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 산책나온 시]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끝물.

뒤돌아보는 내 시야는 온통 뿌옇게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도, 기억에 남을 일도 없다.

그저 우물안 개구리처럼 종종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

 

나름으로는

열심히 사노라 했어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없이

생채기 같은 흠집만 수두룩 하다.

 

하지만...

정말 난 올 한해 그저 쓰잘데없이 시간만 낭비한 것일까?

다시 자문해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난 좀더 참을성이 늘고 분별력도 생긴 것 같다.

내 힘이 미치지 못할 곳에 더이상 마음이 가지 않고

또 누군가 미워지다가도 금새 그럴 수 밖에 없는,

그 입장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긍휼과 연민이 찾아들기도 한다.

밉다거나 서운하다는 생각 또는 감정이 올라와도

내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걸 어느날 알아채고

아... 그것이 얼마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뿐이랴,

그래도 나는 착한과에 속한 줄 알았는데 내 것 챙기기에 바쁜 얄미운 내 모습도 보이고

남의 탓하기에 재빠른 내 비겁함도 보인다.

이 볼 수 있다는 것만도 어딘가..라고 나는 스스로 대견하여 감탄을 보냈다

앵돌아지면 끝끝내 말을 끊어버리던 내 고집도 좀 순해지고

가끔은 슬며시 먼저 말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이 한해를 결코 헛되게 보낸 건 아니다.

허락해 주신 세월만치.. 때깔나게 이루어낸 건 없어도

나는 생명의 손길이 나를 어루만지도록 내어놓고

그 숨결 아래서 조금은 자라고 살도 오른 것 같다.

 

나는 바르게 살고 싶기는 하지만 늘 옳을 수는 없는 내 자신을 인정한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문득문득 찾아드는 내 안의 질문에 얼른 답하지 못하고 잠을 설치기도 한다.

도대체 한해를 시작하며 늘어놓은 그 많은 결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어이없고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갈 수 있으니

돌아 나올 수 있으니

다시 걸을 수 있으니,

나에게는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있고

여전히 길 위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배울 기회가 있으니..

 

그러니 괜찮다

오직 감사할 뿐!!!!

 

 

조희선/ 시인,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 시집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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