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구 정위평화위원회(위원장 김훈일 신부, 이하 청주 정평위)와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친일파 민영은의 후손들이 청주 시내의 땅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막았다.

지난 5일 청주지법 민사항소1부(이영욱 부장판사)는 민영은의 후손 다섯 명이 충북 청주시를 상대로 제기한 토지반환 항소심 판결문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는 민영은이 취득한 문제의 땅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추정된다.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모두 국가의 소유로 귀속된 것으로 봄이 마땅하다”며 원심결과를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청주 정평위는 민족문제연구소, 광복회 등의 시민단체와 대책위를 꾸려 이 소송에 반대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김훈일 신부는 “작년 11월 민영은의 후손들이 1심에서 승소한 뒤 시민단체와 의견을 주고받다가 올해 4월부터 정평위 차원에서 함께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정평위는 시민단체와 함께 거리 홍보전과 서명을 받는 한편, 각 본당에 이 사안을 알리고 3,000명 이상의 신자들에게서 서명을 받았다. 민영은의 외손자인 권 모 씨는 자신의 외조부의 친일 행각을 반성한다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이런 서명과 탄원서가 재판부에 많은 압박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 김훈일 신부
김훈일 신부는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라면서도 “처음부터 전혀 말이 안 되는 소송이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땅은 청주 도심에 있다. 게다가 한 평, 두 평 정도의 작은 땅이다. 그런데 1940년부터 60여 년 간 사용비만 8억을 청구했다. 땅은 작지만 여러 가지를 합치면 청구액이 20억 가량 됐다. 소송 당사자들은 모두 고령인데다 5명 중 3명은 1970년대 재산을 다 팔아 미국에 이민 간 상태다. 너무 파렴치한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민영은은 1906년 보성학교와 현 청주여고 설립에 사비를 들인 공적도 기록되었지만, 1937년 징병, 창씨개명, 일본어 사용 등을 독려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이기도 했던 대표적인 친일파 인사다. 민영은은 3.1운동 와해 조직인 ‘청주 자제회’ 발기인으로 3.1운동을 ‘경거망동’이라 표현했다.

민영은의 후손 다섯 명은 2011년 3월 청주 도심인 서문대교와 청주중학교, 성안길 인근의 도로를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2년 11월, 1심에서 승소했다.

김 신부는 “지역교회는 민족의 역사와 문화 안에서 신앙을 키워나간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 역사의 아픔과 고통, 갈등에 공감하고 치유하면서 민족을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도 청주 정평위 차원에서 미래를 위한 역사 문제에 관심을 쏟고 화해와 용서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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