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삶과 노래]소통과 쇄신

  

 

 

 

이번 대림절에도 전국 여러 본당에 초청되어 피정강의와 특강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판공성사 이야기다. 대부분의 교우들이 불편해하는 이 교계제도를 사제들 또한 몹시 힘들어했다. 아무리 성사의 참된 뜻을 잘 새겨주어도 고백소에 들어와서는 전혀 모르는 척, 자기 식대로 볼 일만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방법이 동원되고, 경우에 따라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지는 것 같다.

어느 본당신부는 판공성사에 관한 안내를 이렇게 했다.
“우리 본당에서는 공동 참회예절을 갖고, 꼭 필요한 사람들만 성사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교구에서는 가능하면 공동으로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본당 교우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웃 본당에서는 하는데 우리 본당은 왜 안하느냐’고 항의를 하면 서로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본당은 교우수가 너무 많아서 교구의 방침을 따를 수 없기에 그리 편법을 활용하는 것이겠지만, 그 비밀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른 본당의 신부는 이렇게 안내를 했다고 한다.
“판공성사란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고백성사를 봐야한다는 교회법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한 번 이상 성사를 보신 분 중에서 특별하게 성사 볼만한 죄를 짓지 않으신 분은 가능하면 성사를 보지 마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런 분들은 그냥 성사표를 내시면 됩니다. 성사 볼거리도 없으면서 단지 성사표를 내기위해 고백소에 들어와 ‘성사 보러 왔습니다’만 반복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어느 분은 이렇게 했다고 한다.
“신부님께서 웬만하면 성사보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어쩐지 찝찝해서요.”
“아니 제가 언제 웬만하면 보지 말라고 했나요? 꼭 보셔야 할 분은 보시구요. 볼 필요가 없으신 분은 가능하면 보지 말라고 했는데요.” 


 

어느 본당에서는 대림 마지막 주일 교중미사 후에 대림특강을 듣고, 그 이후부터 여섯 분의 사제가 성사를 주기로 계획되었다. 혼잡을 피하기 위해 미사 전부터 성전 입구에서 판공성사 번호표를 미리 나누어 주고 있었다. 특강이 끝나고 성사가 시작되기 전에 본당신부의 안내가 있었다.
“고백소에 들어가시면 뜸 들이지 말고 바로 ‘나의 범한 모든 죄를 전능하신 하느님과 신부께 고백합니다. 고백한지 OO됩니다’라고 말씀하세요. 그 안에서 몇 개월 되었는지 따져보지 마시고 꼭 미리 계산해서 들어오세요. 그리고 죄를 고백하실 때는 가능하면 간결하게 하시구요. 며느리 죄, 남편 죄, 시어머니 죄 이런 거 말구요. 꼭 자기 죄만 간단하게 고백하세요. 고백이 끝나고 나면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하셔야 됩니다. 그걸 기억 못하시는 분은 그냥 ‘이상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세요. 가만히 계시면 안 됩니다. 이걸 빨리빨리 못하시면 오늘 도와주러 오신 신부들께서 무척 힘드십니다.”

이어서 사회자가 여섯 군데의 고백소를 안내해 주었다.
“여러분이 미리 받은 번호표를 잘 보시고 앞에서 불러드리는 대로 가서 줄을 서야 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혹시 번호표 없으면 줄을 서 계셔도 성사 볼 수 없습니다. 각 고백소 앞에서 안내자가 번호표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꼭 번호표를 받으신 분만 줄을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경로우대권'을 받으신 분은 지하에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이윽고 성당 안에서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교우들은 자리에 앉아 번호를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너무 번호가 멀면 나갔다가 다시 오기도 했다. 사회자는 연신 번호를 불러대면서 안내방송을 했다.
“다음은 490번부터 500번 까지 보실 차례입니다. 번호에 해당되는 분들은 고백소 앞으로 가서 줄을 서 주십시오.”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번호표를 받고 부르는 순서대로 줄을 서는 것은 은행이나 관공서를 연상하게 했다. 안내하는 말에서는 성사의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친절과 사랑이 느껴지기보다, 「편의주의식 행정」처럼 여겨졌다. 무엇보다 '경로우대권'이 압권이었다. 연로하신 분들께 편의를 드리려는 의도였다면 가장 가깝고 편안한 자리로 모셔야 맞다. 그러나 우대권을 받은 노인들은 성당에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했고, 계단은 몹시 가파르고 위험해서 젊은 사람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고지식한 신앙을 지닌 노인들께서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노인들의 우스개 고백 내용이 떠오른다.
“어서 죄를 고백하셔요. 가만히 계시지 마시구요.”
“휴~. 이 늙은 것이 뭔 죄가 있겠어요.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죄지요.”

 

  

평화방송에서 진행되는 신앙상담에는 성사에 관한 것도 많은데, 언젠가 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자매의 사연을 들었다. 몬트리올에 있는 딸에게 판공성사표를 보냈고, 딸은 가까운 캐나다 성당에 가서 엄마의 부탁대로 고백성사를 본 다음, 신부께 성사표를 주면서 서명을 요구했다. 서양에는 성사표 제도가 없기에 황당하게 생각한 것은 물론이고, 잘 모르는 일에 결코 서명하지 않는 그들의 삶의 방식대로 서명을 거부했다. 다시 되돌아온 성사표를 받고 상담을 해 온 것이다. 너무 웃다가 진행 담당신부의 상담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우습다. 지구촌에서 판공성사 제도가 있는 곳은 딱 세 나라다. 「우리나라」 「한국」 「대한민국」. 미국에 있는 예수회 어느 신부가 판공성사 얘길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백성사를 억지로 보게 하다니 너무 잔인하지 않아?”

지난 가을 어느 신부께 들었던 성사에 관한 재미난 얘기다. 실제로 있었던 얘기인지 꾸며진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신부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리 예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사람들은 자꾸 나더러 예쁘게 생겨 가지고 잘난 척 하니 얄미워 죽겠다고 하네요. 그러니 저는 가만히 있어도 죄를 짓고 사는 것 아닌가요?”        

“자매님. 이곳은 스스로 지은 죄를 고백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나가셔서 '죄'와 '착각'을 구분하는 일부터 먼저 하셔야겠네요.”
“그래도 자꾸 죄책감이 느껴져서 그러니 보속이라도 주세요.”
“정 그러시다면 큰 죄가 아니니 보속으로 주모경을 한 번 바치시지요.”
“제가 주모경을 잘 모르는데요.”
“그렇다면 성모송을 한 번 하시든지요.”
“자꾸 죄송한데요. 성모송도 모르거든요.”
“자매님께서 알고 있는 기도는 뭔가요?”
“삼종기도요.”
“그럼 그걸 드리면 되겠네요.”
가톨릭신자가 주모경과 성모송을 모른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그걸 따질 수 없었다. 또한 주모경과 성모송을 모른 채 삼종기도를 어찌 드린다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여자를 마지막으로 성사를 마치고 성당 마당으로 나오니 마침 삼종기도 시간이었고, 두 손을 모은 채 성모상 앞에 서 있는 그 여자를 본 순간 궁금증이 더해갔다. 주모경과 성모송을 모른 채 드리는 삼종기도는 어떤 것일까? 그래서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지나가면서 기도 내용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듯 거룩하게 바치는 여자의 기도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뎅~. 뎅~. 뎅~.”

 

사진 고태환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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