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주민 동의 없이 진행…교육, 주거권 침해 심각
성심여중고 학부모 대책위 “행정소송 진행할 것”

▲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봉헌된 ‘화상도박경마장 철회를 촉구하는 미사’ ⓒ정현진 기자

“우리의 목표는 학교 앞, 주거지 앞에 화상도박경마장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용산구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도 도박중독자를 양산하는 화상도박경마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며, 기존 시설의 축소, 폐지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용산구 화상도박경마장 입점 저지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5월부터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자리 잡은 화상도박경마장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경마장 입점 철회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학습권과 교육권, 그리고 주민들의 동의 없는 진행 등 도박경마장 사업 과정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건물이 완공된 지난 5월에서야 반대운동에 나선 것은 당시까지 한국마사회와 용산구청이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과정 없이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 자리에 화상도박경마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신축 건물은 지하 7층, 지상 18층으로 총 25층 규모다. 한국마사회는 이 신축 건물이 “현재 용산역 앞 화상경마장과 같은 2700여 명 수용 규모이고 좌석제이기 때문에 확장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용산구 화상도박경마장, 성심여중고와 불과 230m 거리
“교육, 주거환경 해치는 화상도박경마장은 반드시 철회해야”

현재 용산구 한강로3가에 자리 잡은 화상도박경마장은 지하 7층, 지상 18층, 연면적 18,361㎡ 규모다. 이 도박장 가까이에는 주택 밀집 지역은 물론, 남정초, 원효초, 배문중고, 성심여중고 등 학교들이 있다. 특히 성심여중고의 경우 도박장으로부터 거리가 약 230m, 학생들의 통학 길에 위치해 있으며, 도박장에서 학교까지 5~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성심여중고 학부모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정방 씨는 “학교 교실에서 도박장이 보일 뿐만 아니라, 학교 쪽으로 주택, 상점이 형성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상황이라, 환경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박장이 들어설 경우, 이용자들을 위한 유흥시설 등 교육환경을 해칠 만한 시설이 따라서 들어오는 이른바 ‘기차 효과’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마사회 측은 도박장이 금요일과 주말에 열리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학교 측은 평일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이 이뤄질 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타 학교 학생들이 방문한다고 설명하면서, “마사회와 용산구청은 학교보건법 상 위해시설 거리 규정 200m를 벗어났으니 법적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육환경 조성에 그 거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성심여고 교장 김율옥 수녀(성심수녀회)는 화상도박경마장이 현재 신축된 도박장 건물 바로 옆 건물에서 영업을 할 때의 이야기를 주민들로부터 들었다면서, “당시는 2층 규모였는데도 주말이 되면 오토바이가 몰려오고, 취객과 성적인 문제까지 발생해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닐 환경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김 수녀는 “화상도박경마장은 그 자체로 문제가 심각하다. 그냥 두면 반드시 썩는 생선과 같다”면서, 근본적으로 화상도박경마장은 들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학교와 학부모 대책위원회의 기본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지역은 성심여중고 내에 남아 있는 옛 용산신학교 성당은 물론, 인근 새남터, 애오개 등 이른바 성지순례 벨트가 형성되는 지역이기도 하다”면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 성심여고 교장실. 교장 김율옥 수녀와 학부모들이 화상경마도박장 문제를 두고 논의 중이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서명운동, 1인 시위, 국정감사 증인 참석 등 도박장 사업 철회를 위해 다각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정현진 기자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사업 절차상 문제 심각
이전 규정에 대한 임의적 해석으로 주민 동의 구하지 않아

교육과 주거환경 외에도 화상경마장 입점을 둘러싼 문제는 또 있다. 이전 승인 절차상의 문제다. 우선 화상경마장 입점에 대해 주민들은 지난 5월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에 대해 주민 동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화상도박경마장 이전과 관련된 ‘마사회 장외 발매소 개설 승인과 절차 및 요건에 대한 지침’은 새로운 장외 발매소(화상도박경마장)가 신설될 경우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지만, 동일 지역 이전일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고 있으며,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은 이 규정을 적용했다.

그러나 ‘동일 지역 이전’은 원래 시설로부터 200m 이내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다. 이 문제는 지난 10월 24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한국마사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여야 의원들은 마사회가 주민 동의 지침을 임의로 해석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라면서, “마사회가 경마장 이전을 진지하게 재검토하고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용산구 주민 반대 여론 확산…24만여 명 중 약 15만 명 서명 참여해
국정감사에서도 질타 대상, “갈등조정협의회 구성해야”

성심여중고 학부모 대책위원회 임채원 씨는 “기본적으로 도박장은 확장하면 안 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원칙에 따르면 축소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2009년부터 규모를 늘리고 있다”면서 “현재 마권 장외 발매소(화상도박경마장) 수익이 전체 마사회 수익의 73%에 달한다. 마사회 세금은 우리나라에서 삼성과 현대 다음 규모”라고 설명했다.

