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 읽기 - 20장]

야훼께 비옵니다. 우리 임금이 곤경에서 기도하거든, 야곱의 하느님 야훼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지켜주소서.
성소로부터 임금에게 도움을 내리시고, 시온 산에서 임금을 붙들어주소서.
임금이 바치는 예물을 마음에 두시고 드리는 번제를 달게 받아주소서.
임금의 계획을 이루어주시고, 그의 소원 그대로 채워주소서.
임금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 높이 치키리니, 야훼여, 우리 임금의 모든 청원을 들어주소서. 이제는 알았습니다.
야훼께서 기름 부으신 임금에게 승리 주심을, 그 거룩한 하늘에서 그의 기도 들으시고, 오른손 힘차게 뻗어 승리 주심을!
누구는 병거를 믿고 또 누구는 기마를 믿지만, 우리만은 우리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믿사옵니다.
이 사람들은 휘청거려 쓰러지겠지만 우리는 꿋꿋이 선 채 넘어지지 않사옵니다.
야훼여! 우리 임금에게 승리를 주소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들으소서.
(시편 20장)

ⓒ임의진
들으신다는 뜻의 ‘샤마’는 ‘귀담아 들어라’(신명 5,2)는 말씀에서 만났던 바로 그 단어다. “그러나 내 백성은 말을 듣지 않았고”(시편 81,12), “부디 내말을 들어라”(시편 81,9)는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릴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주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신다. 당신의 목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그분은 귀를 토끼처럼 종그리며 낱낱이 들으신다.

달빛이 절룩거리는 거리를 무담시(이유 없이) 걸어보는 시간이다. 가을이 깊고 풀벌레 소리 귓속을 파고드는 이 밤. 그 소리 귀담아 들으면서 가을밤을 느껴본다. 뭍에 올라와 죽을 차비인 거대한 향유고래처럼 헐벗기 전의 가을 숲이 어으어으 소리를 내고 울어대고 있어라. 이 주검 위에 곧 하얀 눈이 봉분처럼 수북이 쌓일 것이다. 죽은 거 같지만 절대 죽지 않은, 소생과 부활의 소식이 봄산 꽃산으로 붉게 불타오를 것이다. 믿어지시는가?

신명기 6장 4절엔 야훼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 야훼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각오가 단단히 담겨 있다. “야훼는 하느님이시다. 우주에 한 분이신 분. 부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 그대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시길…”. 마음이란 ‘레바브카’라 한다. 각오를 담는 그릇이겠다. 믿음을 담는 항아리겠다. 그게 마음이 아니겠는가. 마음이 선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것이고, 부활의 새날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 그림 ‘하늘에서 떨어진 도구들’ 아래 있는 글씨를 언젠가 본 일이 있다. “아, 인간의 고통이여. 단지 돈을 위해 그대는 얼마나 많은 것들의 노예가 되었는가(O miseria umana di quante cose per danari ti fai servo).”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가버렸나. 주님을 지워버린 마음, 주님이 계시지 않는 마음,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마음…. 그 자리에 오로지 돈, 맘몬만을 좇아 살아가는 가여운 군중들이여.

마음의 행방불명, 마음을 찾아야 한다. 한마음으로 주님과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저서 <오체불만족>에서 이렇게 말한다. 입학 초기 왜 손발이 없냐며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담임 교사는 조마조마했는데, 어머니는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태연했다고 한다. 아들이 놀림감이 되고 있는데도 태연한 어머니에게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모자간의 끈끈한 신뢰를 느꼈다고 한다.

하느님이 당장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이 없다고 말하고 그 자리에 ‘대체자, 대리자’를 둔 사람들…. 하느님 대신 우리는 무엇을 대체하고 있는가. 구약학자 김정준 목사는 이 시편의 해석에 “세상은 군사력, 물질적인 부요를 의지한다. 그런 나라들은 멸망하고 만다. 야훼 하느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일어서고 승리한다”고 적었다.

군사력, 물질적인 부요가 요새 세상의 달려갈 깃발인 모양이다. 하지만 모자간의 끈끈한 신뢰처럼, 우리는 한눈팔지 말고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텍스트는 어떤 ‘계기’라는 바람에 의해 향기를 훌훌 날리게 된다. 계기(Momentum)는 말씀을 풍부하게 해석하도록 도우며, 말씀이 살아 숨 쉬도록 일깨운다. 당신에게 어떤 계기가 생기길 기도한다. 그 계기로 당신은 이제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선한 일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병거를 믿고 기마를 믿는, 전쟁을 부추기거나 수행하는 자들과 함께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느님과 만나는 계기가 있길 바란다. 시편과 만나는 이 순간이 바로 그 계기였으면 더없이 좋겠다.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