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KBS 2TV 단막극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

고시원에서 잠깐 산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건널목 하나 건너면 있던 고시원에서, 딱 한 달 보름을 지냈다. 두 번째 대학의 3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아직은, 진짜 ‘고시생’들이나 고시원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을 거라 여기던 그런 시절이었다. 한 마디로 객기였다. 안락한 집에서는 뭔가 ‘집중’이 안 된다는 핑계로, 용돈을 아껴 ‘독립’을 잠시 흉내내 본 거였다고 밖에는 지금으로선 평가 못하겠다. 부끄럽다. 엄마가 꼬박꼬박 밥상을 차려 주시고 빨래해 주시는 집에서 편히 지내던 당시의 내게는, 고시원에서 잠시 지내보는 것도 나름의 각오 끝에 내린 ‘액션’이었다고 둘러대 본다.

가서 지내보기 전에는 몰랐다. 고시원이라는 곳의 진짜 고충은, 좁디좁은 공간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소리였다. 가장 못 견딜 것은, 이른바 생활소음이었다. ‘생활소음’이라는 고상한 범주에 넣어버리면 지나치게 미화 혹은 왜곡시키는 게 돼버릴 그런 소리들 말이다.

베니어판 같은 것이었을까. 그 얇디얇은 ‘벽’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어떤 건물의 ‘벽’이 그렇게까지 얇은 가림막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연극 무대에서나 쓰일 그런 ‘가벽’인 듯했다.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옆방에 있는 사람의 동선까지 눈에 보일 듯이 그려지는 실감 100%의 소리였다. 그렇게 잘 들리는데, 그 소리를 내는 이의 모습만 볼 수 없다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의 생생함이었다.

내 방은 그나마 복도 끝 방이었다. 타인과 한쪽 벽 밖에는 ‘공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좁은 복도 사이로 마주보는 방들이 여럿 있었지만, 어쨌든 ‘옆방’은 하나였다. 창도 두 쪽으로 나 있었다. 건물이 타원형이었기 때문이다. 햇살이 많이 들어오는 대신 조금 추운 방이었지만 대신 다른 방들에 비해 답답함이 덜했다. 그리고 창문 덕분에, 비쌌다. 상대적으로. 조금 추운 것쯤은, 길 건너에 부모님 댁이 있던 내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 시끄럽고 정 추운 날은, ‘방’을 나와 ‘집’에 가면 됐으니까.

▲ KBS 2TV 단막극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 예고편 갈무리 (* 이 단막극은 KBS 2TV 드라마스페셜 사이트 www.kbs.co.kr/drama/thedrama 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밤하늘보다 깜깜한 이 시대의 사랑

KBS 2TV ‘드라마 스페셜 단막 2013’의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극본 김민정, 연출 황인혁)를 보았다. 그간 수요일 밤 11시 10분에 하던 단막극을 일요일 밤 11시 55분으로 옮긴 후 첫 작품이었다. 배우 김지석과 정소민이 돈이 없어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청춘들로 등장했다. 고시원에서의 한 때가, 그 답답하던 느낌이 마구 떠올랐다. 11월 3일, 5분 후면 다음날이 되는 그 편성의 악조건을 딛고서도 볼 만큼 소재나 연기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강석(김지석 분)은 억대 연봉을 받는 학원 강사지만 아버지가 남긴 빚과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극도로 쪼들린다. 아무리 벌어도 고시원 비용 정도밖에 남는 게 없다. 등록금 대출과 아버지가 ‘유산’처럼 떠넘긴 채무를 상당 부분 갚았다는 게 강석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이지만, 완전히 청산하려면 아직 멀었다. 솔직히 말하면,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영원히 이렇게 살 수도 있다.

