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화 이야기]


나는 지금 강원도 깊은 산골에 와 있다. 본래 오늘 저녁에 돌아갈 예정이라서 느긋하게 있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이렇게 급히 산속에서 인터넷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곳은 은수자들이 사는 공동체이다. 이곳의 수도자는 아무런 경계 없이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어쩌다 들른 나그네인데도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생각하고 편안하게 맞아주시어 이곳에 머물고 있다. 우연이지만 이렇게 연말에 들르니 저절로 한해를 정리하는 피정이 된다.

성찰해보니 올 한해도 살지도 않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 이제는 사는 것만 말하고 살 나이인데 아직도 입만 살아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내년에는 덜 그래야 할 텐데... 이곳에 와서 이분들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참 많은 것에 부질없이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며 살아야 할 시기이고 또 그럴 나이인데 아직도 중심이 잡히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철이 덜 들었다. 내년에는 집중할 것에 집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올 한 해 교회 살이를 돌이켜 보니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외형적인 활동이 더 화려해졌고 영역도 더 넓어졌는데 실속은 더 없어진 것 같다. 내년에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울 것이 예상되는데 교회가 이런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하다. 다른 여러 활동들에 가려 어려운 이들의 소식과 모습이 묻혀 버리고, 내년에 오게 될 여러 난관들을 칠팝십년대 만큼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혹시나 어려운 이웃에게는 돈으로 때우고, 산천을 다 파헤치겠다고 난리인데 뒷짐만 지고 있으면 어떡하나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런 염려들이 기우여야 할 텐데...

이곳에 있어보니 남 덕에 사는 것이 너무 많고, 내가 누리는 자유와 여유가 남의 시간과 자유를 빼앗은 것이라는 것을 가장 많이 느끼게 된다. 산중에서 하룻밤을 따뜻하게 지내는 것도 지난 가을 이 은수자들이 고생하여 나무를 해 놓은 덕이고,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분들이 이 산중에 들어와 생존의 기술을 터득한 덕이다. 밥상에 놓인 것들도 다들 산에서 난 것인데 역시 봄부터 부지런히 겨울을 준비한 덕이다. 생활의 모든 것을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는 이 분들이 누리는 자유가 참된 자유인데,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이분들의 삶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사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에게 기대어 살다보면 개인으로나 교회로나 정직함, 성실함, 남을 진심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남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기도 실천하기도 어렵다. 점점 삶의 현실과 유리되어 남의 노력 위에 올라서서 공허한 소리를 하기는 나나 교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자들이 흘린 땀의 소중함을 알고 섬길 줄 아는 교회, 그리고 가족들이 희생하며 허락해준 시간을 값진 것으로 살려내는 나 자신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부디 소망만 하지 않고 몸소 살며 사는 것만 말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독자 여러분들도 좋은 몫을 이뤄가는 한 해 되시길 빌어드린다.

박문수/ 프란치스코,  가톨릭대학 문화영성대학원 초빙교수, 평신도 신학자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