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성모병원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성탄미사 열려
지난 12월 24일 강남성모병원에서는 두 개의 각기 다른 미사가 열렸다. 오후 3시에는 병원 로비 밖에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성탄미사’가 열리고, 저녁 7시에는 병원 로비 안에서 병원측 주최로 미사가 봉헌되었다.
3시 미사 전에 로비 바깥에서 제대를 준비하는 동안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강남성모병원에 근무하는 사제와 인사과 직원들이 찾아와 이날 미사 주례를 맡은 호인수 신부에게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최정진 신부(강남성모병원 원목실장)는 “뭔가 잘 못 알고 오신 것 아니냐”고 따졌으며, “성모병원 문제는 종교적인 게 아니라 순전히 법적인 것”이라며 구태여 미사를 하겠다면 말릴 수 없지만, “여기서 미사를 드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고 하시라”고 하였다. 한편 호인수 신부는 “사제가 없어서 미사를 못한다는데 그래서야 되겠느냐”면서 “저는 성모병원 노동자들이 미사를 부탁해서 온 것이고, 사제가 미사를 마다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날 미사는 성모병원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이 해고통지를 받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으며, 성탄절 전날이었다. 성탄전야 미사로 치러진 이날 미사에 앞서 호인수 신부는 “올해로 서품받은 지 32년을 지나는데 성탄절에 이런 한데서 미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겠으나, 왜 이래야 할까,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나 성모병원을 비난하거나 성토할 뜻은 없다”고 밝힌 호 신부는 “미사는 그런 마음으로 드리면 안 되는 것이고, 사용자측이든 노동자들이든 모두가 불쌍하고 괴롭고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만 “하느님께서 더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있고, 덜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는 다만 하늘에 대고 기도하고 부탁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병원 로비 앞 노천에서 열린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성탄미사’는 호인수 신부뿐 아니라 마침 이 자리에 참석한 김영욱 신부(인천교구, 안식년)가 공동으로 집전한 가운데 천주교 신자 및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40여 명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돌바닥에 은박지를 깔고 앉아서 참석하였다. 이날 미사에는 김정식씨가 반주와 노래를 맡아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강론에서 호인수 신부는 사제단 말단조직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전하면서 “성탄절에 정규직으로 복직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전하게 되어 죄스럽고 처량하다”고 하였다. 호신부는 “제일 잘 산다는 강남에 있는, 첨단시설을 갖춘 거대한 병원 앞에서 보니 내 자신이 작고 무력하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일류교회는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마당에서라도 미사를 볼 수 있어서 감지덕지하다”고 하였다.
호 신부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맞이하는 성탄절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하늘 높은 곳에만 눈이 고정되어 발밑을 내려다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다. 발밑은 너무 예의 없고, 무례하고, 골치 아프며, 짜증나는 사람들만 바글바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하늘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땅에 오신 큰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 신부는 “성탄절이란 하늘이 땅이 되신 날”이며, “그렇게 하늘과 땅이 서로 어울려야 살 수 있다는 게 성탄의 참뜻”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 교회는 그저 구유를 화려하게 만들어 놓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만 노래 부르면 되는 줄 안다는 것이다. “이러니 모두가 다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들”이라면서 “제발 함께 손을 잡고 살았으면 좋겠다. 천지가 손을 잡아야 한다. 하늘에만 살면 땅의 사정을 모른다. 그래서 하늘이 부지런히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내가 조금만 지면 된다. 조금만 덜 먹고 조금만 더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된다”고 호소하였다.
미사 후에 해고노동자인 박정화씨는 답례 삼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하여 힘들지만 그 길을 넘어서겠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미사 후 저녁 7시경에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100일 맞이 투쟁문화제가 치러졌으며, 다음날인 25일 성탄절 아침에는 명동성당 앞에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지원대책위원회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탄 미사에 참가하는 신자와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강남성모병원이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순희 대표(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는 “교회가 양심에 따라야”하며, “파견법이 사람을 죽이는 법이라면 그 법을 없애기 위해 실천해야지 오히려 그 법을 악용하는 데 앞장서서는 안 된다”고 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직 탄압에 항의했다.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