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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알았으면 김 서방도 냉담 안 했을 텐데[아래로 흘러가는 노래 - 8]

30년 만에 만난 어릴 적 내 친구 연규는 벌써 이마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흔적도 연규의 해맑은 미소와 착한 눈망울을 지우지 못했다. 한눈에도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친구임을 알 수 있었으니까. 교회 학생회에서 만난 연규는 무척 성실하고 활달하게 학생회를 이끌었고 신앙심 또한 돈독했다.

그러기에 연규를 만나서 내가 던진 첫 마디도 “교회 잘 다니지?”였다. 당연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한참 만에 돌아온 연규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응? 뭐, 잘 안 다녀. 처남도 목사고 그렇지만 나는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아.” 무슨 소리냐는 듯이 두 눈이 동그래져 바라보는 나에게 연규가 잔을 건네 온다. “야, 우리 그런 얘기 그만하고 소주나 마시자.”

연규는 딸 셋만 내리 낳던 연규 어머니가 40세에 낳은 늦둥이였다. 이미 연로하신 부모님은 고향으로 내려가시고 연규는 시집간 누나 집에 얹혀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생활에 보태기 위해 연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근처 양복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야간 공고에서 기술을 익혔다. 착하고 부지런한 연규는 인천의 대기업에 취직하여 공장 생활을 하였는데, 결혼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 20년이 넘도록 믿고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지방의 중소기업에 다시 취직했는데, 올 초에는 사내 하청을 떠맡든지 그만두든지 하라는 회사 측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연규의 불만은 이렇게 살아온 자신의 삶과 평생 열심히 다니던 교회가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이나 신자들에게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면, 하느님께 기도하고 인내하라고 했다. 어찌할 줄 몰라 괴로워하는데도 하느님이 더 큰 축복을 주실 터이니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할 뿐이었다. 연규는 고생 끝에 자리를 잡아갔지만, 자신이 어려울 때 교회에서 느낀 서운함과 황당함은 쉽게 가라앉히지 못한 모양이다. 레닌은 ‘사회주의와 종교’*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힘이 있는 자들에게 대항하다가 무력(無力)함을 느낀 민중들은 어쩔 수 없이 저 세상에 대한 믿음을 만들었다. 이것은 옛날 사람들이 자연재해에 저항할 수 없게 되자 신, 악마, 기적 등에 대한 신앙을 만든 것과 같다. 그러므로 평생 일하며 살면서도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겸손하고 인내하도록 가르치며, 저 세상에서의 보상을 생각하라고 그들을 위로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선을 베풀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종교는 자본가나 권력자들의 우위적 삶을 값싸게 정당화시켜주며, 그들에게 천국의 영원한 행복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싼값으로 판매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민중을 위한 아편이다. 종교는 저질 술이다. 이 술을 마시고 힘없는 민중들은 자신들이 인간적 품위에 훨씬 못 미치는 대우를 받으면서도 인간적인 삶을 살게 해달라는 요청을 포기한다.”

* 위 인용문은 G. 하젠휘틀의 <하느님>(바오로딸, 1987)에 실린 것을 필자가 조금 더 쉬운 용어로 바꾸어 옮긴 것이다.

연규에게는 종교가, 레닌이 비판한 것처럼, 영적 독주(毒酒)로 보였던 것일까? 성실하던 교회 청년이 삶의 현장에서 교회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귀가하는 나에게 ‘사회교리학교 안내’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였다. 한국 천주교회의 못자리라는 내포 지역에 1930년대에 세워진 이곳 성당에서 유사 이래 처음 접하는 문구다.

   
▲ 사회교리학교에 참석한 신자들의 모습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자료사진)

한국 교회에 프랑스 신부들의 지도가 시작된 후, 미사 참석과 순교 신앙만 있으면 훌륭한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묵주 알만 돌리던 신자들에게, 19세기 말 레오 13세의 회칙에서부터 시작된 수많은 사회교리의 내용들은 너무나도 생소하고 놀라운 내용이었다. “교회에 이런 가르침이 있었단 말인가?” “우리는 왜 이런 교육을 한 번도 못 받았지?” “신부님들 너무한 것 아니여?” “이런 걸 알았으면 우리 김 서방이 냉담하지 않았지, 쯧쯧.”

성당을 가득 채우며 사회교리학교에 참석한 신자들은 이제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게 되었다는 표정이다. 사실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려 피곤한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그 사이에 방영되는 9시 뉴스가 세상을 보는 창이다.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 힐끗힐끗 쳐다보는 종편 TV나 공짜로 받아보는 재벌 언론의 지침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런 눈과 귀로 선거도 하고 수다도 떤다. 그들에게 냉철하고 정확하게 진실을 판단하는 지성인의 품격을 갖추라고 말하는 건 한마디로 억지다. 대학을 나오고 석 · 박사를 땄어도 시장바닥 수준의 철학과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 대한민국의 딜레마니까. 이런 형편이니 신자들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와 정의를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누가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줄 것인가?

“교회는 ‘이 세상이 참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데 그 존재 가치가 있다. 세상은 온갖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모른다. 이 세상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궁극적으로 신과 인간, 구원과 화(禍)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신앙에 의해서, 교회는 교회의 하느님이 또한 이 세상의 하느님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도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하느님께로 감을 알 수 있다. 같은 하느님이 온 인류와 계약을 맺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죽고 부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찬란한 세상 뿐 아니라 어둡고 비참한 세상도 비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의해서만, 이 세상의 근원과 행로와 목적을, 그 가능성과 한계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이유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것, 널리 이해하고 자유로이 비판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교회가 받은 은혜요 또한 교회의 과제다.” (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에서)

사회교리학교를 통해 그동안 교회가 등한히 해온 과제를 몇 십 년 만에 처음 접하고 나오는데, 본당 활동을 무척 열심히 하는 자동차 정비사 출신 루카 형제가 한마디 한다. “꼭 빨갱이 교육시키는 것 같아.” 공동선이니 보조성이니 하는 낯설고 어려운 용어가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세상이라고 체념하고 회피하던 바른 세상에의 희망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얼마나 교회가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신자들의 교육에 무심했으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교회의 공식 강의조차 빨간색을 칠하게 될까.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한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 한다”는 까마라 주교의 말이 환한 조명 아래 빛나는 성모상 위로 어두운 밤하늘을 헤치고 지나간다.
 

이장섭 (이시도로)
아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주님을 찾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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