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수녀의 이콘 응시]

 

 En Cristo
새해 첫날에는 누가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을 하거나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 그것을 우리는 덕담이라 하는데 바로 말의 보약인 셈이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나 마음으로 힘든 때에 누군가의 말이 처진 어깨에 힘을 주고, 먹지 않아도 기운이 솟게끔 해 준다면 보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 6세기경, 가장 오래된 이콘, 시나이 성 카타리나 수도원, 18" x 34.5"
2009년을 시작하는 새해에 택한 이콘은 바로 시나이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구원자 그리스도이다.
회화적인 기법으로 그려진 상당히 오래된 6세기경의 이콘이다. 언젠가 한번 그려 보아야지 마음만 먹고 있는 이콘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두 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눈은 인성을, 다른 하나의 눈은 신성을 의미한다.
바로 인성과 신성의 두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구원자이시다.
어느 쪽 눈이 인성이고 신성인지는 묵상 중에 바라본다면 그분께서 각자에게 눈빛으로 말씀하시리라!!!

구원자 그리스도의 이 두 눈을 바라보면서 가끔 엉뚱한 기도를 한다.
“나의 나약함을 당신 인성의 눈으로 바라보시어 죄다 용서해주소서. 나의 바램을 당신 신성의 눈으로 꼭! 꼭! 확인하시고 도와주소서.”
사실 이렇게 화살기도를 바치고 나면 혼자 허허거리고 웃는다. 지극히 속 보이는 기도라서가 아니라 철없이 아직도 그분이 삶 안에서 주시는 축복을 모르는 척 슬쩍 넘어가려는 모양새가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왼손엔 복음서를 들고 계시고 다른 한 손은 우리를 향하여 강복을 주시는 손 모양을 하고 계신다. 이 손 모양은 IC, XC. 곧 희랍어로 예수그리스도의 약자를 나타낸다. 예수님이 직접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는 이 이콘 앞에서 몇 사람을 떠올리며 그들도 마음으로 함께 하였다.

어느 날 성당에서 떡국용 떡을 팔 때 몇 개 남았기에 덥석 집어 어려운 학생과 할머니에게 드렸는데 옆에 있던 한 자매님이 그게 마음에 남았던지 며칠 전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며 나에게 봉투를 건넸다. 성탄을 맞이하여 그 동안 두 아들이 모은 저금통을 깨니 약 8만원 가량이었는데, 부부가 아이들의 마음에 일조하여 10만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자매의 말은 살을 에이는 날씨와 달리 마음이 참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아이들이 도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스스로가 이렇게 돈을 모았네요. 그냥 어디에 내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보람 있을 것 같아요.”
자녀들이 어진 부모를 닮은 것일까, 착한 자녀들이 부모를 변화 시킨 것일까? 날이 갈수록 성당 봉사에 기쁨조를 하고 있는 가족이다.

선교를 하다 보면 눈물 나도록 감사롭고 감동적인 후원금이 있는가 하면 받고도 석연찮은 후원금이 있다. 또한 별 희한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도움을 주면 그 돈이 어떻게 쓰여 졌는지 세무 조사를 하듯이 묻는가 하면 거액을 주고도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노(老)사제는 적은 액수가 아닌 후원을 십 수년간 하고도 단 한 번도 용처를 묻지 않아 오히려 내가 후원금이 어떻게 쓰여 지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하느님은 내가 행한 선한 일 그 자체를 보시지 어디에 무엇을 얼마만큼 했는지를 따지지 않으실 걸.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행함을 따로 보시지 내가 궁금해야 할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씀은 나의 양심 불을 더욱 밝히게 만들었고 그 뒤로 늘 마음에 담고 누군가 보내온 후원금에 대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혜택을 주는데 게으르지 않으려고 방문도 많이 하였다.

세상에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평생 동안 한 번도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도 없고 도움만 준 사람도 없다. 때로는 거지도 베풀 때가 있고 부자도 도움을 받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그도 인색한 부자와 다를 바 없고, 아무리 부자라도 진정한 나눔을 생활화 한다면 그 또한 가난한 자 일 것이다.

베풀려고 하는 마음, 나누려고 하는 자세, 없는 자를 살피려고 하는 행동을 구원자 그리스도는 강복하시고 축복하신다.

어설픈 기도로 자신만을 챙길 때 그리스도는 인성의 눈으로 내면의 이기심을 질타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측은함이 가득한 신성의 눈빛은 나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그분 사랑의 상징인 복음서로 우리 마음을 이끄신다.

그리스도의 강복으로 시작하는 이 한 해가 모두의 마음에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나날로 새겨졌으면 좋겠다. 나의 수도회 창설자이신 사부( 師父) 방유룡 신부님은 “습관된 선(善)이 곧 덕(德)이다”(선을 자주 행하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덕이 쌓인다는 뜻)라고 말씀하셨다.

지나간 한 해를 후회로 추억하는 것보다 새로운 한 해에 절제된 말과 선행으로 매일의 삶을 확인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스며들어 어느새 덕(德)스러움이 묻어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지 않을까!!!!

새해엔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강복과 더불어 늘 새로운 하루의 축복이 가득하여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의 삶이 되시길...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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