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평위 환경소위 · 우리신학연구소, 공동으로 국제 심포지엄 열어
말레이시아와 일본, 한국의 국가 주도 개발 문제 논의

핵발전소와 댐으로 상징되는 국가 주도 개발이 야기하는 국가와 지역주민 간의 갈등, 그리고 환경 파괴는 대한민국만의 문제일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환경소위원회와 우리신학연구소(소장 경동현)는 말레이시아와 일본의 평신도 활동가, 김정욱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를 초청해 7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국제 포럼을 열었다. 두 명의 아시아 활동가는 댐 건설과 핵발전소가 어떻게 인간의 삶과 자연을 파괴하였는지 각국의 사례를 들어 자세히 보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톨릭교회와 시민단체가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설명했다.

▲ (왼쪽부터) 피터 칼랑 ‘세이브 리버스’ 의장, 와타나베 다카고 ‘사요나라 원전 1천만 명 액션’ 실행위원,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문양효숙 기자

말레이시아, 아시아 두 번째 규모 ‘바쿤댐’ 건설
7만 헥타르 수몰, 1만 명 살 곳 잃어

첫 번째 발제자로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 미리 교구의 평신도남성협의회 회장이며 ‘세이브 리버스(Save Rivers)’ 의장인 피터 칼랑(Peter N.J. Kallang)이 나섰다. 세이브 리버스는 대형 댐 공사로 발생한 토착민 강제 이주와 열대우림, 강 파괴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네트워크다.

사라왁 주(州)는 보루네오 섬에 있는 두 개의 말레이시아 주 중 하나다. 사라왁 주는 비옥하고 생태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며, 목재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은 지난 20년간 말레이시아 경제에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1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바쿤댐’이 건설돼 싱가포르보다 넓은 7만 헥타르가 물에 잠시면서, 1만여 명의 원주민들은 살 곳을 잃었고, 수많은 나무와 동물 서식지는 사라졌다.

바쿤 수력발전의 원래 목적은 해저전력케이블을 통해 말레이 반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었지만, 말레이 반도 전력공급계획이 비용 등의 문제로 유보되면서 이 수력발전소의 전기는 이미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는 사라왁 주에만 공급되고 있다.

피터 칼랑 의장은 2조 4천억 원을 들여 25년 만에 완공 된 바쿤댐이 ‘부패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댐 계획을 승인한 압둘 마흐무드(Abdul Taib Mahmud) 주지사는 30여 년간 환경부, 재정부 장관 등 행정 요직을 역임했고, 댐을 소유한 회사 ‘사라왁 에너지’의 CEO다. 게다가 케이블, 시멘트 등의 자재를 공급해 온 회사의 소유주는 모두 장관의 친인척이다. 피터 칼랑 의장은 “댐 건설과 관련해 반부패위원회에 진정을 냈지만 대응은 느렸고, 최종적으로 부패로 성립되지 않는 사례라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에 25년에 걸쳐 건설된 바쿤댐. 이 댐 건설로 7만 헥타르가 수몰되고 1만 명의 원주민이 강제 이주를 했다. (사진 제공 / 피터 칼랑)

한편, 환경 문제는 수몰 이후에도 계속됐다. 수몰된 지역의 나무가 썩어가며 내뿜는 가스로 악취가 진동했고, 물을 방류할 때 발생한 물 안개는 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알 수 없는 침전물을 쌓아 일상생활마저 곤란하게 만들었다.

재정착민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칼랑 의장은 “처음 정부는 더 좋은 집, 직장, 무료 전기와 수도를 약속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예전에 살던 곳보다 더 열악한 곳에 살고 수도세와 전기세를 내지 못해 물과 전기가 끊긴 곳도 많다”고 말했다. 칼랑 의장은 “정부는 댐 건설로 300만 개의 일자리를 약속했지만 이는 사라왁 전체 인구보다 20만이 많은 수”라고 지적하며, 정부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약속’은 모두 허구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댐이 2020년까지 11개나 더 건설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사라왁 재생가능 에너지 지대’라 불리는 경제계획은 2030년까지 1050억 달러를 쏟아 부어 알루미늄, 유리, 철강 등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고 오염 수위가 높은 산업단지를 유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칼랑 의장은 “이대로 진행된다면 사라왁 주의 10%가 물에 잠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막기 위해 2011년 결성한 ‘세이브 리버스’는 장관실, 의회 등을 찾아가 항의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댐 건설 컨설팅을 하는 호주 회사를 찾아가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정부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수몰지역 원주민의 권리와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

칼랑 의장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3월 성 요셉 축일 강론에서 ‘모든 것이 우리의 보호에 맡겨져 있고 우리 모두가 피조물에 책임이 있다. 하느님이 주신 선물의 보호자가 되자’고 강조하셨다”면서 “댐 건설과 경제 개발이 사람과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볼 때, 이에 대한 입장을 세우고 반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바쿤 댐에서 물을 방류할 때 생기는 침전물이 인근 지역에 쌓여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사진 제공 / 피터 칼랑)

“원전 건설사 후원 받는 아베 정부, 탈원전 흐름에 역행…
일본을 군사국가로 만들지 않기 위해 국제 연대, 협력 나서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일본 상황과 가톨릭교회의 대처에 관해서는 ‘평화를 실현하는 그리스도인 네트’ 스텝이며 ‘사요나라 원전 1천만 명 액션’ 실행위원인 와타나베 다카코 씨가 발표를 맡았다.

