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영등포 구치소에서 가석방된 고동주가 마중나온 가톨릭대학생회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고동주) 


2008년을 지내온 우리들이 ‘쥐’라고 하면 대체로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쥐들은 인간의 눈에 띄게 되면 후다닥 도망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요즘 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너무나 당당하다! 나는 요즘같이 당당한 쥐가 아닌 소심하고 당당하지 못한 쥐의 신세로 1년 2개월을 산 적이 있다. 나의 신념과 종교적 양심을 버리고 군에 입대하여 총을 들 수는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쥐랑 싸우는 감옥생활

구치소에서 두 가지 일을 했었는데, 취사장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과 보안과 건물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두 곳 모두에서 우리는 쥐들과 함께 살았다. 취사장에서는 쥐들은 김치와 온갖 반찬에 양념을 하는 고추장을 파먹고 그 위에 똥을 누었으며, 보안과 건물 지하(청소 시간 이외에는 이곳에서 생활했다.)에서는 아침마다 우리는 밥을 먹는 식탁 위에서 그들의 똥을 치워야 했다. 그래서 종종 쥐들의 세력이 너무 커졌다 싶으면 소탕 작전을 벌여야 할 경우도 생겼다. 암튼 그들은 우리들 눈에 띄기만 하면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런데, 우리도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게 도망을 쳐야하는 경우가 있었다. 보안과 건물에 가끔 소장이나 부소장이 시찰을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죄수복을 입고 양팔에는 노란 청소용 고무장갑을 끼고, 손에는 빗자루나 걸레를 잡고 다니는 우리들은 그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때는 건물 청소도 멈추게 하니 몸이 쉴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 쥐와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니 항상 기분이 더러웠다. 보안과 직원들이 버린 수백, 수천 개의 담배꽁초들과 소변기에 내뱉는 가래침을 볼 때마다 느꼈던 더러움과 역겨움들이 겹쳐지면서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속이 부글거릴 때가 참 많았다.

암튼 내가 그곳에서 때려잡았던 쥐들의 복수인지, 이 정권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줬다. 대체복무제 도입 약속을 백지화 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9월, 가석방으로 출소할 날을 손꼽아가며 들뜬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해주었던 것이 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발표였다. 변함없이 청소를 하기 위해 보안과 건물로 모인 우리에게 부장님 한 분이 우리에게 “너희들도 조만간 감옥에 안 들어오겠구나?” 하며 처음 들었던 대체복무제 도입 소식이었다. 그렇게 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소식을 전해 듣고 기뻐했는데, 곧 정권이 바뀌었고, 도입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 손바닥 뒤집기

정부가 하는 일은 꼭 얍삽한 쥐의 행동 같다.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별 보편적 정례검토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표는 올해 안에 국회에 대체복무도입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국내적으로는 끊임없이 국민들의 여론을 살펴보겠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우리에게 내놓은 손바닥을 살살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석연치 않은 여론조사를 핑계로 손바닥을 완전히 뒤집었다! 병역거부자들과 같은 소수자인권의 문제는 단순히 여론조사만으로 결정을 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대다수 국민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수의 생각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애초부터 소수자들의 생각은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들의 인권도 무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조사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시기와 설문 항목에 따라 찬반여론이 굉장히 다르게 나왔기 때문에 이 한 번의 여론조사로 정부가 약속을 뒤집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정권에게는 국민들과 국제사회에 한 약속의 무게가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 사람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그렇게 떠들썩하게 좋아하면 뭐 하겠는가. 그 나라의 인권의식은 50년 전이나 변함이 없어서, 지금까지 병역거부로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 13,000여 명이 되고, 전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의 90%가 한국에 있는데 말이다.

대체복무제와 관련된 기사의 댓글들은 정신 건강상 보지 않는 것이 좋지만, 가끔 “병역거부자들이 양로원에서 일하는 게 뭐가 힘드냐. 그런 놈들은 감옥에 가둬놓고 일하게 해야 한다.”는 글을 보게 된다. 그래, 감옥에 가둬놓고 일 시켜도 좋으니 전과자의 신분이라도 안 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국제사회에서는 죄가 되지 않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1년 이상의 징역형이라는 중범죄가 되는 것인가? 예전에, 한국계 독일인 청년이 우리나라에서 평화봉사활동으로 대체복무제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의 밝은 표정에서 나는 큰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감옥 안에서라도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쥐같이 숨으면서 일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당당히 대체복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재소자들이라고 쥐같이 숨어야 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기대하며 재판이 미뤄진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이 다시 진행되고, 수감되기 시작하면 전국의 감옥에 갇히는 병역거부자들이 금방 1,000여 명이 넘을 것이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성탄 전야에 이런 반평화적인 선물을 안겨주니, 앞으로 이 정권이 수많은 가난한 이들의 평화, 농민의 평화, 여성의 평화, 장애인의 평화, 강과 산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들의 평화를 빼앗는데 때를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가 자주 이야기하는 게 ‘속도’라는 데, 벌써 자신들이 얻어낸 힘을 확실히 이용하려는 것 같다. 지난 1년은 ‘촛불’에 밀려 살짝 말을 돌리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돌파할 기세다.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수많은 아기들을 살해한 헤로데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지, 성찰을 해봤으면 좋겠는데 들을 귀가 있을지 모르겠다.

 

* 고동주는 가톨릭대학교를 다니다가  2005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으며, 일년여 동안 영등포구치소에서 복역하고 지난 2007년 9월 28일 가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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