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밴드 ‘푼돈들’의 로맨스 조

“연기 같은 존재요.”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겠냐고 묻자, 로맨스 조는 이렇게 답했다.

연기. 눈에 보일 듯 말 듯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 나타났다 싶으면 이내 흩어져 사라지고 마는. 정의를 시도한 건 명확하고 분명해지기 위해서인데, 더 희미해지고 말았다. 로맨스 조(본명 조호연, 세례명 야고보)는 규정되길 원하지 않았다.

▲ 로맨스 조 ⓒ문양효숙 기자

본인에게 물었던 건, 그의 삶의 영역이 너무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로맨스 조는 10년차 밴드 ‘푼돈들’의 리더로 알려져 있다. ‘절대 우리 노래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어쩌다 마주친 그대’, ‘노래가 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등 옛 노래를 발굴해 부르는 ‘푼돈들’은 두물머리,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문화제, 콜트콜텍 문화제 등 현장의 무대에서 따뜻하고도 흥겨운 노래를 선사해 왔다.

한편 그는 카페 ‘별꼴’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을 고민하는 인테리어 모임 ‘별거 아니다’의 멤버이기도 하다. 버려진 자재를 주워 뚝딱뚝딱 빈티지 풍의 멋진 가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어떤 날엔 유랑 농악단 단원으로 신나게 북을 치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은 서울 방학동 도깨비 시장 입구에 자리 잡은 도깨비방의 공방지기로 산다.

“‘당신은 누구인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란 질문이고, 그건 장르를 묻는 건데, 한 가지로 표현하기가 곤란하네요. 그냥, 모든 명확한 것들을 흐리게 만드는 연기가 떠올라요.”
“경계가 없는?”
“네. 일종의 뉘앙스 정도의 사람이요. 그렇게 되고 싶어 해 왔고,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회에서 말하는 ‘안정된 삶의 형태’는 아닐지 모르겠다. 경제적으로나, 자신을 규정하는 방법에서나. 하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삶의 문제를 한 가지 시선과 방법으로는 해석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소위,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판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고 풀어내는 방법에 부족함을 느꼈다고.

“재주가 많고 생각이 번득이는 사람들을 보면, 각각의 재주로 자기가 관심 있는 더 큰 관계망에 들어가요. 자기 재주 하나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재주 자체가 아니라 그 재주를 가지고 만나는 사회가 그의 관심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려면, 내 세계와 다른 세계가 만나려면 동기와 방식이 필요한데, 그 방식에 재주가 활용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는 “음악이든 글이든 그것 자체가 아니라 그 재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중요하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가치관, 혹은 ‘함께 살기 위해 외치는 그 무엇’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다. 그가 하나의 영역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그는 자신이 ‘주변의 요구에 영향을 받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두물머리가 농사짓는 땅으로 남길 바랐기 때문에 함께 농사지으며 싸웠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 사진이면 사진을 찍고, 노래면 ‘푼돈들’의 노래를 들려줬다. 자신이 사는 마을이 좀 더 재밌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마을 한 켠에서 가구를 만들고 그 과정을 기록했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대에는 그도 ‘사진작가 조호연’만의 세계에 골몰했었다. 그는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었다고 한다. 그에게 ‘낯설다’는 ‘나에게 해석되지 않는다’라는 의미였다.

“예를 들면, 한 아주머니가 다리 난간에서 개천을 내려다보는 뒷모습 같은 거였죠. 공허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어우러져서 순간적으로 반응했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밤길을 걷다가 문득 접하는 낯선 공기와 낯선 풍경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가 소위 ‘공공예술(Public Art)’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충남 연기군 남면 종천리였다. 당시 종천리는 세종시 건설로 통째로 없어질 상황에 놓인 마을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무덤이 옮겨져 나간 자리는 그에게 매우 낯설었고, 그는 그 풍경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전에는 일정 공간에 매이지 않는 낯선 풍경을 수집했다면, 이후부터 그의 시선은 마을 안의 낯선 풍경에 머물렀다.

▲ 로맨스 조가 참여한 동네 예술가 프로젝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동네 탐정단, 꽃밭주택 벽화, 움직이는 공작소 작품과 작업수레 (사진 제공 / 공화국리라)

2008년 망원동에서 ‘동네 탐정단’ 활동을 할 때에도 이런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동네 탐정단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과 성산동 일대에서 진행된 동네 예술가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로맨스 조는 오래된 주택의 회색 벽면에 벽화를 그려 ‘꽃밭주택’이라는 새 이름을 주고, 동네 공터에서 재활용 목공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동네 탐정단은 마을 안에서 수상하고 낯선 풍경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활동이었다.