다카코 씨는 먼저 일본 천주교의 피해자 지원활동을 소개했다. 일본 사이타마 교구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 지원센터를 만들었고, 각 교구 신자들도 자발적으로 지원활동을 해 왔다. 이들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처리, 난방기구 등의 물적 직원, 어린이 교육 지원 등을 이어가는 한편, ‘자주(自主) 피난자’ 지원활동을 펼쳤다.

자주 피난자란, 일본 정부가 피난 지시를 내린 지역이 아닌 곳에서의 이주자를 말한다. 일본 정부의 피난 방사선 기준은 연간 20밀리 시버트(m㏜)지만, 원전에서 60㎞나 떨어진 고오리야마시 같은 곳에서도 매년 10밀리 시버트에 달하는 방사선 양이 측정되고 있다. 이런 지역에서 이주한 자주 피난자는 7만 명이 넘지만 정부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태다.

한편 일본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인 2010년 12월 30일에 ‘원자력 발전은 온난화 방지를 위한 비장의 수단이 아니다’라는 팸플릿을 발행했다. 54기에 이르는 일본 원전의 현황과 핵폐기물의 위험성, 원전의 불필요함 등을 담은 이 팸플릿은 이듬해 3월 후쿠시마 사고가 난 후, 교회를 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판, 3판으로 증쇄됐다.

이어서 일본 주교단은 2011년 12월 ‘지금 바로 원전을 모두 폐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카코 씨는 “각 교회 공동체에서는 왜 주교단이 이런 성명을 발표하는지 의문스럽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톨릭교회는 원전을 인간 생명의 문제로 보고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다카코 씨는 “일본 가톨릭 전 교구에서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일본 카리타스와 연대해 원전에 대한 학습, 봉사자 양성 및 파견 등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며 각 교구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오랜 시간 빈곤과 평화의 문제에 집중해 온 예수회 사회사목센터의 활동도 언급했다.

끝으로 다카코 씨는 “작년 말 정권을 잡은 자민당 아베 정부는 일본 9개 전력회사와 원전 건설사의 후원을 받고 있어 시민들의 탈원전 흐름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그러나 일본 탈원전 운동은 세계평화를 지향하며 다시는 일본을 군사국가로 만들지 않겠다는 평화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이를 위해 국제적 연대와 협력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핵과 댐으로 야기된 아시아 전역의 문제와 교회의 대응과제를 고민하는 아시아 실천신학 포럼이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4대강 토건공사’ ‘핵에너지 개발 사업’은 악의 두 축,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4대강 사업 초기부터 사업의 부당성과 문제점을 지적해온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농경지 침수, 교량 붕괴, 녹조와 물고기들의 떼죽음 등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을 보여주며,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이 아니라 대운하 건설을 추진한 총체적 사기”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파냈던 강바닥은 재퇴적되었고 이를 다시 준설하는데 매년 2조 원이 든다. 게다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원과 썩어 가는 물의 수질 관리를 위한 돈이 5000억을 웃돈다”며 “보 해체 비용은 2000억이며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작년만 65개의 댐을 해체하는 등 지금까지 800여 개의 댐을 폭파, 철거했다. 댐을 만든 콘크리트 구조의 수명이 다해 오히려 피해가 발생하는 곳이 많고 건설할 당시 긍정적 효과를 과도하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보와 운하를 건설했다가 원래 강의 모습으로 복원한 미국 플로리다 주의 키시미 강과 독일 라인 강 등을 예로 들며 “강은 구불구불 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의 두 축이었던 ‘4대강 살리기’와 ‘녹색에너지 개발’의 실제 이름은 ‘4대강 토건공사’와 ‘핵에너지 개발 사업’이라 지적하고, “이 악의 두 축을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 후에는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김정욱 교수에게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이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물었다. 김 교수는 “반드시 법적 제재를 가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비리 같은 문제가 많은 것은 내부 고발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로 간주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둠은 폭로하는 게 성서의 정신에 맞다. 지금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고발운동을 하고 있다. 4대강 관련해 정부로부터 상을 받은 1,000여 명의 훈장을 무효화시키고 책임이 있는 정치가와 공무원들을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예측한 전문가들이 7년 징역을 받았다. 예측을 게을리 해 엉터리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을 처벌해야 한다.”

한편,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지역사회의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는 칼랑 의장은 “평신도 지도자로서 교회에 당부나 바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교회는 신자가,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진리를 말할 때엔 위험이 뒤따르지만 교회가 침묵하기보다 명확한 지침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끝으로 다카코 씨는 지난 9월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와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일본 현지 단체와 공동으로 양국의 탈핵운동 현황을 공유하고 연대 방안을 모색했던 한일 탈핵 모임을 거론하며, “더 활발한 교류로 서로 배우며 연대하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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