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 - 김근수]

비유럽 출신 교황으로 처음 등장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교회 밖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새 교황이 나타나면 처음 얼마 동안은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 관례다. 마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처음에 비교적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는 모양과 비슷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관심이 차차 실망으로 변하곤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런 과정을 따르게 될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금 인기 있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다. 소박함, 친절, 솔직 등 그의 개인적인 성품에서 인기의 근원을 찾을 수도 있다. 추상적인 언어보다 일상적 어휘, 성서 단어를 즐겨 쓰는 등 교황의 독특한 어법에서 인기의 원천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남미 사람 특유의 개방적 태도, 낙천적 자세, 구체적 사례를 인용하는 모습이 감동을 주기도 하겠다. 휴대폰, 유튜브, 인터넷 등 이전 교황 때보다 발전된 통신 수단이 또한 교황 홍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품, 언어, 자세 등은 이전 교황들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이전 교황들도 대부분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소탈한 성품은 프란치스코 교황 못지않았다. 베네딕토 16세가 성서적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도 프란치스코 교황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무엇인가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크게 공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 지난 10월, 성 프란치스코 축일을 맞아 성인이 활동하던 이탈리아 아시시를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가 젊은이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 교황청 유튜브 갈무리 youtube.com/vatican)

이른바 ‘교황식 어법’이란 용어가 있다. 듣는 사람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추상적인 어휘를 쓰며 해당되는 사람을 거명하지 않는 어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식 어법을 상당히 무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강대국의 횡포, 부자들의 탐욕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전 교황들의 언급보다 자세하고 강도가 세다.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이전 교황들보다 더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 어법이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모습 중 하나다.

가톨릭교회 내부 문제를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다룬 교황은 여태 없었다. 이전 교황들은 교회 내부 문제를 대부분 비밀주의로 처리하는 편이었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도 모든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교회 내부 문제를 정확히 짚고 또 감추지 않고 공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회가 닥친 세 가지 유혹 중 하나를 ‘성직자 중심주의’로 교황이 지적한 경우는 놀라운 일이었다. 성직자 중심주의가 가톨릭교회를 지탱해온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군사정권 시절을 겪었고 IMF 경제위기도 경험한 인물이다. 정치경제의 추악한 모습이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교황은 체험하였다. 가톨릭교회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을 지지했던 부끄러운 역사도 교황은 잘 알고 있다. 주교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지 교황은 모르지 않았다. 가톨릭교회 내부 개혁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지 교황은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황의 개인적 삶의 배경인 역사가 교황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불의한 역사 안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알리느냐가 교황의 평생 주제이다. 교황이 살아온 그 슬픈 역사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바로 그 원천이다. 교황의 성품, 언어, 태도는 모두 그 역사에서 생긴 것이다. 교황의 성품, 언어, 태도 덕분에 교황이 살아온 역사가 조명되는 것이 아니다. 교황이 살아온 역사 덕분에 그 언어, 성품, 태도가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안 된다.

교황의 개혁적 분위기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대체로 지지를 받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 개혁 분위기가 아직 구체적으로 실현되지는 않고 있다. 분위기는 바꾸고 구조 개혁은 흐지부지 지체될 수도 있다.

무너져가는 집에 실내온도를 높인다고 해서 집이 튼튼해지지는 않는다. 가톨릭교회 개혁을 위해 교황이 내건 구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와 ‘가난한 교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런데 둘 중 어느 한 가지도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다. 교회 역사에서 가난한 교회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거의 없었다. 교황의 노력이 분위기 변화에서 그치지 않고 구조 개혁으로 잘 연결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에서 한국 천주교회도 무엇인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교황의 교회 개혁 노력을 한국 천주교회가 크게 환영하고 개혁 노력에 적극 동참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주교들의 삶에도 두드러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골프장에 출입하는 성직자들이 당장 골프를 그만둘 줄 알았다. 내가 순진한 탓일까. 여전히 한국 신부들은 골프장에서 노닥거린다.

곧 육신의 나이 80이 되는 교황의 애쓰는 모습이 참으로 가련하다. 교황을 인용만 하고 교황에게서 배우기는 싫은가.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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