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신학 오디세이아]

가을의 끝자락으로 달려갈 즈음이면, 미국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할로윈이 온다. 늙은 호박의 속을 파내고 촛불을 켜서 호박 등을 만들어 대문 앞에 내어놓고, 유령, 마귀할멈, 프랑켄슈타인 등 놀랍고 괴기스런 장식을 한 달 내내 한다.

수녀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도원 이곳저곳에 유령들이 걸려있다. 처음에 미국에 와서는 그 풍속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미국 사회는 죽음이나 조상에 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TV 드라마 말고는, 실생활에서 귀신이나 유령 같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그렇게 보면 할로윈은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넘어,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죽음이나 유령들을 생각하고, 또 기억하는 특별한 시간인 것 같다.

나는 이번 할로윈을 국제영적지도자위원회 모임 일정 덕분에 산타페에서 지냈다. 산타페는 한때 멕시코였던 지역으로 미국 인디언, 스페인, 멕시코, 그리고 여러 유럽의 문화가 고산 사막 지대라는 지리적 요건과 함께 어우러져 아주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특히 ‘죽은 자들의 날’이 있는 11월에는 여러 가지 문화행사와 죽음과 주검을 그린 예술 작품들이 거리를 뒤덮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러운 지역이다. 멕시코 혁명 때는 잘 사는 사람에 대한 경멸의 표현으로, 잘 차려 입은 인형에 해골 얼굴을 만들어 거리에 진열했는데, 현재는 모두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한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 혼령들의 모습을 담은 인형들이 산타페의 거리를 메우고 있다. ⓒ박정은

내가 참석한 모임에서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자기 나라의 할로윈, 혹은 ‘죽은 자들의 날’의 예절에 관해 나누었는데, 호주에서 온 키티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들에 비슷한 할로윈 풍습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미국인 티베트 불교 스님 쌀리가 들려준 말은, 그녀가 수행하는 절이 있는 아리랜드도 겨울이 시작되는 10월의 마지막 날에 한 해의 수확을 생각하고, 하지 못한 것들을 반성하는 예절이 있다며, 이 시기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아주 얇아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거리를 오갈 수 있는 그런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멕시코에서는 10월의 마지막 날을 ‘죽은 자들의 날(El Día de los Muertos)’이라고 하여 하루 종일 축제로 아주 재미있게 보낸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인류는 보편적으로 늦은 가을, 겨울로 들어가는 이 시기에 죽음을 생각하고, 특히 10월을 보내는 마지막 밤을, 죽음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래서 죽은 자들을 만나는 날로, 혹은 죽은 자도 우리와 함께 지내는 날로 생각한 것 같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함께 걸어 다니는 산타페의 죽은 자들의 날. 싸늘한 하늘엔 가느다란 달이 외롭게 걸려 있다.

어느 시인은 이야기했다. 11월은 기억할 것마저 아무것도 없는 달(No-vemeber)이라고. 싸늘한 바람에 잎들을 다 떨구어 내고 나신으로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 11월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사는 오클랜드는 그런 폐부를 찌르는 서늘함이 없는데, 우연히도 나는 산타페의 낮선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삶과 죽음 사이의 얇아진 간격을 음미했다.

그러나 내겐, 누가 뭐래도 한국의 위령 성월이 가장 아름답고, 그 의미가 깊은 것 같다. 혜화동 거리에 하루 종일 떨어지는 은행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했었다. 특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위령 성월이 ‘모든 성인 대축일’로 시작된다는 거다. 이름 없는 수많은 성인들의 통공 속에서, 삶과 죽음의 신비 속으로 걸어가자는 초대니까 말이다. 또한 우리네 정서에 위령 성월은 돌아가신 부모님, 그리고 조상님께 미사를 올리는 정성을 빼놓을 수 없다. 위령의 날이면 미사를 세 번 드리곤 했다.

죽음에 관한 생각들은 사실 성소와 관련이 깊다. 나도 청년기의 어느 늦가을, 혜화동 청년회관에서 드린 친구들과의 미사에서 영원 앞에 놓인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순간, 생은 단 한 번의 축복임을 깊이 깨달았고, 그때 수도 성소를 결심했었다. 그리고 아무 미련 없이 가볍게 훌훌 떨어지는 나뭇잎들처럼, 나도 가볍게 살다 훌훌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천상병 시인처럼 이 생을 소풍처럼, 그리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내가 본 죽음 중 가장 착한 죽음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몸을 가누기가 힘드셨던 어머니가 불편해진 몸으로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묵주기도와 성경 듣기가 다 였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유품이라고는 스웨터 몇 벌과 성경, 성경 테이프, 기도서, 미사보, 그리고 묵주가 다였다.

우리 형제, 자매들은 유품을 나누어 가졌는데, 나는 엄마의 기도서를 가졌다. 엄마의 낡은 기도서에 유독 손때가 묻은 페이지가 눈에 띄어 펼쳐보니, 한 페이지는 착한 죽음을 위한 기도였고, 다른 한 페이지는 성소를 위한 기도였다. 내가 그나마 수도 성소를 유지하고 사는 건 엄마의 이 기도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죽음을 묵상함은 가장 기본적인 수련이었다. 교회의 성화들을 보면, 사막의 은수자들이 해골을 만지면서 삶의 무상함을 묵상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윤형중 신부님의 <사말의 노래>도 내가 위령 성월에 읽으며 깊이 묵상하고 싶은 책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아니 내가 곧 떠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의 팍팍함이 없어지고 느슨해진다. 아직도 있는지 모르지만, 대구 성직자 묘지에 있던 문구,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Hodie mihi Cras tibi)”가 생각난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르는데, 너무 야박하게 살 것도 없고, 너무 잘난 체하며 살 것도 없는 것 같다. 누구를 너무 싫어하지도 말고, 누구를 너무 애달프게 좋아하지도 말면서, 조금은 담담하게, 연꽃 만나러 가는 마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마음으로, 그러나 할 수 있다면 더 많이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싶다.
 

 
 

박정은 수녀 (소피아)
홀리 네임즈 수녀회.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구하며,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고, 지구화된 세상에서의 이주 문제, 동양 종교의 몸 수행에 관한 책을 써 왔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이며, ‘여성의 원’이라는 피정도 지도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