주민 대책위원회와 학부모 대책위의 활동으로 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지난 7월 말 용산구청은 대책위의 요청으로 ‘화상도박경마장의 서울 외곽 이전 요구안’으로 주민 서명을 받아, 10만여 명이 참여했다. 성심여중고 학부모 대책위원회가 지난 5월부터 진행한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한 학생, 학부모, 인근 성당 신자와 수도회 참여까지 더하면 용산구 내 반대 서명에 동참한 인구는 15만여 명. 용산구 전체 인구 24만여 명 중 참여자 연령대를 고려하면 성인의 대다수가 화상도박경마장에 반대하는 셈이다.

주민 대책위를 비롯한 반대 주민들은 화상도박경마장 이전 반대는 물론 운영계획 철회를 요구하면서, 신축 건물을 마사회가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경마도박장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성심여중고 학부모 대책위 임채원 씨는 “반대 여론을 확인했고, 공적인 이슈로 드러난 만큼 정부는 공공기관 갈등 예방 조정법(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에 따라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해 당사자인 농림부, 마사회, 주민 대책위가 참여하고, 구청과 국회, 서울시가 조정관으로 나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충분히 여론화가 됐고, 서울시장과 국회의원까지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11월 중 공식적인 대화 창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대책위원회는 앞으로 화상도박경마장 철회를 위한 행정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다.

▲ 성심여고 본관 앞에서 바라본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왼쪽 파란건물). 이 건물은 교실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거리는 학교에서 5~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정현진 기자

건축 심의 과정과 용도 변경 과정 등 문제 제기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원칙에도 전면 위배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은 한국마사회가 지난 2009년 11월 시행사와 ‘용산장외 신축 사업 매매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마사회는 2010년 2월 28일 농림부에 용산역에 있는 마권 장외 발매소를 현 위치로 옮기는 이전 승인을 신청했고, 농림부가 3월 10일 이를 승인했다.

용산구청은 5월 10일 도시계획위원회를 통해 이를 심의해 통과시키고, 6월 15일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화시켜, 6월 30일 건축 하가가 완료됐다. 그러나 이때의 허가 내용은 업무, 근린생활시설에 대한 것이었으며, 2011년 9월 용산구청은 모든 부서의 적합 판정 하에 마권발매소용(문화 및 집회시설)으로 용도 변경을 허가했다. 2012년 12월 28일 확장 이전지 건물과 토지가 마사회로 소유권 이전됐다. 현재 신축 건물은 화상도박경마장 영업 준비를 모두 갖췄지만 한 달째 운영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 대책위는 이 모든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를 지적하면서, 화상도박경마장 이전 승인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 대책위는 그 근거로 우선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확장 이전은 2008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에 전면 위배된다는 점을 들었다. 사감위는 당시 종합계획에서 마권 장외 발매소(화상도박경마장) 축소와 생활 밀집 지역으로부터의 격리, 외곽 이전 등을 원칙으로 발표했다.

“본장 중심의 운영체제로 전환하고, 도심지역의 장외 매장을 단계적으로 외곽 이전 또는 축소(2009년부터)하며, 장외매장 매출이 전체 매출의 50%를 넘지 않는 구조로 전환(2013년까지)한다.”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 중)

대책위는 “이 계획에 따르면 현재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은 규모 상으로 명백한 확장 이전이며, 교육과 주거 밀집 지역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의 거리로 근접한 이전”이라면서 “당시 농림부의 이전 승인은 반드시 사감위와 협의를 통해 원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업 철회 요청의 두 번째 근거는 2012년 서초구 화상도박경마장 건축 허가 취소에 대한 행정법원의 판례다. 2012년 5월 행정법원은 “지하철 환승역 근처에 도박장을 설치하는 것은 국민의 도박 위험성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며, 건설 예정지가 초등학교에서 불과 200여 m 떨어져 부정적 파급 효과가 크다”며, 공익 침해를 이유로 한 건축허가 취소는 합당하다고 판결했다. 주민 대책위는 성심여중고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문화시설이 동일 지역에 위치한 점을 들며, 서초구의 판례는 현재 용산구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민 대책위는 “도박경마장은 마사회가 말하는 것처럼 주민 활용 시설이 될 수도 없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도 없는 곳”이라며 “인근 지역의 교육권과 주거권을 망치고, 도박장 이용자들 삶이 파괴되는 것을 통해 어떻게 건강한 지역 문화와 경제적 활로를 구축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대책위는 마사회와 용산구청, 농림축산식품부에 화상도박경마장 사업 즉각 철회와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한편, 사감위와 감사원, 사법기관에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에 대한 감독과 감사, 비리를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민대책위 정방 씨는 “이번 이전은 예전의 건물 임대 운영과 달리,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 힘든 형태다. 이번에 막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면서 “이미 순천과 부천, 서울 서초구에서 화상경마장을 막아낸 전례가 있는 만큼, 포기하지 않고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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