빚과 이자의 쳇바퀴, 산소 호흡기로 연명 중인 어머니와 간병에 시들어가는 여동생, 볕도 잘 들지 않는 고시원 살이…. 꿈조차 사치스럽다. 생활필수품에 가까운 자가용 한 대가 전 재산인 동시에 유일한 ‘겉옷’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생에 대해 아무 기대도 없던 그에게, 우연처럼 필연처럼 사랑이 찾아온다. 하진(정소민 분)이라는 사랑스러운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진도 몇 달째 월급이 밀리다가 결국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앞날이 막막해진 상태다. 한두 달로 끝날 줄 알았던 고시원 생활이, 취업 못해 미칠 것 같은 불안이, 점차 일상이자 가까운 미래로 굳어져 가는 상태다.

우연히 겹친 ‘미팅 이벤트’ 자리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의 직업과 차와 차림새와 예전 주소만을 ‘정보’로 주고받았다. 첫 만남에서 하진은 강석의 자동차를 얻어 타고는, 월세를 못내 쫓겨난 예전 자취방 앞에서 내렸다. 차마 고시원 주소를 대지 못했다. 경품으로 탄 무거운 밥솥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야 했다. 그리고 이후 모든 것이 꼬였고, 감정은 마냥 간절해져 갔다. 어쨌든, 서로의 상태를 잘 모르고 만났을 때는 ‘환상’ 혹은 체면치레가 가능했다.

누군가에게로 가서 별이 되고 싶지만

결국 둘 다 같은 ‘나래 고시원’ 합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던 순간에 계단을 뛰어 도망치던 하진과 흙빛으로 변하던 강석의 얼굴. 그리고 이어진 암담한 대화 내용, 아니 참담한 사랑 고백.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둘이 공원에서 피를 토하듯 싸워대는 장면에서야 시청자는 비로소 알게 된다.

“나 좀 기다려 주면 안돼요?”
“얼마면 돼요? 한 달이면 돼요? 1년이면 돼요?”

하진의 표정은 얼음장 같다. 기다려 달라던 남자는 그녀의 표정만 보고도 무너진다. 그도 그녀도 시청자도 안다. 평생토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남자는 울부짖고 여자는 싸늘하다. “그래. 나 너랑 살고 싶어서 엄마도 팽개치고… 미쳤다!”며 악을 쓰는 남자와 “가난 더하기 가난은 가난 두 배일 뿐”이라며 “마음까지 빈털터리 되기 전에 그만하자”는 여자.

놀라웠다. 최근 드라마 중 가장 절절한 사랑 고백이 야밤에 단막극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여간해서는 보기 드문 ‘새드 엔딩’을 맞닥뜨리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그 고백과 함께 짙어졌다. 강석의 진심에 기대를 걸어보기엔, 두 사람의 현실 인식이 너무나 명확했다. 저 단단한 ‘주제 파악’을 뚫고 서로에게 꿈과 미래를 걸어보려면, ‘기다리겠다’는 식언(食言)이라도 하려면, 지상의 집 한 칸은 있어야 했다. 둘만의 집, 고시원이 아닌 진짜 집.

이후 드라마는 남자의 마지막 선물이었던 ‘2년짜리 월세방’과 ‘신림동 고시원 화재’를 재현한 방화사건, 여자와 남자의 엇갈림 등을 (불분명하게) 펼쳐놓는다. 두 사람의 마음만 확인될 뿐, 줄거리 상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확실치 않다. 강석의 생사여부조차 알 수 없다.

물론, 이런 결말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든다. 그럼에도 이해가 간다. 저토록 자신의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는 똘똘한 젊은이들에게, 로또 당첨이 아니고서야 ‘집’ 같은 걸 꿈꿀 수도 없는 그들에게,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은 ‘별’보다 결코 가깝지 않았다.

드라마가 끝난 후, 또 한 번 놀랐다. 그 새벽에 올라오는 트위터 글들과 기사와 댓글들의 조용한 열기, 가슴 아프지만 공감한다는 고백들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로 가서 별이 되고 싶지만 어디에도 가닿기 두려워 부유(浮遊)하는 그 뜨거운 마음들.

우리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고시원과 SNS를 넘어, 어둠을 넘어 언제쯤이면 지상(地上)에 발을 붙일 수 있을까. 이 작품이 끝내 찾아내지 못한 대안은 현실이 답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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