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한 망가짐

청명한 가을 아침인데 집안이 소란하다. 학교 갈 준비를 서두르는 딸에게 오늘만은 꼭 방을 치우고 가야한다고 아내가 으름장이다. 매일 하는 주문이지만 여전히 엉망인 방을 보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엄마의 화가 오늘은 쉽게 누그러질 것 같지 않지만 딸은 짐짓 태연한 척 머리손질만 하고 있다.

“얼른 방부터 치워놓고 와서 밥 먹고 가.”

“늦어서 밥 먹을 시간 없어요.”

“매일 그렇잖아. 오늘은 꼭 방 치우고 가야 돼.”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나는 모른 척 지나치다가, 딸이 입고가려고 준비해 둔 옷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철이 이른듯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이럴 때 가죽재킷을 입으면 기분이 딱 그만이다. 그 맛을 알고 그 바쁜 와중에도 딸은 가죽 재킷을 챙겨놓고 모양을 내고 있는데, 기분을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할 따름이다.

전라도로 가는 무궁화열차를 탔다. 가을 들녘 풍광을 보며 가고 싶어서 미리 창가 쪽 좌석을 사두었었다. 추수를 갓 끝낸 들판을 바라보다가 철길 가까이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게 되었다. 군데군데 하얀 구름이 떠있는 가을 하늘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시 「흰 구름」이 절로 떠오른다.


오, 우러러보아요.


흰 구름이 또
잊어버린 아름다운 노래의
가냘픈 멜로디와도 같이
푸른 하늘을 흘러갑니다.

기나긴 방랑 끝에
나그네의 슬픔과 기쁨을
한결같이 맛본 사람이 아니면
저 구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태양과 바다와 바람과 같은
하얗고 정처 없는 것을 사랑합니다.
그것들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들의 벗이며
자매이며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시 「흰 구름」/김정식 번역)


38년 동안 이 시를 가슴에 품고 다니다, 3년 전 가족들과 북유럽 여행 중에 곡이 떠올랐었다. 내가 만든 노래 중 가장 오래 잉태되었던 노래이기도 한 이 노래를 나지막하게 불러보니 내 마음은 어느새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 곁으로 가 있다.


문득 학교에 가 있을 딸이 생각났다. 아침에 언짢았던 기분을 잊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캔드라 입으니 기분 좋아? 힘 내거라. 삶이란 긴 여행 같은 것이란다.”

캔드라는 아침에 챙겨간 가죽재킷의 상품이름이다. 돋보기를 끼고도 시원치 않은 시력으로 어렵사리 찍어 보낸 문자가 채 도착하기도 전인 것 같은데 답이 왔다.

“응간지좔좔이야어키아빠도!!”

맞춤법도 없고 띄어쓰기도 없는 국적불명의 이 말을 독해하자면 이렇다.

“응. 모양새가 그만이야. 오케이. 아빠도 힘내!”

‘간지’란 말은 일본유행어의 '느낌'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써 '폼', '뽀대', ‘멋스러움’, ‘귀티’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10대들 전용 신조어다. 요즘 젊은이들은 멋스러운 것을 ‘간지나다’라고 한다. 이런 문자를 받고 남의 도움 없이 바로 독해를 하려면 평소에 그들의 언어로 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10대들이 50대처럼 말할 수는 없으니 내가 그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하늘에서 땅으로 사람이 되어 내려오셨던 하느님처럼, 마굿간 말구유에 비참한 모습으로 나신 예수처럼, 때로 형편없이 망가지기도 해야 한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늘 두세 가지 언어를 더 사용해야 했다. 영유아용과 초딩용, 중고딩용과 대딩용이 그것이다. 우리 집에 사는 어른들의 말씨가 비교적 고운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말씨도 고운 편이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시대 아이들이다. 학교에서나 밖에서 놀 때는 따로 사용하는 자기들의 언어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언어들을 잘 습득하여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 아이들은 아빠를 늘 친구처럼 대한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잘 누설하지 않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내게는 곧잘 들려준다. 그 덕에 나는 내 나이 또래 어른들이 들으면 까무러칠만한 십대들의 숨겨진 비화를 많이 알고 있다. 우리 집에 사는 내 친구들이 우정을 믿고 밀고해준 것들이다.



