 내 마음을 알아주어야 했으되, 눈먼 채라도 들어주고 알아주던 이마저 가고 없으니 여즉 남은 내 말을 들어줄 이가 없었다. 그것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그때 나는 나도 모르는 나를 너무 열어버린 것이다.

내 과거를 모두 탈탈 털어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다. 괜히 달뜬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누구라도 보고 싶었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이미 예민해진 기분은 그 마음이 지닌 후미짐만큼 까탈스러웠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기 어려우니 하늘에게서라도 위안을 얻으려고 나는 가슴팍을 쥐며 주기도문을 읊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는 첫 구절을 읊으며 하늘을 보는데, 밤하늘이 검었다. 아버지는, 하늘에 계셨다. 나를 위로해주실 분이 저기 하늘에 있었다. 그 때 알았다, 나는 이렇게 내내 오르지 못할 하늘을 바라기하며 살겠구나, 이 땅에 두 발로 서서 반쯤 튿어진 가슴을 모두 알아줄 사람이, 이 땅에는 없겠구나. 나는 온전히 고결해질 수도, 온전히 더러워질 수도 없구나, 저 하늘 앞에서 나는 영영, 내 가슴을 나눌 수가 없겠구나. 그러자 눈물이 났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나를 지으시고 나를 누구보다 먼저 아신다는 아버지는 왜 하필 하늘에 계신단 말인가. 하늘 위에 떠 있는 아버지 이름이 땅의 사람들에게 무슨 수로 거룩히 빛날 수가 있겠으며, 그런 중에 아버지의 나라는 또 언제 나를 알아주고 언제 내 마음을 건져준단 말인가. 여기에 있지 못한 아버지의 뜻은 하늘에 매달린 채로 얼마나 외로울 것이며, 그 외롭고 그리운 뜻이 어느 세월이 이 땅까지 내려와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왜 하필 하늘에 계시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은 어쩌자고 그리도 거룩히 빛나시며, 그 거룩한 뜻이 차라리 하늘에 갇히지도 못하고 이 땅에 내려와 초라하게 갑남을녀와 엉켜 뒹굴어갈 세월이, 그 뜻이 이루어질 시간이 얼마나 하염없을지가 원망스러워 눈물이 났다. 차라리 하늘로 끌어올려 주시든가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높지도 못하고 낮지도 못할 존재의 한이 귀절 하나하나 뇌리에 박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술기운으로 열린 가슴에 그만 세상이 들어와 앉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구멍 뚫린 듯 울고 나니 자신이 측은해졌다. 아랫배가 고파오고 나는 다행히 조금 세속스러워졌다. 짐승처럼 하루 세 끼 풀칠할 우리를 돌보시고, 내게 미운 짓을 한 이들도 생각났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는커녕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지만,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내 죄, 내가 손수 어루만질 수 없는 내 죄를 용서받으려면, 저기 하늘의 높은 분이 아니라 여기 내가,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몸소 내게 죄진 이를 인두겁이 벗겨지는 기분을 참고 용서하오니, 그걸 보시고 저 하늘의 높은 분이 비로소 저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저희 스스로 뒤틀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늘이 빙그르르 돌았다. 기도문에 얽힌 온갖 스크립트가 머리 위에 해초처럼 떠 있었다. 미친 듯이 울고 난 눈으로 나는 하늘을 보았다. 검은 하늘엔 아무 것도 없었고, 내 목숨이 부질없지 않기 위해 거기엔 또 무언가가 있었다. 바깥으로 열렸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안으로 아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멎고, 나는 다시 일상의 거리로 돌아왔다. 젖은 얼굴에 바람이 찼다. 행인 하나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지나갔다.
 

   
ⓒ김대현


술을 마시지 않은 지금 나는 그때 내가 운 이유를 모른다. 다만 영원히 위로받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서러움과 공포를 겪은 후로 나는 묘한 위로를 받았다. 더불어 조금은 마음 다칠 일에 슬기로울 줄 알게 되었다. 이해받지 못한 일로 상처받기에 세상은 이미 너무도 커다란 “이해받을 수 없음”이었고, 또 커다란 위로 없음 뒤에 그렇게 커다란 위로가 숨어있었듯이, 작은 몰이해 뒤엔 또 깨알같이 작은 위안들이 숨어있었다. 그것들의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가끔 술이 되고 닫힌 마음이 달락거릴 땐 그때 울었던 생각이 난다. 어느 하나 내 마음에 맞는 것이 없고, 나를 이지러뜨려 이곳 저곳에 퍼즐조각처럼 맞추어주는 일상이 피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할 때. 이제는 더 할 수 없다고 울부짖는 마음이 그 후로도 머리채 잡힌 채로 당장 소화할 일정에 맞춰 끌려 다닐 때. 더 이상 참아주고 이해해주기 싫다고, 대체 내가 거기까지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나도 이젠 끔찍하다고 외치며 사람에게 등 돌리고 싶을 때, 그때 보았던 그 거리의 눈물이 생각난다. 이렇게 태어나 존재를 앓다가 언젠가는 나를 온전히 알아봐주는, 내 마음에 알맞춤한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런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그러니 그 전까지는, 그렇게 검은 하늘로라도 저를 좀 보아달라고. 이렇게 아예 높지도 못하고 내처 낮지도 못할, 여기 우리들을 돌보아달라고.
 

 
 

김대현 (베드로)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노래하고 사진찍고 잡지 표지디자인 만지는 일을 좋아한다. 각 세대의 상식을 다른 세대에 번역해주고 이해의 끈을 잇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편이다.

 

* 이번 회로 김대현 님의 ‘레알청춘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편집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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