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에서 철거민 위한 길거리 성탄미사 봉헌

 

12월 25일 오전 11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이강서 신부)와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주최로 왕십리1동 새마을금고 앞에서 300여명의 신자와 철거민들, 그리고 빈민사목위원회 소속 사제 6명과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 성탄미사를 올렸다.

얼굴을 에이는 찬바람과 추위 가운데 길거리성탄미사를 시작하며, 주례사제인 이강서 신부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자"며 미사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이어 미사 중에 임용환 신부(삼양동 선교본당)는 “추위만이, 경제적 한파만이 우리를 춥게 만들지 않고 ...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우리를 춥게 만든다”면서 "예수성탄의 기쁨과 추위를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또한 “예수께서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오신 것처럼 슬픔 중에 기뻐하며 고통 중에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주택의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며 “주택해결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관심과 사랑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쪽짜리 성탄을 보내는 것”이라고 정부와 사회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메세지를 전달하였다.

미사를 마치기 전, 이강서 신부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이 더 이상 벌레 대접 받지 않고, 짐짝 취급받지 않고, 사람이 하느님을 대하듯 철거민들이 하느님 대접을 받는 때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고 하며, “2000년 전 예수님도 집이 없어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인데, 사람은 빠지고 집만 남는 주택정책은 걷어치우라”고 현재의 뉴타운개발정책을 성토하였다.

미사 전후에, 세입자대책위원회(세대위)에서는 왕십리뉴타운지역의 현실을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왕십리뉴타운지역은 전체 4,572세대 중 세입자가 3,620세대로, 지역주민의 85%가 세입자인 상황이다. 이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는 전체의 약 18%로, 단 903세대만이 공급받을 예정인 상황이며, 또한 영세한 가옥주들도 막대한 추가부담금을 감당하지 못해 수십 년 살아온 집을 내주며 가옥주에서 세입자의 신세로 전락하게 만드는 ‘재개발유랑민’정책에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오늘 성탄미사에 와서 기도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오랫동안 살았던 이 왕십리에서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얻고자 한다”고 하였다.

미사 후에는 세대위 측에서 마련한 떡국을 점심으로 함께 나누었다. 길거리 미사에서 찬 바람에 코끝이 얼고 손발이 곱았지만, 슬픔 중에 기뻐하고 고통 중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배은주/지금여기 서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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