다시 캔드라 얘기를 하고 싶다. 지난여름 미국과 캐나다 초청강의에 갔을 때, 우리 집 두 딸들이 아빠에게 문자(국제로밍)와 이메일로 간지날만한 물건들을 주문했었다. 막내인 중딩이는 나이키라는 메이커 운동화가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값이 낮다는 것을 인터넷검색으로 알아내고는, 이런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아빠. 내 평생소원이니 나이키 신발에다 발 한 번 넣어 봅세다.”

마침 곁에서 이걸 본 지인께서 아이의 재치 있는 표현에 감동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그리 귀한 물건도 아니라면서, 몇 군데 매장을 뒤져서 막내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다. 대학교 1학년인 언니가 바라는 것은 미국메이커인 애버크롬비에서 나온 캔드라라는 가죽 재킷이었다. 미국에서도 날씬한 백인 젊은이들만을 고객으로 겨냥한 이 상품은 흑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십대 고객들도 특수한 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정신을 힐난하며 불매운동 싸이트 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애버크롬비는 돈만 벌면 된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고, 소비계층의 구매 욕구를 잘 충동하여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런 내용이 아니라도 나는 미국 제품이라면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다.

너무 값이 높아 왠만한 매장에는 진열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내가 초청되었던 몇 개의 큰 도시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캔드라를 뉴욕 맨하탄 매장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보통 재킷의 10 배에 달하는 값을 지불하면서 샀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다’라는 말도 있지만, 내가 아니라 내 딸이 입고 싶다지 않는가. 더구나 날씬하지 않으면 줘도 못 입는데, 내 아이는 입을 수 있다지 않는가.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새 옷과 새 신발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늘 어디선가 얻어오거나 주워온 것들이었다. 때로 잘 맞지 않을 때도 있고 모양이 마음에 안들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인 줄 알고 살아온 애들이다. 그런 애들이 어쩌다 한 번 간지나는 옷이나 신발을 원한다면, 기꺼이 도와주고 싶다. 군에 가 있는 큰 애가 초딩 5학년 때 내게 간절하게 부탁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빠. 딱 한 번만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싶어. 좋은 신발이 아니라도 괜찮아. 한 번만 내 발에 맞는 걸 신어보고, 그 다음에는 다시 헌 신발을 신어도 좋아.”

“이삭아. 지금까지는 신발이 안 맞았었니?”

“응. 늘 조금씩 크거나 작았어.”

그래서 함께 동네 매장에 가서 메이커도 확실치 않은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었더니, 곱게 끈을 맨 채로 이틀 밤을 신지 않고 머리맡에 두고 잤다. 그리고 그 후로도 며칠 동안은 신고 나서 바닥을 닦아 놓았었다.

 

▲ 2005년 가족여행중 아이들의 헤어아트 작품 - 스위스 루쩨른

 

 

 

 

 

 

 

이런 아이들의 심성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망가지고 싶었다. 미국에서 옷이나 신발 따위를 사들고 왔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초청지에서 마다 ‘애버크롬비 매장에 가서, 캔드라를 꼭 사가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는 나를 보며, 많은 분들이 의아해했다. 그 동안 알아왔던, 혹은 알려졌던 김정식답지 않은 모습에 내심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그것이 변절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나는 꼭 사야했기에, 미국을 발칵 뒤집고 애버크롬비 싸이트를 이 잡듯이 뒤졌으며, 회사에 전화까지 몇 차례 하는 소동 끝에 마침내 간지나는 캔드라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소통이라는 거룩한 순교의 대가로 오늘 받은 문자가 바로 이것이다.

“응간지좔좔이야어키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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