“자기 발로 찾아온 동네 아이들이랑 탐정단을 꾸려서 탐정의 시선으로 마을을 탐사했어요. 해석되지 않는 사건의 잔해들, 재미난 풍경을 발견하고 추적했죠. 도무지 왜 버려졌는지 알 수 없는 새 신발이 길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든지, 바닥에 그려진 낙서 중에 알 수 없는 기호 같은 것들 이라든지.”

익숙한 공간에서 발견하는 불가사의는 발견하는 이들도, 발견되는 마을도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 모든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동네 예술가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책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일상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눈을 감고 걸어도 훤한 집으로 가는 길도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보면, 황당한 X-파일 투성이다.” (<동네 예술가 프로젝트 2007-2008>, 공화국리라, 2009)

흔히 예술을 하는 이들이 자신의 결과물에 마음을 쏟는 것과 달리, 그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록에는 주관과 시선이 담기기 때문에, 그에게는 기록 자체가 창작이고 예술이다.

“망원동에서 길거리 목공소를 하면서 주민들과 버려진 가구를 재활용해서 의자를 만들었어요. 일명 ‘노인을 위한 벤치는 없다’라는 프로젝트였죠. 저는 마을에 있는 그 벤치 하나가 어느 거장의 거대한 벽화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으니 두고두고 나눌 이야기도 많지 않겠어요?”

그는 멋진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것처럼 준비하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웠다고, 그러니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고 했다. 흔히 사람들은 결국 남는 건 눈에 보이는 최종적 결과물이라 여기지만, 정말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움은 그것에 얽힌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로맨스 조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깨비방 한쪽 창에는 수세미, 손지갑, 머리핀, 비누 등 다양한 수제품들이 칸칸이 전시돼 있었다. 이 공간의 이름은 ‘창 가게’. 자세히 보면 각각 간판도 달려있다. 한 공간 당 월 3,000원의 임대료를 내는 이 작은 가게도 로맨스 조가 제안했다.

▲ 서울 방학동 도깨비방의 ‘창 가게’ ⓒ문양효숙 기자

두 개의 빈티지한 테이블이 놓인 카페, 재활용 목공소, 그리고 작은 ‘창 가게’까지 갖춘 이 공간은 사회복지사, 공공예술가, 지역 주민이 참여한 ‘공간재생위원회’가 힘을 모아 만들었다. 버려져 있던 공간을 발굴해 구청에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는 이 과정이 ‘점거와 다름없었다’고 표현했다.

이런 모임은 모두 길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다. 로맨스 조는 노래를 부르던 현장에서, 작은 마을 축제를 하던 시장 한구석에서, 농사를 짓던 작은 텃밭에서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만났다. 그는 “길 위의 공동체가 좋다”고 말한다.

“마을 토박이가 자기 마을에서 나오고, 예술가들은 갤러리와 자기 개인작업장에서 나오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그래야 만날 수 있는 곳이 ‘길’이잖아요. 거기서야말로 대안적 공동체성이 있다고 느껴요. 두물머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대한문이 그런 것처럼.”

그에게 아주 오랜만에 만난 벗에게 묻듯, 사는 건 재미있느냐고 물어본다.

“재미있죠. 그런데 재미만 있는 건 아니에요. 때론 버겁기도 하죠. 들뜨고 가라앉는 게 반복돼요. 명확하게 걷기보다는 흔들흔들 어중간하게 걷는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지요.”
“아니요. 그 지점에서 서 있고 싶어요. 저는.”

불안한 사회에서는 자기 경계선이 명확해야 안정감을 느낀다. 경쟁적 사회에서는 무엇을 하든 전문가가 되라고 요구받는다. 능력과 자기개발로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삶의 본질을 잊는다.

로맨스 조는 그런 경계와 타인의 시선에 기댄 삶을 거부한다. 오히려 ‘어중간함’을 소중히 여기고, 무경계의 삶을 지향한다. 결국 그에게 예술이란,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삶이 다양한 만큼 방식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삶과 연결된 공공의 이슈를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방식과 아이디어가 필요하잖아요. 삶에 민감해질수록 그런 방식을 고안해내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방법이 자기한테 잘 맞고 재미있으면 더 좋겠죠. 그러려면 벽들이 허물어져야 해요. 그림, 음악 등 장르를 확연히 나누어 접근하거나, 예술의 수위를 아주 높게 두고 ‘나는 재능이 없어’, ‘나는 그걸 잘 못해’ 이렇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스펙트럼은 다양하고, 거기서 자기 방식을 찾아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 밴드 ‘푼돈들’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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