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은 어디에] 국회앞 농성장에서 만난 김영곤과 김동애씨

 

전경들이 밟고 지나간 농성천막. 추운 겨울밤 찬 바람을 막기에는 너무나 얇아 보인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거리마다 알록달록한 성탄 장식들이 반짝이고, 흥겨운 캐롤 노랫소리가 거리에 넘실거리고 있다. 대림초에 불이 하나씩 밝혀지며 다가오는 성탄,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올해도 어김없이 이 세상에 오실까?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에 들뜬 거리를 뒤로하고, 나는 2000년 전 동방박사처럼 진정 아기 예수님이 오실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이다. 법이 만들어지는 곳 국회. 국회 앞은 항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천막을 치고 국회의원들에게 올바른 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농성천막. 전경들이 먼저 짓밟고 지나갔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간신히 몸을 추스릴 자리가 나오는 곳에서 김동애(소화데레사)씨와 김영곤씨가 천막농성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470일이 지나고 있다. 

1년 동안 수업을 해도 1,000만원이 안 되는 봉급, 강의해달라는 전화가 없으면 곧바로 실직. 아마 해고 됐다는 통지가 없는 비정규직은 대학 강사가 유일한 것 같다. 이렇게 고된 생활이 이어지는 대학 강사는 관련법상 '교원'이 아니다. 대학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김동애씨, 벌써 10년째 싸움을 하고 있다.

다 쓰러져 가는 작은 천막 속에서 겨울밤 찬바람을 막아야하는 김동애씨, 지금껏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천막농성이 이어지면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관계가 모두 끊어지고, 김동애씨 딸조차 싸움을 그만두라고 애원하기도 했단다. 더구나 이해 당사자인 대학당국은 시시때때로 천막을 망가뜨리고, 피같이 보이는 액체를 뿌려놓기도 하고, 테러위협도 했다. 경제형편도 어려워져서 돈을 빌려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어렵지만 김동애씨는 지금까지 버터온 싸움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항상 노동자의 눈물을 지켜봐야하고, 사용자측과 경찰의 폭력에 가슴 졸여야 하는 싸움의 시간이 은총이였다니...

김동애 씨
"투쟁해 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의 명예와 부, 이익을 벗어나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투쟁과정에서 저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김동애씨의 고백이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93년부터 평일미사를 참례해 왔습니다. 2002년 혼자 한성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 신설동 길가에서 야채 파는 할머니를 줄곧 보았습니다. 난로도 없이(김동애씨 농성천막에는 난로가 있었다) 일하시는 할머니는 신세를 한탄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차분하지만 치열하게 투쟁하는 모습으로 일상을 사셨죠."

그 할머니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느꼈다는 김동애씨. 그녀가 생각하는 예수님은 불의한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 속에 계신 분이라고 한다.

김동애씨는 다음과 같이 성탄의미에 대해 말한다.

"예수님은 해고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 항상 투쟁하는 문정현 신부님 등 세상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곳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2000년 전 사건인 성탄의 의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자리에서 성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픔의 과정, 힘겨운 시간들을 은총이라고 말하는 김동애씨를 보며, 글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그녀의 '은총고백'은 진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도 이런 희망을 가졌으리라. 2000년 전 십자가 위에서 패배자의 모습으로 죽어야만 했던 예수, 그가 바랬던 마지막 희망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 당신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투쟁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는 자기 십자가를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올해도 이런 희망은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 마음속에 올해도 예수님은 오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 주고 있다.

무너진 천막 앞에서, 김영곤과 김동애씨.

 

두현진/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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