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후쿠시마를 넘어 탈핵으로] ④ 하야시 히사시 신부 인터뷰

<연재 순서>
① 쓰나미보다 거센 방사능 오염 후유증
② [기고] 시바타 기요시 신부 (예수회)
③ 원전 피난민, 누가 그들의 고향을 빼앗아 갔나
④ [인터뷰] 하야시 히사시 신부 (예수회 일본관구 사회사도직위원장)
⑤ 원전 없는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⑥ [인터뷰] 사와무라 가즈요 (핵발전소 필요 없다! 시모노세키 모임 대표)

핵발전에 대한 일본 천주교회의 태도는 후쿠시마 전과 후로 갈린다. 그동안 핵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그쳤던 일본 주교회의는 2011년 11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100㎞ 떨어진 센다이 시(市)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모든 원자력 발전을 지금 당장 폐기할 것”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일본 주교회의는 교회 내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강연과 캠페인을 전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자 지원 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후쿠시마에 피해자 지원센터 두 곳을 마련하고 수도자를 파견해 심리 상담과 재정착 과정을 돕고, 후쿠시마와 주변 지역에는 자원봉사센터 8곳을 열어 피해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천주교 재단 학교와 여러 본당에서는 방학 때 후쿠시마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초대해 마음껏 땅에서 뛰놀고, 수영하고,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러한 일본 천주교회의 움직임 가운데 하야시 히사시 신부가 있다. 예수회 일본관구 사회사도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야시 신부는 지난 9월 예수회 한국관구 인권연대연구센터와 제2회 반핵평화운동 시모노세키 간담회를 개최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했다. 또 지역의 탈핵운동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한편, 그 자신도 교회 안팎에서 탈핵의 절박함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시모노세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노동자센터 2층 상담실에서 하야시 신부를 만났다.

▲ 하야시 히사시 신부 ⓒ한수진 기자

“탈핵운동에서 일본 천주교회는 이제 막 현관에 들어선 단계입니다. 한국 천주교 신자와 수도자, 사제들이 탈핵을 위해 투신하는 모습에 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하야시 신부는 9월 24일부터 3일간 시모노세키 노동자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삼척에서 ‘탈핵 미사’를 봉헌하고, 수도자와 사제들이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는 영상을 보면서, 교회가 가진 힘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일본의 시민운동 진영에선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시작된 핵무기 반대 운동과 1970년대 핵발전소 건설이 급증하면서 시작된 핵발전 반대 운동이 탈핵운동의 양축을 이루며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 그에 비해 천주교에서는 핵 문제와 관련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하야시 신부는 일본의 가톨릭 신자 비율이 0.3%에 불과해 교회의 규모가 작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맞이한 변화의 속도가 아직 더딘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래서 하야시 신부는 한국 교회와 만남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사목하는 한국인 사제들을 만난 것이 특히 더 반가웠다고 한다.

“서로 언어가 통했다면 한국 신부님들과 진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일본에서는 탈핵운동에 관심을 갖는 사제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교회에서도 사제들의 의식이 달라지고 있으니 앞으로 저와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이 조금씩 늘어나겠죠.”

▲ 흙은 비 때문에 방사능 물질이 축적돼 공기 중에서보다 방사능 수치가 훨씬 높다. 일본 천주교회에서는 몇몇 본당들을 중심으로 흙에서 마음껏 놀지 못하는 후쿠시마 유치원생들을 위해 실내 놀이 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시바타 기요시)

한국과 일본, 핵무장의 꿈 버려야 탈핵 이룰 수 있어
핵발전으로 ‘버려지는 사람들’ 편에 서야

일본 교회 내에서 탈핵운동의 지평을 넓히기도 벅찰 텐데, 하야시 신부가 한국과 일본 교회의 ‘연대’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첫 번째 답은 “거리가 가까워서”, 두 번째 답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핵발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것은 전기가 아니라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입니다. 전쟁의 논리로 핵을 바라보고 있으니 강박에 가까운 억지가 생길 수밖에 없죠. 물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있는 두 나라가 핵무장의 꿈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평화를 원한다면, 두 나라가 무력으로 전쟁을 억제하도록 하기보다 대화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두 나라가 연대한다면 이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올해는 교황 요한 23세가 회칙 <지상의 평화>를 선포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하야시 신부는 “회칙이 선포된 데에는 1962년 미국과 소련이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배경이 됐다. 당시 교황 요한 23세는 두 나라가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도록 노력하셨다. 결국 무력 충돌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쪽이 강해서가 아니라, 대화로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가 한국과 일본 교회의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핵발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이다. 하야시 신부는 “원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원발기민(原發棄民, 일본에서는 ‘원전’을 ‘원발’이라 표기한다)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원전에서 일하다 방사선에 피폭된 노동자, 원전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 원전 사고로 건강을 위협받는 사람은 모두 핵발전 때문에 ‘버려진 사람들’[棄民]”이라고 말했다.

하야시 신부는 버려진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그 원인과 대상만 바뀌었을 뿐, 꾸준히 반복되어 왔다고 봤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시모노세키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끌려온 많은 한국인 징용자들이 후쿠오카의 탄광에서 석탄을 캐다 모진 고난 속에 버려졌던 것처럼, 지금은 핵발전을 위해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버려지고 있다.

“원전 문명을 버리고 새로운 에너지로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지금 시대의 ‘탈출기’가 아닐까요? 40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원전으로 버려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을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끝까지 연대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야시 신부는 마음이 급하다. 본래 그는 서두르거나 초조해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핵 문제만큼은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 핵발전소가 세워지면, 미래에는 더 큰 일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부터 1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게 바로 핵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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